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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엘렌의 가을 Jun 07. 2017

아주 작은 것들에 깃든

때로, 어디까지나 아주 작은 것들에 대해 생각한다. 그것으로부터 증폭되는 것들, 아주 작은 순간들에 이름을 붙여주고 형태를 부여해 주고 싶다. 사소하다고 여겨지는 것들이 바꾸어 놓는 우리 삶의 변화 같은 것들을 들여다보고 싶다. 거창한 시각에서는 작은 것들이지만, 우리의 내면 어딘가에서는 매 순간 간절히 요청하고 있는 것들.

     

내면을 뿌리 깊이 주재하는 것은 일상이 아닐까. 매일 반복하는 일들, 작은 일들, 인간이 인간으로서 살아가기 위해서 끝없이 챙겨야 하는 것들. 사람들과의 작은 교류들. 그런 것들이 한 사람의 깊은 곳의 일부를 구성하는 것 아닐까.

     

한때 우리에게는 우리의 고귀함을 믿게 하고, 그것을 떠올리게 하고, 그것에 위로를 주는 이야기들이 존재했다. 우화와 신화적인 이야기들은 그렇게 태어났고 사람들 사이를 떠돌아다니며 지금까지 이어져 왔다. 그러나 우리는 이제 그 세계로부터 멀리 떨어져 왔다. 많은 것을 이루었고 현대 문명을 구축했으며 편리한 삶의 방식을 형성해 왔다. 그것은 인류에게 대단한 진보였다.

     

그러나 그 사이에 우리에게서 무언가가 조금씩 빠져나가기 시작했다.


서서히 가스가 빠져나가듯, 보이지 않지만, 인간 존재에게 소중한 무언가가, 우리가 느끼지 못할 정도로 조금씩 흐려져 갔는지도. 이 무수한 번영들 속에서도 우리는 때때로 깊숙이 자리 잡은 우리의 고독을, 외로움을 발견하곤 한다.


거기에는 한밤중에 잠을 이루지 못하고 서성이는 누군가의, 길을 헤매며 밤의 공기 속에서 가슴속 공백을 발견하는 이들의 한숨이 있다. 그 고독 속에는 시간 속에서 모두가 조금씩 잃어가는 삶과, 죽음에 가까워지는 공평한 흐름과, 그 사이에서 상실되어 가기만 하는 것 같은 허망함이 있다.

     

중요한 무엇, 아주 작은 것에 대한 기억, 아주 작은 것에서 비롯되는 공통의 느낌과 감정, 기쁨과 슬픔은, 우리의 영혼과 함께 움직인다. 그때 삶은 단순히 죽음으로만 향하는 일방향의 기관차가 아니다. 그 사이에는, 꽃 사이를 가볍게 날아다니는 나비의 움직임과 같은, 어떤 의미가 존재하는 것 아닐까.

     

모든 것은 변화하고 결국에는 소멸을 향해서 나아간다. 그런 면에서 어떤 이들은 삶을 한 편의 헛소동이라고 규정하기도 한다. 이와 같은 생각이 짙어지면 삶이 허무해진다.


그러나 그것은 삶을 지나치게 멀리서만 바라보는 데서 귀결된 것이다. 삶의 세목들을 들여다보면, 거기에는 살아있는 한 인간의 생활이, 꿈이, 희망이, 슬픔이, 존재한다. 그것은 아주 작은 것이기도 하고 때로는 사소한 것이기도 하다. 어떤 이들에게 한 인간의 삶이란 그다지 대단한 것도 아니고, 인류 전체로 보자면 있으나 마나 한 것으로 느껴질 수도 있을 것이다. 삶을 망원렌즈로만 바라보는 사고방식으로는 자기 자신의 삶조차도 무의미해질 수밖에 없다. 그리고 그의 일상은 일종의 추상성에 빠지고 거기에서 삶의 생명력은 희미해진다.


우리의 영혼이란, 어디까지나 구체적으로, 우리 삶을 이루는 여러 가지 세목 속에 일차적으로 존재하는 것 아닐까. 아주 작은 것에, 아주 사소한 것에. 그것에 대해 함께 이야기하고 느끼는 우리의 만남 속에. 거기서 느껴지는 감정과 생각들 속에. 문득 아침 빗질을 하다 바라 본 거울 속의 얼굴, 창문을 두드리는 빗소리, 익숙하고도 새로운 커피 향, 사람들의 목소리, 누군가의 작고 낮은 신음소리, 천천히 번지는 미소, 밤의 기억, 이 모든 흔적들이 쉼없이 돌아가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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