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런치에 올린 글들을 보면서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사진첩에 화내는 모습, 슬픈 모습, 추레한 모습은 남겨놓지 않듯이 나는 글에도 기억하고 싶은 모습만 남겨놓았구나. 브런치 엄마는 사랑만이 가득하고, 아이들과 함께하는 일상의 아름다운 것만을 바라보며 평화로워 보인다.'
안타깝게도 현실 엄마로서의 나는 그렇지 못하다. 하루에도 표정과 목소리가 수십 번 바뀌며 아이들과 지지고 볶는 일상에 한숨을 쉬어낸다. 밤이 되면 아이들이 잠들고 나서야 책도 몇 페이지 읽어보고, 재미있는 영상을 보며 킥킥거린다. 그마저도 원하는 만큼 하지 못하고 내일을 위해 잠자리에 들어야 한다. 아침이 되면 다시 아이들을 씻기고 입히고 먹이는 일이 시작된다.
며칠 전 아이들에게 크게 화를 냈다. 점심식사를 하기 전부터 아이들에게 '뛰지 마라, 싸우지 마라'라며 잔소리를 해야 했고, 식사를 차리면서조차 한 가지에 집중할 수 있는 시간이 없었기에 신경이 날카로워졌다. 밥을 먹으라는 말을 몇 번 반복하고 나서야 아이들을 자리에 앉히고 이제 밥 좀 먹자 싶은데 아이들은 여전히 장난 모드 풀가동이다. 얼른 식사를 마치고 정리한 후 쉬고 싶었던 나는 식탁 아래로 발장난을 하다가 다투는 아이들을 보며 한숨을 쉬었다. 그래도 눈을 질끈 감고, 이를 꽉 물며 말했다. 장난은 그만하고 어서 밥 먹으라고... 하지만 그 말을 들을 리 없는 아이들이었다. 결국 나는 밥을 먹는 아이들 앞에서 화를 냈다. 둘째는 엄마 눈치를 보고서는 얼른 식사를 마친 후 자리에서 일어났지만, 여전히 시동이 꺼지지 않은 첫째는 식사에 집중하지 못하고 동생을 계속 부르고 키득거렸다. 그 와중에 장난하느라 음식을 이리저리 흘려대는 모습에 결국 나는 잡고 있던 이성의 끈을 놓아버렸다.
호되게 혼이 난 아이는 좋아하는 반찬도 마다하고 밥만 꾸역꾸역 먹고서는 얼른 일어났다. 그러나 화가 머리끝까지 치솟은 나는 밥을 다 먹은 아이들을 세워놓고 또 혼을 냈다. 지금 다시 생각해 봐도 그렇게까지 혼낼 일은 아니었다. 한 마디로 적절한 훈육이 아니었다. 나를 힘들고 화나게 만든 아이들에게 분풀이를 한 것에 지나지 않았다. 아이들을 혼내면서도 스스로 그것을 느끼고 있던 나는 속이 상하고 끝까지 참아내지 못한 자신이 실망스러웠다. 먹다 만 내 밥그릇을 바라보다 결국 밥상을 치워버렸다. 엄마로서 한참 부족한 나 자신에 대한 자괴감이 밀려왔고, 채 닦지도 못한 식탁 위에 기대어 얼굴을 감싸 쥐고 한숨을 쉬었다.
내가 브런치에 쓴 글에는 아이들을 사랑하는 마음과 감사하는 마음들이 가득하다. 그 글들을 보면 현실 엄마와 다르게 브런치 엄마는 항상 생각이 깊고, 매 순간 행복하고 온화한 미소를 띠고 있는 것만 같다. 브런치 엄마가 아이들을 키우면 오롯이 사랑만을 받으며 행복하게 매일을 보낼 텐데, 현실 엄마는 그렇지가 못하다. 물론 현실 엄마도 아이들을 사랑하는 마음은 누구보다도 크고, 또 아이들과 함께여서 행복하다. 하지만 항상 미소 지으며 아이들을 안아주고, 자상하고 따뜻하기만 한 엄마가 되기는 힘들다. 현실 엄마는 조금 전 사랑한다 말해주었다가도 아이의 행동 하나에 금세 표정이 바뀌어 으름장을 놓기도 하고, 아이들과 얼굴을 맞대고 앉아 깔깔거리며 웃다가도 일어나면 한숨을 쉬며 어질러진 방을 치운다.
