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월의 제주의 날씨는 변화무쌍하다. 새벽에 비바람이 하염없이 불다가도 다시 해가 뜨고 지고를 반복한다. 제주의 파란 바닷가를 보고 싶어 늦은 아침을 먹고 서귀포시내로 나와본다. 서귀포의 작가의 산책길을 따라 천천히 걸어가다 보면 가장 먼저 발길이 닿은 곳은 칠십리시공원이다.
칠십리시 공원
커다란 바위에 시인들의 시를 한 구절 한 구절씩 조각한 작품이 보인다. 시에 어울리는 문체로 표현하여 공원에 전시되어 있는 모습이 인상적이다. 숨을 고르고 다시 시를 읽다 보면 마음속 깊이 여운이 남는 구절이 있다. 그 구절을 머릿속으로 다시 되뇌이며 공원 한 바퀴를 걸어본다.
공원을 걷다 보면 천지연 폭포를 마주한다. 입장료를 내고 들어가는 관광지로 알고 있었는데, 이렇게 멋진 풍광을 무료로 만날 수 있다니 정말 기분이 좋았다. 공원이 크지 않지만 한 바퀴 돌다 보면 어느덧 시작점에 다시 마주한다.
천지연 폭포
주변을 둘러보니 기당미술관이 구글지도에서 검색된다. 기당 미술관은 사실 처음 들어본 곳이다. 전국 최초의 시립미술관으로 가장 제주스러운 작품을 만날 수 있는 소박한 미술관이다. 제주가 고향인 재일교포사업가인 기당 강구범에 의해 건립되어 서귀포에 기증되었다고 한다. 저 멀리서 바라보는 미술관 모양이 눈에 띈다. 마치 한국의 전통가옥을 본떠서 만든 듯하다.
기당 미술관
기당미술관은 개관 이후 꾸준히 현대미술작품을 소장하기 위해서 남다른 노력을 기울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현재는 제주지역 작가뿐만 아니라, 국내외 작가들의 회화, 조각, 공예, 판화, 서예 등 전부분에 걸쳐 650점을 소장하고 있다.
맨 처음 들어서면 제주의 대표적인 상징으로 해녀의 조형물이 시선을 사로잡는다. 철근구조로 몸통을 표현하였으며, 얼굴, 손, 발, 물고기는 제주의 돌인 현무암으로 표현하여 제주의 상징성을 모두 표현한 작품인 것 같다. 그리고 기획 전시실로 발걸음을 옮겨본다.
해녀 조형물
기당미술관 신소장품 전 ‘기당 컬렉션 : 조화’라는 주제로 전시를 진행하고 있었다. 전시는 기당에서 2020년부터 2022년까지 3년간 수집된 작품을 선보이는 전시였다. 전시 입구를 지나면 초록색 나무 식물이 하늘을 향해 기상하는 모양의 작품을 볼 수 있다. 손승범 작가의 ‘사라지거나 자라나는’ 작품이다. 뭔가 생명력과 식물의 역동성을 느낄 수 있는 작품이었다. 이번 전시는 제주에서 활동 중인 작가의 작품이 중심이 되어, 제주의 모습이 담긴 작품을 많이 만나 볼 수 있었다.
기당컬렉션 : 조화 / 손승범 - 사라지거나 자라나는 2020
전시를 관람하다 보면 건물의 나선형 구조와 바닥의 높낮이를 느끼면서 작품을 볼 수 있는데 작품을 더 몰입하게 만드는 구조라는 생각이 들었다. 미술관은 농촌의 ‘눌’을 형상화하여 나선형 동선으로 이루어져 있었으며, 천정과 자연광을 받아 전시공간이 쾌적한 느낌이 든다.
나선형 모양의 미술관 구조
이영복 - 침묵 2014
상설전시관은 제주도 출신의 ‘폭풍의 화가’로 잘 알려진 변시지 선생의 작품들을 전시하는 공간이었다. 입구에는 비디오와 함께 작가의 영상물을 상영하고 있었고, 작품과 더불어 작가의 작업공간도 전시되어 있었다. 그의 유품을 보며 작가를 더 가까이서 느낄 수 있는 전시공간이었다. 특히 제주도를 배경으로 다양한 작품이 많이 전시되어 있었다. 제주도의 날씨를 대표하는 태풍의 모습을 역동적인 하늘과 부서지는 파도로 그림에 표현되어 그 당시의 모습이 생생하게 표현되어 인상적이었다.
변시지 - 태풍 1982
아트라운지 공간은 아이들과 어른이 함께 휴식을 취하면 체험과 놀이를 할 수 있는 공간이었다. 미술 관련 다양한 책들도 전시되어 아이들과 여유롭게 시간을 가지면 좋은 공간이었다. 카페 같은 분위기에 넓고 큰 유리창에 저 멀리 한라산의 경치도 바라볼 수 있었다. 한낮의 피로가 사라지는 기분이었다.
화려하고 유명한 미술관은 아니지만 기당미술관은 소박하지만 다정한 미술관의 느낌이 들었다. 직원들이 따스하게 관람객을 맞이해 주었으며, 관람료와 더불어 기념품도 부담 없는 가격으로 구매할 수 있었다. 미술관 바로 옆에는 도서관과 예술의 전당도 함께 위치해 있어 여유가 있다면 함께 둘러봐도 좋은 곳인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