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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엘렌의 가을 Jan 02. 2018

이런 것 아닐까요

누군가 사랑을 묻는다면


지금보다 살아온 날의 수가 적었을 때

쏟아붓는 내 마음을 받아주지 않으면

그렇게 서운했었다.

그런데 가만히 생각해보니

그때 그 감정은 서러움에 가까웠던 것 같다.

그를, 그것을 사랑하지 못해서가 아니라,

내가 사랑받지 못하는 서러움.      


아무리 완벽해 보이는 사람도

사실 그 안에 슬픔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을 때,

타인의 슬픔이 보이게 되었을 때

나는 내 안의 슬픔도 인정하게 되었다.

나 또한 내 마음을 그렇게 원했던 이들에게

답해주지 못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사람들 안의 슬픔은

너무나 연약한 살로 둘러싸여 있지만

늘 천덕꾸러기여서, 외면받기 쉬워

오직 작은 목소리로만 말한다.

- 사랑받고 싶다.

그리고 자주 이 세상의 주고받기 게임에 훈련되어 있어서

냉소적으로 말하기도 한다.

- 모든 관계는 주고받기야.

실은 그것이 연약한 자신을 위한 제스처라는 것을

슬픔은 알지만 나는 모른다.

받기만 하는 사람은 행복할 것이고

주기만 하는 사람은 불행할 것이라고
쉽게 단정하지만

그 기준을 누가 세웠는가는 묻지 않는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신의 저울로
감정의 무게를 잰다.

정확히 말하자면

어리석게 주고, 어리석게 받았을 때 나는 불행했다.


사랑은 세상 안에 존재하지만

그것은 또 다른 차원에서 작동할 수 있으며

그래서 사랑은 자유롭게 한다.


세상 눈에 비천하고 낮은 사람이라 하더라도

아름다운 사랑을 할 수 있는 잠재력과 자격은 누구에게나 있다.

사랑은 지위도 명예도 아닐 수 있지만

지울 수 없는 마음의 갑옷을 입혀준다.

그것은 아무 훈장도 계급표도 없지만

어느 누구도 빼앗을 수 없는,
자신만이 그 존재를 감지할 수 있는

강하고 아름다운 이름이다.

폭우로 많은 물이 들이닥쳤다 떠나지만

때로 그 땅은 가장 비옥한 곳이 된다.

사랑은 그렇게 남고

과거에 머물기보다는 미래를 밝혀주기를 소망한다.     


사랑의 상처는 자신의 삶만의 개성이다.

무언가를 배워나가다 보면

자신의 부족함도 상처도
바라볼 수 있다.

충분히 아파하면 반드시 강해진다.

아름다움은 끝까지 아파하고 일어서는 순간 튀어나오는 부산물이 아닐까.

조금의 그늘도 지니지 않은 미인은 눈부실 수 있지만

나 이외의 다른 존재를 위해 마련된 공간은 없다.


삶이 순간이 아니고 지속이라면

나는 쉴 곳이 있는 곳을 택할 것이다.     




후기:

작년 한 해 함께 해 주신 분들 감사합니다.

이 글을 읽는 모든 분들

기쁘고 건강한

지혜롭게 사랑하고 사랑받는

2018년 되시길 바라며...


text by 엘렌의 가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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