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화에 대하여
계절이 어느 사이 바뀌어 가듯이 어느 순간 커피를 바꿔 나간다. 나는 특히 따뜻한 것을 좋아해서 커피는 거의 늘 뜨거운 카페라테를 마신다. 풍성한 우유 거품의 포근함과 따뜻함은 추운 겨울의 한파를 스르르 녹여주는 기분이다.
그러다 어느 날 그런 날이 온다. 포근한 담요 같은 우유맛보다는 담백하지만 깔끔한 맛을 찾게 될 때가. 그리고 나도 모르게 말하게 되는 것이다.
"음, 오늘은 아메리카노로 주세요."
게다가, "아이스로요."
대개는 3월의 어느 날 즈음이 되는 것 같다. 그때 즈음 계절이 바뀌고, 내 몸의 계절도 바뀌어가는 것일까?
오늘은 다른 뭔가를 해 볼까, 하다가도 결국은 글을 쓰러 가게 되는 것처럼, 변하지 않는 내 몸의 습관, 내 몸에서 원하는 것이 있다. 글쓰기는 쉽지 않은 일처럼 느껴지기도 하지만 사실 글을 쓰지 않는 것은 더 힘든 시간을 가져다준다. 이것이 아마도 글을 계속해서 쓰는 이유일 것이다. 글을 쓰는 일을 통해 생각을 정리하고, 삶을 살아간다. 결국 내 마음의 가장 깊은 곳에는 글 쓰는 사람이 자리하고 있구나, 그 사실을 강렬하게 느끼는 순간이기도 하다.
변화하지 않는 무언가를 가지고 있다는 것은 사람에게 안정감을 준다. 종교를 가지는 사람들이 보여주곤 하는 특유의 안정감은 절대적 존재와 연결되어 있다는 믿음일 것이다. 흔들리고 변화하는 이 세상에서, 사실은 변치 않는, 게다가 공정하고 아름답기까지 한 어떤 존재가 삶을 주재하고 있다고 믿는다면 얼마나 마음이 든든할 것인가. 그러나 종교적인 심성이란 것 역시 선택으로서 가질 수 있는 것이 아니어서, 갖고 싶다고 해서 가져지는 것은 아닐 것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나름의 방식으로 흔들리면서 자신에게 주어진 하루하루를 살아가고 있는지도 모른다.
때로는 습관이야말로 기댈 삶의 방식이 되기도 한다. 생활에 중독되어 살아간다는 말이 있는 것처럼 반복되는 일상이야말로 우리가 기대게 되는 가장 강력한 대상일 수도 있다.
글을 쓰는 많은 작가들은 일정한 시간을 정해 매일 글을 쓴다. 샤워를 하는 것처럼, 점심을 먹는 것처럼. 글을 쓰는 일이 자신의 일부로서 변치 않는 것으로 존재하게 하기 위해서, 그것이 자연스럽게 몸에 배게 하기 위해서.
어쩌면 이렇게 말할 수 있을지도.
쉽게 변하지 않는 것이 한 인간의 본질을 이룰 수 있지만 또 한편 계속해서 변화하는 것이 인간의 속성인지도 모른다. 다만 그 변화가 자연스럽게 다가오기만을 바랄 뿐이다. 공기의 느낌이 달라지고 바람의 온도가 변화하면서 몸이 그 속에서 다른 것을 받아들이려 하듯. 자연과 욕망, 내 몸이 모순 없이 이어지면서 그 변화를 찾아가게 되기를 바란다.
삶의 작고도 큰 변화.
그 변화가 이루어지기까지 겪어내어야 하는 시간을 통과할 힘과 용기가 모두의 안에 자리하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