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피에 관한 글 하나 더
자주 가는 카페에는 바 좌석이 있다. 일반 의자보다 다리가 길지만 등받이가 낮은 나무 의자 네 개가 나란히 커피를 만드는 카운터 쪽에 놓여 있다. 아쉽게도 낮은 등받이가 오래 앉아 글을 쓰는 내게는 적당하지 않기에 나는 다른 의자를 선택하지만 가끔 글을 쓴다는 부담없이 훌쩍 카페에 들어와 커피를 마신다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카페 주인들은 커피에 대한 열정이 대단한 분들이어서 커피를 시키면 그에 따른 설명이 이어지고, 매일마다 시음 커피를 작은 종이컵에 담아 주기도 한다. 나는 아침을 간단히 먹고 글을 쓰기 위해 카페에 오기에 거의 늘 우유가 가득 든 카페 라테를 마시는데, 주문하기 전에 대개 둘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
예를 들면 오늘은,
CARPENTER
좋은 구조감을 가진 밸런스 위주의 에스프레소 블렌드
IRIS
화사한 아로마와 밝은 산미를 가진 에스프레소 블렌드
이 둘 중 하나.
원래 나는 신 맛이 나는 커피보다는 톤이 낮은 커피라고 할까, 한 번 마시면 어딘가 깊은 곳으로부터 좋다...하는 느낌이 드는 그런 커피를 좋아해 왔다. 이상하게도 나는 커피 맛을 음악의 음계처럼 느끼게 될 때가 많은데 말하자면 피아노의 낮은 건반 쪽에 속하는 커피맛을 선호해 온 것이다.
커피의 이름들도 흥미롭게 다가온다. 캐나다에 살 때 내가 즐겨 찾던 커피의 블렌드 이름이 ‘젠틀맨(Gentleman)’인 것을 발견하고 웃음이 났던 기억도 있다. 참 딱 맞는 이름이라는 느낌이었다. 내가 좋아하는 맛은 약간 중후하면서도 신중하고, 양복을 잘 차려입은 것처럼 밸런스가 갖춰진, 그러나 낮은 톤의 목소리로 천천히 이야기하는, 은근히 다가오지만 깊은 맛이 느껴지는 ‘젠틀맨 같은’ 커피였던 것이다. 지금 이 카페에서는 첫번째, 그러니까 ‘목수’라는 뜻을 가진 “좋은 구조감을 가진” ‘Carpenter'가 그에 가까운 커피일 것이다.
그러나 글을 쓰고 있는 지금 내 옆에 놓인 커피는 꽃 이름에서 따온 아이리스(Iris)이다. 산미가 있는 커피는 피아노의 중간 음계 쯤에서 가끔씩 톡톡 놓은 음을 건드리는 듯한 느낌이다. 늘 산미가 없는 커피만을 먹다가 산미가 있는 이 커피를 한 번 마셔보았는데, 나쁘지 않았던 것이다. 특히 글을 쓸 때면 두뇌를 톡톡 건드리는 듯한 맛이 있었다. 그 기분이 글을 쓰던 상태에서 기분좋은 상쾌함을 가져다 준다. 아마도 친구와 있을 때면 산미가 없는 커피를 마실지도 모른다. 대화 자체가 하나의 자극이기 때문이다.
그런 생각이 들기도 한다. 혼자 마시는 커피는 조금 달라지는 것일까. 비록 커피 한 잔이지만 마치 대화하듯이, 친한 친구에게 삶의 단편을 천천히 들려주듯이, 그의 높은 웃음 소리를 상상하며 글을 쓰고 싶어서, 나는 오늘도 평소와는 다른 상큼한 신맛이 있는 커피를 선택하는 것일까.
바 좌석에 앉는 사람들은 대개 가볍게 움직이는 사람들이다. 커다란 가방보다는 주머니에 든 지갑을 꺼내 계산을 하고 창가쪽 의자에 혼자 앉아 스마트폰을 보거나 책을 읽는다. 책을 읽는 사람을 보면 참 반갑다. 같은 신(神)을 믿는 사람처럼 느껴진다고 해야 하나.
혼자 커피를 마시러 온 사람들은 겉옷도 벗지 않고 잠시 그렇게 앉아 커피 한 잔으로 가늠되는 자기만의 시간을 갖는다. 찬 공기가 느껴지는 지금. 검은색 코트에 남색 목도리를 두른 한 남자가 앉아 있다. 그는 무슨 커피를 선택했을까. 눈 앞에 놓인 커피 기계를 쳐다보고 있는 그는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 것일까.
그에게도 삶의 기쁨이, 삶의 슬픔이, 사람에게는 예외없이 존재하는 단 맛과 쓴 맛처럼 그렇게 존재하겠지.
커피의 열기가 공기 중으로 올라가는 것이 보이고 그는 그렇게 혼자 커피를 마시는 자리에 앉아 있다.
뜨거운 커피가 요구하는 한동안의 시간만큼.
image and text by 엘렌의 가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