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껏 그런 아파트 살면서 삼성TV를 사?
회의 준비를 하던 안경과장은 앉아 있는 사람들에게 말을 걸었다.
"우리팀 김대리 아시죠? 이번에 삼성 올레드 TV 샀대요.
아니, 집은 겨우 그 아파트 살면서 돈이 어디서 났지?"
김대리는 언젠가 바로 '그 아파트'에 살기 때문에 무리하게 대출받지 않아 여윳돈이 있다고 했다. 하지만 안경과장은 그 말을 '허세'로 치부했다. 안경과장에게 있어 그 사람의 레벨은 집을 중심으로 판단되었다.
한국에 처음 와서 적응 안되던 몇 가지 중 하나는 '몇 살이에요?', '결혼했어요?', '아이는요?' 다음으로 따라오는 질문들이었다. 그 후 많은 확률로 '어디 살아요?'를 물었다. 처음 나는 순진하게도 회사에서 거리가 먼지 가까운지 묻는 줄 알고 성실히 대답했었다. 이 일이 있기 전까지는 말이다.
"집이 어디에요?"
안경과장이 대뜸 물었다. 협력업체 소속인 안경과장과는 업무 관련 대화를 고작 몇 번 나눈 것이 다였다.
"OO대학 근처에요."
"삼성 아파트? 양지마을인가?"
"네? 왜요?"
굉장히 상세하게 묻길래 틸다는 같은 동네 사람인가하고 생각했다. 그는 이런 저런 질문을 이어가며 핸드폰을 꺼내 무언가를 열심히 눌러댔다. 그러더니 결론을 내리며 말했다.
"음.. 이거구나? 전세에요? 우와, 엄청 올랐네?"
그가 내민 핸드폰에는 부동산 어플이 켜져 있었다. 내가 살고 있는 아파트 시세를 찾아본 것이었다. 당혹감을 감출 수 없어 따져 물었다.
"지금 뭐하시는 거죠?"
"아, 제가 부동산에 관심이 많다보니..."
부동산 이야기라면 방금 전의 무례도 다들 이해해 줄 수 있는 것 처럼 가볍다. 대략 어디 사는 지만 알면 그 사람이 얼마짜리에 사는지 몇 번의 검색으로 알 수 있다. 이 사람이 나보다 비싼 집을 깔고 사는지 아닌지 대번에 알 수 있는 것이다. 새로운 사람을 만나면 나이에 이어 아파트 시세로 서열을 정하는 것 같았다. 눈 앞에서 대놓고 하든지, 서로 뒤에서 몰래 하든지.
결혼한 지 얼마 안 된 지인은 신혼집에서 결혼 반년 만에 이사를 했다. 결혼 소식을 들으면 다들 '어디 사는지'에 따라 말들이 많기 때문에 신혼집을 마련할 때에는 브랜드 아파트로 월세를 들어간 후 사람들 관심이 멀어질때즘 조용히 형편에 맞는 곳으로 이사한다는 것이다. 당시에는 '뭘 저렇게 까지 하나'하고 생각했는데 한국에 들어온 지 좀 지나고 나니 한편으로는 이해가 되었다.
누가 결혼한다고 하면 단연 화두는 '집'이다. 어떻게 척하면 착하고 서울 아파트 시세가 나오는지 신기하다. 전 국민의 취미생활이 부동산이라도 되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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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버 이미지: Photo by katie manning on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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