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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BA하는 아나운서 Jun 01. 2020

아들이 상처 입은 날,  아들이 상처 받을 날

좌충우돌, 미국맘 성장기

으엥


결국 터져버렸다. 웬만에선 잘 울지 않는 성향인데 순간 눈물이 고이고 입모양이 일그러진다. 세상에. 왼쪽 손, 엄지손가락 손톱 밑에서 핏방울이 샘솟기 시작했다. 태어난 지 51일 차, 첫 손톱깎기에 조심조심 도전장을 내민 남편도, 아기를 안고 있던 나도, 아기도, 셋 다 놀랐다. 그중에서 가장 뜨악했던 건 '나'였던 것 같다. 평소 피가 나는 것만 봐도 진정 '쇼크'가 오는지라 주사맞기도, 혈액 채취도 모두 누워서만 해왔던 나. 아기 손에서 피가 나니 내가 내 손에서 피를 철철 흘리는 것마냥 숨이 안 쉬어졌다. 헉헉 거리고 있는 사이, 아기는 무슨 일이 일어난 지 모르겠다는 듯이 헤헤 웃음을 흘린다. 엄청 아팠을 텐데, 처치 잘못해서 염증이라도 생기면 어떡하지. 손톱깎기의 날에 아기의 그 연하디 연한 살이 공격당한 날이었다. 미처 더 세심하지 못했던 엄마가 미안해. 아빠가 미안해.


너무 귀엽다고 생각했던 이 장면이 사건의 발단. 엄지손가락만 옷밖에 쏙 내밀고 있던 귀요미. 그럼 우리 손톱 좀 잘라줄까?


평화로웠던 아침이 주름졌고 금요일의 따사로운 햇살에도 불구하고 집안에 하루 온종일 그림자가 졌다. 아기의 몸에 첫 상처가 생긴 날은 그렇게 흘렀다. 다행히 상처는 크지 않았다. 살점이 떨어져 나가거나 피가 멎지 않거나 하는 등의 최악의 상황은 생기지 않았다. 남편은 민첩하게 아기용 소독 상자를 꺼내 상처가 덧나지 않게 소독을 했고 나는 피가 맺힌 손톱 위에 연고를 살포시 얹어두고 아기가 연고를 비비거나 입에 손을 넣을까 봐 내내 그 손을 잡고 있었다. 매 순간 손으로 얼굴을 비비며 꼬물거리는 터라 그러지 않으면 약이 상처에 스밀 새도 없이 산산이 흩어져버리고 만다. 아기가 잠든 사이, 가만히 내 손과 발을 훑어보니 이래저래 긁히고 찍힌 상처가 허다하다. 피가 맺힌 자국들, 영영 지워지지 않게 머무는, 이미 거뭇하게 변해버린 자국들도 여기저기. 내 상처는 아무리 덧나도 아무렇지 않은 지경이 됐다. 다만 태어난 지 50일을 갓 넘긴 아기의 새살 위에 머무는 새빨간 점에는 바들바들 떨고 있었다.  


피는 금방 멎었지만 마음엔 계속 피가 고이는 느낌이었던 순간들. 결국 손톱은 하나도 다듬어주지 못하고.


상처에 견뎌야 하는 순간들이 있었다. 초등학교 3학년 때 전과목 시험에서 문제 1개를 틀렸다고, 그래서 올백이 아니라고 정말 하루 종일 온 힘을 다해 울었던 순간이 그러했다. 대학교 수시 1학기 전형에서 똑 떨어졌을 때, 아나운서 시험 합격자 명단에 내 수험번호가 보이지 않을 때도 마음 한 켠 따갑게 피가 맺히고 마음의 결에 흠집이 갔다. 회사의 누군가에게, 시청자 중 한 사람에게 반갑지 않은 말을 전해 들을 때면 그 역시 마음이 일그러졌던 순간들. 누군가에게 꼬집히는 느낌을 받기도 하고 종종 칼에 찔리는 것 같이 심한 중상을 입는 일도 더러 있었을 거다. 얼굴에 난 뾰루지를 잘못 만져서 핏자국이 마를 새 없이 보기 흉하게 남아있곤 했던 것처럼 마음에도 피하고 싶은 상처들이 듬성듬성 번지곤 해왔다. 아마 앞으로도 자주 이럴 거다.