혹여 누군가는 상냥하고 따뜻하기만 한 나의 브런치 엄마를 보며 자신의 현실 엄마와 비교할까 싶었다. SNS에 올려진 깔끔하고 아름다운 집들의 사진을 보면 우리 집을 되돌아보게 되지 않던가. 물론 그 사진 속 집들은 항상 그런 모습을 유지할 수도 있지만 나는 브런치 엄마의 모습을 현실에서도 항상 유지할 수가 없다. 그렇기에 자칫하면 그 괴리감이 커지고 나의 브런치 세상이 어느 순간 나에게 가식으로 느껴질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아름다움을 유지하기 위해 솔직한 글을 쓸 수 없다는 것은 내가 애초에 글을 쓰기 시작한 것과 정반대의 방향으로 가는 것이다.
그렇다면 나의 브런치 계정에 올려진 글들은 모두 가식이고 거짓인가? 그것은 아니다. 그 글들이 쓰인 상황과 그 안에서 여러 가지를 느끼고 생각한 나도 분명 진짜 나이다. 사람이 살다 보면 즐거울 때도 있고, 슬프고 화가 날 때도 있다. 잘하는 것이 있으면 못하는 것도 있기 마련이다. 부정적인 방향으로 시선이 돌려졌을 때 나의 긍정적인 부분과 일관되지 못하다 하여 그중 어느 하나를 거짓이라고 한다면 그것은 나 자신을 슬프게 만드는 일이다. 내 삶 안에는 내가 바라던 나의 모습도 있지만 후회되는 모습도 있다는 것, 그 두 가지 모두가 있어야 완전한 나를 만든다는 것을 인정해야 한다.
글을 쓰는 이유에는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나에게 글은 깨달음의 과정이기도 하다. 글을 쓰기 전 지나간 일들 혹은 보고 들은 것들에 대해 곰곰이 생각하다 보면 미처 그때는 몰랐던 것들을 알아채기도 하고, 글을 쓰는 중간에도 갑자기 무언가가 풀리고 이해될 때가 있다. 물론 그때 배운 것들을 글로 남긴다고 하여 나의 부족한 부분이 단번에 바뀌지는 않는다. 하지만 수 번의 퇴고를 하며 내 마음속에 각인된 글은 나 스스로에게 한 약속 같은 것이며, 그것은 나를 점점 더 나은 방향으로 이끌어간다고 믿는다. 같은 실수를 반복하면 자책을 하다가도 마음속에 저장된 글을 다시 기억해 낸다. 그리고 그 글을 썼을 때의 마음을 다시 들여다보며 스스로를 다독이고 다음을 위해 더 좋은 해결방법을 생각해 본다. 이런 과정이 결국 성장하는 과정이라고 생각한다.
내가 엄마로서 필요한 모든 성장을 마치고 완벽한 엄마가 되어있었다면 아이들에게는 더없이 좋은 일이겠지만 이 세상에 그런 엄마가 있을까. 아이가 성인이 되어서도 나는 여전히 부족한 부분이 있는 엄마일 것이다. 하지만 평생 나 자신에 대한 성찰을 하며 성장하기 위해 노력하는 엄마가 될 것이다. 꼭 그런 사람이 되고 싶다. 브런치 엄마와 현실 엄마가 수직선 상의 반대편에 서 있는 먼 존재 같아 보이긴 하지만 그래도 그 둘을 서로 배척하는 관계로 두고 싶지는 않다. 나에게 그 둘은 서로에게 다가가고 있는 좋은 친구이다. 서로를 향해 걸어가며 얼굴을 마주 보고, 격려하고, 용기를 북돋우는 그런 친구. 언젠가 두 존재는 적절한 점에서 만나 반갑게 서로를 안아줄 것이다. 현실 엄마가 그 적절한 점을 찾기 위해 노력하는 동안 브런치 엄마는 훌륭한 조력자가 되어줄 것이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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