‘어른의 비’와 ‘아이의 비’는 다르다.
비가 오면 아이들은 신이 난다. 어른들에게는 불편한 것 투성이인 것들이 아이들을 신나게 한다.
어른들에게 비는 커피 한 잔과 함께 카페에서 볼 때나 낭만이다. 커피를 다 마시고 카페 문을 나서는 순간부터는 거추장스러운 우산, 피해 다녀야 하는 물웅덩이, 우산 속으로 파고들어 오는 빗방울들로 방금 전까지의 낭만을 바라보던 눈빛은 온 데 간 데 없이 사라진다.
하지만 아이들에게 안에서 바라보는 비는 재미도 낭만도 없다. 밖으로 나가는 순간이 되어서야 얼굴에 즐거움이 피어난다.
아이들은 비가 오는 세상에서 처음은 아니지만 평소와는 조금 다른 경험을 하는 것 같다. 우리가 여행을 하며 느끼는 것과 비슷한 것일까.
우산을 쓰며 캠핑장 텐트 안에라도 들어온 듯이 위를 바라보며 눈을 반짝인다. 그냥 가도 되는데 우산을 빙글빙글 돌리며 재미있는 놀잇감이라도 들고 있는 양 까르르 웃는다. 물웅덩이를 만나면 그냥 지나치는 법이 없다. 냇가에 온 듯이, 그 안에 물고기라도 있는 듯이 물속을 들여다보고 샌들을 신은 발로 찰박거린다. 어쩌다 빗방울이 날아들어오면 눈을 깜빡거리며 그마저도 좋다고 웃어 보인다. 화단의 키 작은 나무들은 손을 위한 물웅덩이다. 손으로 나뭇잎들을 쓸어가며 물방울을 튕겨내고 손에 묻은 물은 옷에 쓱 닦아내면 그만이다.
어른들이라면 절대 할 리 없는 행동들. 덕분에 나도 그들 옆에서 어린 시절의 나로 돌아간다.
아이처럼 행동하지는 못해도 그때 느꼈던 감정을, 그리고 그 감각들을 되살려본다. 알록달록한 우산 속에서 그 빛깔이 내 얼굴에 와닿을 때의 왠지 모를 설렘, 물을 찰박거릴 때 내 발로 들어오던 시원한 물과 자잘한 모래들이 발가락 사이에 들어와 간질이던 느낌, 내 손을 적시며 부드러운 듯 거친 듯 손을 스치던 축축한 나뭇잎들의 촉감. 아이들을 보며 빗소리와 냄새, 그 차가움까지도 다시 생생하게 느낀다.
그래서 세상에는 아이들이 있나 싶은 생각이 든다.
어느 순간 무뎌지고 성가시다고 느껴지는 것들이 사실은 즐거울 수 있는 일들이라는 것을 상기시켜 주려고. 아이들의 웃는 소리에 문득 그때가 생각나고 미소 지어 볼 수 있는 여유를 주려고.
지렁이를 화단으로 보내준다는 첫째와 셋째
매미에게 우산을 씌워준다는 둘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