네가 상처받지 않았으면 좋겠어. 최대한 피해갔으면 좋겠어.


오전 내내 생각했다. 아기의 상처는 최선을 다해 피하고 싶다고. 이 세상 모든 엄마들의 마음이 그렇겠지만 내 아이의 몸에 반갑지 않은 흔적이 찾아드는 건 상상조차 하기 싫다고. 내 다리 군데군데 참 멍이 잘 드는 편인데 내 아이 다리에 푸르뎅뎅한 반점이 작은 한 개라도 스며들어 있다면 고운 다리를 매만지면서 화부터 날 지도 모르겠다. 앞으로도 여기저기 찍히고 긁히고 혹은 더 심하게 피가 터지고 때론 흉이 질지도 모르는데, 그런 건 열심히 막아야 한다고. 그러려면 부모로서 더 민첩하게 움직여야겠다고 반성했다. 상처에 노출되지 않도록 몸이 더 깨어있어야겠다면서. 그러다 보면 아기를 보호하기 좀 더 좋을 거라고.


상처에 연고가 잘 흡수되라고 엄지손가락만 살짝 고정해두기. 작은 상처라도 덧나지 않고 잘 아물기를 기다리는 마음.


그러고 나서 오후 내내 생각했다. 상처를 피하는 방법은 결국 없을 거라고. 손톱 밑에 핏자국이 밴 것보다 훨씬 더 쓰린 상처가 분명히 언젠간 또 찾아올 거라고 떠올리기 싫은 예측을 미리 단단히 해뒀다. 나도 일곱 살 때 씽씽이, 지금의 킥보드를 타다가 앞으로 고꾸라지면서 입술을 꿰맬 뻔했던 적이 있었다. 어릴 때나 지금이나 몸의 활동 반경이 크지 않은 나인데도 놀다가도 다치고, 운이 나빠서도 사고가 났다. 몸놀림을 최대한 얌전히 하려고 해도 알 수 없는 변수들은 '똑똑' 문을 두드린다.


아들도 마찬가지겠지. 벌써 그림이 그려진다. 자전거를 타다가 넘어지고 축구를 하다가도 넘어질 일이 생길 거야. 적어도 한 번쯤은. 몸에 상처 한 군데라도 안 났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는 건 말도 안 되는 상상의 영역이겠지. 다쳐서 또 한 번 애앵, 하고 울고 들어올 때 난 그저 마음을 차분히 가라앉히고 꼼꼼히 연고를 발라주며 상처가 덧나지 않고 잘 아물기를 바라야겠지.


상처가 완전히 나을 때를 기다리는 것, 참 어렵다. 처음부터 상처입는 일 따위는 없었으면 좋았겠다고 어리석은 바람을 가져보는 초보엄마

때로 마음에 상처가 났을 때는 어떤 연고를 발라줘야 할까. '으앙' 울음이 아니라 눈가가 살포시 젖는 '주르륵'의 훌쩍임이라면 난 아들을 어떤 방식으로 달랠 수 있을까. '최대한 마음의 상처를 입지 않고 살아가기'를 바랄지라도 그건 이미 불가능한 일임을 알고 있다. 상처를 '안' 입는 게 바람직하지 않다는 것도 알고 있다. 그 어떤 자기 계발서에 적혀있을 법한 이야기들, 상처를 입지 않기 위해 안달복달할 게 아니라 입은 상처에도 불구하고 어찌 극복을 잘하고 다시 새 인생을 향해 걸어 나갈지가 중요하다는 것, 머리로는 잘 알고 있다.


