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안이 부족하면 당해도 싸죠
한국에서 갑질이 이어지는 이유
연휴 전날 올린 '유교걸 유교보이'에 달린 악플이다.
가끔 달렸던 악플은 대부분 '이런 사람이 어딨냐','어디 소설을 써서 여자들 비혼 조장하냐' 등이었다. '빵 없으면 케이크 먹지 왜'처럼 어찌보면 기득권의 순진무구한 시선이었다.
직접 겪기 전에는 보고 싶은 것만 보이니 그런가 보다 했다. (내가 단 그림 몇 장으로 인구 반의 결혼 여부를 조장할 창작력을 가졌다면 그거야말로 정말 대단할 일이다.)
이번에는 신종이 나왔다.
“여자가 집안이 뭔가 부족하니 저러고 살겠죠. 난 아빠가 고위공무원이고 부동산 종부세 내는 집안이라 저렇게 안 살거든요.”
남편이 이 댓글을 읽고 어이없어 했다.
"갑질 당하는 사람이 뭐 부족해서 당하냐? 배달원 갑질도 갑질 한 사람이 그냥 쓰레기 짓 한 거 아냐. 똑같잖아.”
맞다. '공부 못해서 배달원하잖아요. 그러니 저러고 살고 이런 일 당해도 싸죠. 나처럼 공부 잘했으면 그러고 안살겠죠'라는 말과 문장 구조까지 비슷하다.
저 댓글에 반박하자면 여유 있는 집이 하는거라며 엄마는 결혼할 때 엄마가 강남 아파트를 해왔다. 그럼에도 여자가 잘나면 잘난 대로 '건방지다', '우리 아들 기죽인다' 등의 이유로 괴롭히던 사람들이 많았다.
폭력 안에서 가해자들이 들먹이는 이유란 실컷 괴롭혀놓고 피해자 탓으로 돌리기 위해 이래저래 갖다 붙이는 변명일 뿐이다.
한국에는 정말 촘촘한 갑을관계가 형성되어 있는 것 같다. 팀장은 팀원에게, 팀원은 신입에게.
4학년은 3학년에게.
입주민은 경비원에게.
이 수직관계는 가정안에도 있다.
<유교걸 유교보이> 반응은 막강한 수가 '사이다예요'에 이어 '제 이야기랑 똑같네요.'이다. 왜 아직도 그럴까.
새는 알에서 나오려고 투쟁한다. 알은 세계다.
태어나려는 자는 한 세계를 파괴해야만 한다.
- 헤르만 헤세, [데미안]
부화한 새끼를 알 속에 쑤셔 넣는다든지 둥지를 떠난 새끼를 억지로 물고 오는 부모 새는 없다. 한국 부모들은 자연의 이치를 거스르는 이 일을 하려 한다. 이미 깨져버린 알 속에 도로 꾸역꾸역 넣으려고 하니 썩어 문드러지기 싫은 자식은 살기 위해 투쟁할 수밖에 없다.
<유교보이>는 이제 나도 독립된 한 집안을 꾸리는 성인이라고 지속해서 말했다. 그러나 부모는 그때마다 마치 연을 끊고 지내자고 한 것처럼 반응했다. '감히' 독립을 주장하며 시키는 대로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전통적 권위주의에 익숙한 사람들은 시키는 대로, 가르쳐 주는 대로 살면 된다고 생각한다. 삶을 주체적으로 살아가지 못한다.
- 이진우, [니체의 인생 강의]
"너도 언젠간 시애미 된다. 그럼 너도 네 며느리 시집살이 시킬거 아니냐. 그러니 억울해 하지말고 시키는대로만 해." (친구가 들음)
"지금 내가 때리는 게 억울해도 참아. 나도 그때 다 맞고 살았거든. 너도 네 밑으로 사람 들어오면 때리면 되잖니.” (이렇게 들렸다고 함)
간혹 같은 ‘을’ 출신이 더 갈군다다른 누군가는 또 이렇게 말했다.
"천 년 전부터 지금까지 조상들이 하던거야. 남들 다 그렇게 살아. 니들만 안하면 남들 보기에 내가 뭐가 되냐. 그럴거면 나가 죽어!"
'남들'은 대체 누구인가? 그 남들이 탐탁치 않아 하는 자식은 차라리 나가 죽는게 나은건가?
천년전부터 조상이 해왔으면 다 덮어놓고 옳은가?
왜냐고 물으면 미움받는 세상. 누가 이렇게 만든 것인지 궁금하지 않은가?
@extener, “나는 질문한다. 고로 존재한다”
응, 진짜 궁금하다. 누가 좀 알려줘라.
글 중간중간 나오는 멋진 문구들은 모두 @extener 님의 글에서 퍼왔습니다. 아래 두 글을 읽고 깊은 생각 끝에 이 글을 적게 되었거든요. 멋져요!
https://brunch.co.kr/@extener/23
https://brunch.co.kr/@extener/24
커버이미지: 1boon, 리딩타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