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으로 때우는 미국 정착기
한국에서 미리 아마존으로 가구들을 주문했다. 그때는 아파트를 실물로 보기 전이라 택배를 어떻게 보관해주는지 알 길이 없었다.
최악의 경우 택배가 분실되거나(가구라서 그럴 일은 없을 것 같지만) 집에 아무도 없는데 현관 앞에 산처럼 쌓여 있을 것이 걱정이었다. 그래서 *장소 옵션을 따로 설정하지 않았다.
(*방안, 현관, 건물 앞 등 장소를 설정할 수 있는 옵션이 있다.)
그랬더니 50%는 건물 1층 공동현관에, 나머지는 아파트 단지 아마존 무인 택배함에 배달이 왔다. 그런데 오늘 배달된 것은 식탁! 그리고 우리 아파트는 엘리베이터가 없다.
어디에 배달됐는지 확인하고 전화하겠다고 해서 같이 옮기려고 옷을 갈아입고 대기 중이던 나는 현관 앞에서 땀을 뚝뚝 흘리고 있는 제이를 발견하고 너무 놀랐다.
이 무거운 걸 제이는 혼자 들고 끌고 밀고해가며 맨손으로 옮겼다. (한국에서는 볼 수 없었던 남편의 의외의 면을 미국에서 많이 발견하게 된다.)
이케아 식탁쯤은 뚝딱 조립해왔기 때문에 그 정도라고 생각했다. 상판에 다리 4개 조립하면 끝 아냐? 하면서 포장을 뜯었는데 어마 무시한 것들이 쏟아졌다.
나사와 부품들이 끝도 없었다. 그중 가장 작은 나사는 x300이라고 쓰여 있었다.
그렇게 장장 4시간에 걸친 조립이 이어졌다. 아직 주문한 전동 드라이버도 오지 않아서 맨손으로 조립했다. 한국에서 들고 온 작은 드라이버세트로 하다 제이가 마트를 2번이나 다녀오며 드라이버 세트를 구매해 조립했다.
온라인 주문 취소하고 전동 드라이버를 그냥 사버릴까 하는 생각도 했지만 설명서에 크게 '전동 드라이버 사용하지 마시오.'라고 쓰여 있었기 때문에 손으로 끝까지 했다.
(조립하다 파손되는 책임을 피하려고 전동 드라이버를 쓰지 말라고 하는 거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었지만 이왕 시작한 거..라는 마음이 자꾸 들게 되더라.)
어마어마한 사이즈의 식탁/책상이 완성되었다. 한국의 짐들을 정리하면서 모든 가구를 버렸었다. 아깝기도 하고 너무 힘들기도 해서 다시 한번 '미니멀리즘'하게 살아야겠다고 굳은 결심을 했었다.
그래서 미국에 오면 식탁+책상 2개 대신 큰 테이블 하나를 사서 다용도로 활용하자고 이야기했었다. 그렇게 다시 옮기기도 해체하기도 힘든 60KG짜리 테이블을 사게 된 아이러니한 이야기..(하하하)
나중에 이사할 땐 이걸 또 어쩌나...? 하는 고민도 잠시 했지만 코로나 시국을 겪으며 결심한 게 그냥 앞의 일만 걱정하자, 닥친 과제만 고민하자이다. 유느님처럼 별생각 없이 주어진 일을 열심히 하기. 어쩌면 단순한 이 방식이 한 치 앞을 예상할 수 없는 요즘에 딱 맞는 게 아닐까 싶다.
대부분의 고민은 일어나지 않을 일, 나머지는 의외로 쉽게 해결할 수 있는 일, 그리고 극소수는 코로나처럼 어찌할 수 없는 일이 맞다.
일단 오늘은 완성된 테이블을 즐기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