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컷만화 [인간백과]에 붙였던 글을 따로 떼었습니다.
안경과장의 반응을 지켜보며 얼마 전 8살 아이와 있었던 일이 떠올랐다.
아이가 뾰로통하게 볼을 부풀리며 말했다.
"오늘 학교에서 영상을 봤는데 기분이 나빴어."
"왜?"
"다문화 그런 거였는데 뭔지 몰라서 '다문화가 뭐에요?' 하고 물어보니까
선생님이 '응, 외국인~'이랬는데 나도 외국인이기도 하잖아. 그래서 기분 나빴어."
미국에서 태어난 아이는 이중국적자이다.
"나도 다문화인거잖아 그런데 막 친구들이 놀리는 걸 선생님이 보여줬다니까?"
너무 놀라 잠시 할말을 잃었다.
선생님이 다문화 가정을 외국인이라고 한 것.
그리고 '다문화'에 대해 오늘 막 배운 아이가 자신이 '다문화'인 것에 속상해 했다는 것.
놀란 마음을 감추고 아이에게 물어 보았다.
"그런데 다문화면 왜 싫어?"
"영상에서 애들이 다문화 애를 막 놀렸단 말이야.
친구들이 보고 나도 놀리면 어떡해!"
좋은 의도를 가지고 만든 교육 영상이고 친구를 놀리는 것은 나쁘다는 것도 배울 것이다.
하지만 가치판단 없이 그냥 같은 반 친구로 받아 들이는 아이들에게 오히려 '다문화'는 뭔가 안 좋은 것, 친구들에게 놀림 받을 수도 있는 것이라는 이미지를 심어 줄 수도 있는 것이다.
자신이 '다문화'라고 생각한 아이는 그 영상을 보면서 꽤 상처를 받았다.
그리고 그날 내내 다른 친구들이 영상 속 말들을 배워서 자기에게 할까봐 걱정했다고 했다.
아이를 재우기 전, 우리 부부는 아이를 앉혀놓고 이해시키려 했지만 생각보다 명쾌한 설명이 어려웠다.
그냥 같은 반 친구,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였던 친구를 사실 ‘다문화 가정’ 출신이라고 따로 부른단다라는 것부터 설명해야 하는 것이다.
교육열이 높지 않은 동네 초등학교에는 외국인 부모가 있는 아이들이 꽤 있다.
국적이 다양한 아이들도 있었다. 아이와 같은 반에는 캐나다, 미국인 2명, 필리핀, 영국에서 온 아이들이 있었다.
딸이 그 친구들을 설명할 때는 항상 '까부는 민아', '축구 좋아하는 노아'일 뿐이였다.
"저번에 놀이터에서 만났잖아. 머리 엄청 길고 꼬불꼬불한 애. 우리반에서 키 제일 큰 현우랑 싸워도 이기는 애야."
이런 식이었다.
다문화도, 외국인도, 피부색도 없었다.
한번도 그 친구들을 설명할 때 '다문화 친구'라고 부른 적이 없었다.
그런데 다문화가정 교육 이후 아이는 '그럼 그 친구들이랑 나랑 외국인이라 다문화인거야?'라고 물었다.
딱지가 붙는 순간 '평범'과 다름으로 구분된다.
그렇게 다름은 틀림이 되고
차별이 시작된다.
그 교육 영상에서 다문화 가정으로 나온 아이의 피부색은 무엇일지 상상도 하기 싫다.
혹시나 싶어 찾아본 다문화 가정 교육 영상들에서는 죄다 아이들의 피부색이 한결 같았다.
아무 선입견이 없는 아이들에게 이 교육 영상들이 오히려 <특정 피부색=다문화=놀림거리 공식>을 무의식중에 심어줄까 걱정이다.
https://brunch.co.kr/@ellev/180
https://brunch.co.kr/@ellev/150
Cover Image:Photo by Piron Guillaume on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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