내 상처에 대처하는 법에 아주 조금은 길들여질 나이, 아들의 상처입을까봐, 겁이 나기 시작한 건 바로 이때쯤.


문득 아침을 먹다가 상상해봤다. 아들이 연애를 하다가 꽤나 뼈아픈 상처를 입고 집에 터덜터덜 돌아온 날, 나는 어떤 엄마로 자리할 수 있을까. 알아서 잘 털어낼 거라고 믿으며 최대한 그 상처를 '모른 척해주는' 엄마? 혹은 아들이 좋아할 먹을거리를 듬뿍 마련해서 상처를 배부름으로 잠시나마 가려주고자 '부엌 행하는' 엄마?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서 내 방안에 들어가서 아들의 상처가 내꺼인 것마냥 내가 눈물 흘리는 엄마? 지금의 나라면 마지막의 엄마가 될 가능성이 가장 높다. 아들의 손톱 밑에 피가 송골송골 맺혔을 때 내 손에서 피가 나는 것마냥 뜨악해했던 것처럼. 네 상처가 내 상처야. 자꾸만 감정 이입하면서 그 상처에 매번 호들갑 떠는 집착 지수 높은 엄마가 될 것만 같다.


웬만하면 운동선수는 안 했으면 좋겠어.


이유는 단 하나. 다른 게 아니라 몸으로 하는 일에는 다칠 일도 더 많아질 것 같아서. 남편과 장난 삼아 미래 너의 직업이 무엇이 될 지에 대해 상상 속의 이야기를 나눌 때면 종종 하는 이야기. 살아가면서 1분 1초, 여러 변수들 때문에 예상 못한 상처와 마주해야 할 텐데, 아무리 평생직업 개념이 사라진 요즘이라고 해도 '상처를 덜 주는' 직업과 함께했으면 좋겠다는 엄마의 욕심이겠지. 네가 다쳤다고 상처가 범상치 않다는 전화를 받는 날에는 다친 너보다 내가 더 놀라서 뒤로 넘어갈 것만 같으니 말이야. 상처를 최소화하고 싶기만 한 엄마의 마음은 평생 어쩔 도리가 없지 않을까.


몸이 아플 때, 마음이 아플 때, 곧 ‘치유’될 거라고 여유를 갖는 지혜를 발휘할 수 있을까. 아직은 덜덜 떨리고 바짝 안달이나는 지경이라서


벌써부터 불안해진다. 꼭 직업 때문이 아니더라도 상처 없는 인생, 상처 없는 하루는 없을 테니. 학교에서든 회사에서든 상처 없는 관계, 상처 없는 성과는 없었더랬어. 무언가를 이룬 만큼 그림자도 있었고, 좋았던 만큼 아팠던 부분은 늘 있었던 거니까. 손톱 밑의 상처에 네가 잠깐의 울음을 내비쳤던 것보다 더 많이, 크게 울음을 쏟아내는 날은 찾아올 거야. 몸에든, 마음에든 아들이 상처를 입고 돌아온 날, '그럴 수 있다'고 마음을 다잡으며 차분하게 너와 나를 다독일 수 있어야겠지.


그렇다고 겉이, 혹은 속이 발갛게 부풀어서 내 곁에 머물 때 굳이 억지로 쿨한 척하지는 않을 거다. "괜찮아. 인생에는 상처가 당연히 있는 거야" 하면서 널 강하게 키우겠다고 애쓰지는 않을게. 하지만 다가오는 상처에 대해서 적어도 겁먹지는 않아볼게. 너의 상처에 나 또한 상처 받지 않도록 노력해볼게. 조금씩 조금씩 의연한 마음으로 상처 대처법을 연습해나갈 작정이다. 그렇다고 아들아, 자주 상처 입어도 된다는 말은 아니야. 우리 상처는 '조금' 입고 마음 연고는 '넉넉히' 마련해두자.


아들이 상처받을 날들, 나는 그 뒤에서 어떤 엄마로 자리해야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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