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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엘렌의 가을 Nov 06. 2017

아주 평범하지만 특별한 그곳의 에그 샐러드 샌드위치

그곳을 떠올리면 계절은 늘 겨울이다. 꼭 겨울에만 가지는 않았을 텐데, 내 상상 속의 그곳 앞에는 늘 눈이 쌓여있다. 한쪽으로 밀어 둔 눈 더미가 보도블록 주변에 쌓여 있고 간판 위에는 아직 녹지 않은 깨끗한 눈이 내려앉아 있다. 눈길을 달려 온 자동차들의 바퀴와 표면에는 얼룩이 져 있다. 찬 공기에 사람들의 얼굴이 빨갛게 얼어있다. 나 자신의 입김을 느끼면서, 문을 열고 가게 안으로 들어간다.     


여러 가지 색깔의 케이크들이 유리장 안에 들어있다. 스트로베리 쇼트케이크, 치즈 케이크, 크로크 무슈, 바나나 크림…. 정성스럽게 만들어진 케이크들은 눈을 즐겁게 한다. 물론 맛도 있을 것이다. 달콤하고 부드럽게 녹는, 잠깐이지만 세상의 근심을 모두 잊게 해 줄만한 근사함. 누군가의 생일이 되면 여기서 저 케이크를 사줘야겠어.


그러나 내가 이곳에서 가장 자주 찾는 것은 에그 샐러드 샌드위치이다. 손바닥 크기의 크루아상 사이에 양상추를 넣고 에그 샐러드로 속을 채운, 그야말로 꽤 흔하게 볼 수 있는 샌드위치이다. 계란을 삶고 잘게 자른 후 마요네즈로 버무린 에그 샐러드는 집에서도 종종 만들어먹을 수 있는 어렵지 않은 샐러드이다. 처음 이곳에 와 에그 샐러드 샌드위치를 먹기로 했을 때는 별 생각이 없었다. 마침 아침을 먹지 않았기에 뭔가 식사가 될 만한 것을 찾았을 뿐이다.      


그런데, 거기에는 뭔가 잊혀지지 않는 것이 있었다. 그 평범한 조합에 뭔가 특별한 것이 있었던 것이다. 버터향이 감도는 크루아상은 더할 수 없이 부드럽고 고소했다. 무엇보다 이 샌드위치는 그 집의 커피와 너무나 잘 어울렸다. 나는 자주 그곳 특유의 굵은 선을 가진 짙은 블랙커피에 감탄했는데, 에그 샐러드 샌드위치와 같이 먹으면 그 둘의 보완과 조화가, 이런 표현이 가능하다면, 어떤 완벽한 행복감 같은 것을 전해주었다. 그것이 평범하고 자연스러워 오히려 완전하게 느껴지는. 커피와 샌드위치라는 간단한 조합. 아주 평범한 것일지라도 그것이 제대로만 만들어진 것이라면 충분히 감동적인 것이 될 수 있다는 것을 그곳의 에그 샐러드 샌드위치로부터 배웠다고나 할까.     


이제는 갈 수 없는 곳이지만 지금도 종종 그곳이 떠오른다. 커피와 크루아상의 향을, 샌드위치의 맛을 남겨 둘 길이 없기에, 이렇게 글을 써서라도 그것을 기억해 둔다. 그러면 그 날들이 순식간에 떠오르는 것이다. 머릿속이 도저히 정리되지 않아 힘들었을 때, 그곳을 찾아가 커피를 주문하고 에그 샐러드 샌드위치를 기다리던 날들. 그러면서 나 자신에게 말해보곤 했었다. 서둘지 마. 하나씩, 하나씩, 차근차근 생각해 보자.      


차가운 공기가 그곳의 창에 김을 서리게 하고 엉클어졌던 생각들이 조금씩 느슨해지기 시작한다. 뜨거운 커피가 내 몸을 타고 흘러내려가는 것이 느껴진다. 평범하지만 특별하고, 어디서나 볼 수 있지만 흔히 만날 수 없는, 깊고 짙지만 가볍고 경쾌한…. 힐끗 보기엔 말이 안 될 것 같은 복잡함들이 있는 그대로의 가능성으로 다가온다. 이상하지. 그러고 나면 왜 마음이 놓이는 것일까.      


넓은 마음을 가져. 에그 샐러드 샌드위치가 두터운 입술을 열고 말하는 것만 같다. 삶은 어디까지나 모순을 받아들이는 과정일지도 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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