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페 덕후의 카페 사용 설명서
대학생이 채 되기 전 ‘카페’라는 공간은 하나의 로망과도 같았다. 빵 한 조각에 찐한 커피 한 잔 홀짝이는 언니들이 어찌나 멋지고 예뻐 보였던지… 카페 유리문 너머 홀연히 비치던 안쪽의 세상이 언젠간 ‘무심한 표정으로 드나드는 매일의 공간’이 되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매일 독서실 앞 토스트 가게에서 3,500원의 빡빡한 빵조각을 질겅질겅 씹던 고등학생의 마음을 말랑하게 자극하기 충분했던 신세계. 새하얀 치즈케이크와 캐러멜 커피의 조합은 어떤 궁합일까. 보드랍고 포근한 그 빵 맛이 궁금했다.
베이커리형 카페가 많아져 다행인 요즘이다. 내 입맛에 딱 맞는 빵이 없을까봐 유학생활을 준비하기 전 베이킹 클래스도 참 많이 다녔다. 여차저차 미국에 내 스타일 빵이 없으면 내가 직접 해 먹겠다는 심보로 말이다. 아니나 다를까, 섣부른 걱정이었다. 한국과 분명 스타일은 다르지만 또 나름대로 애정 하는 빵 맛집들이 생겨났으니 말이다. 정확히 말하자면 빵이 유독 맛있는 카페들.
미국에서 고단한 유학생활을 덤덤히 버텨내려면 어떤 상황에도 흔들리지 않는 ‘평정심’이라는 게 중요하다. 그 평탄한 마음은 빵과 커피가 지켜준다 해도 과언이 아닐 듯. 대학 캠퍼스 근처 곳곳의 카페 맛집을 찾아 커피 한 잔 (실은 여러 잔), 여기에다 갖가지 빵 종류를 곁들이는 학생들 풍경이 흔한 데는 이유가 있다.
커피가 거기서 거기 같겠지만 유독 라테가 맛있다고 느낀 N카페에선 늘 아이스라테와 레이즌 크로와상을 주문했다. 시크하게 에스프레소 투샷 주문해두고 독하게 페이퍼 마무리하고 자리를 선선히 뜨고 싶은데 늘 소녀의 마음으로 보송보송한 빵도 함께 주문해버린다. ‘오늘은 커피만 마실 테다’ 유혹을 짓누르려 해도 내입은 이미 “One Croissant”을 외치고 있으니 어쩔 도리가 없다.
그렇게 카페 덕후는 빵순이라는 부캐를 이고 지고 걸어간다. 별다방에선 아메리카노와 시나몬 베이글 조합이 제격이고 T카페에선 마음에 드는 커피 한 잔에 폭신한 레몬 파운드케이크를 살포시 더해야 제 맛. B카페에서는 바삭하게 잘 익혀진 와플 한 조각을 더해서 드립 커피와 함께 한입을 베어 문다. 이 카페에선 이것, 저 카페에선 저것. 이를 테면 빵과 커피 조합에도 리추얼이 생겨버린 셈이다. 퇴사하고 마카롱도 구워봤고, 미국 와서 보기 좋게 쿠키를 태우며 베이킹을 연습했는데, 결국엔 ‘카페’ 행. 아무튼 ‘카페’ 행.
종종 상상해본다. 과연 지금 나이의 딱 두 배가 되는 해에도 나의 카페 사랑은 계속되고 있을 것인가. 카페 놀이와 그 안의 영역을 동경했던 18살 때부터 팍팍한 언론고시생 시절과 사회초년생 수습기자 시절 20대 초반을 너머 현재 36살에 이르기까지… 18살의 두배 지점을 찍은 36살에도 자칭 타칭 카페 덕후에 별다방 사랑은 여전하니 36살의 두배 지점, 72살도 크게 다르지 않으리라 감히 추측한다. 그때도 역시 빵순이로서의 면모는 사라지지 않겠지. 건강 생각해 샷을 줄이거나 디카페인으로 바꿔마실 테고 트랜스지방이 최대한 적을 것 같은, 눈에 담기에도 담백한 빵을 고르려 노력할 미래의 내 모습을 조금조금 그려보는 중.
물론 여기에 함께 할 동지가 자리한다면 더더욱이 좋겠다. 중년 나이대 접어들어 만나도 찐한 우정 쌓아갈 또 다른 친구들이라든지, 아직은 불가능하지만 먼저 카페 데이트를 하자고 제안할 정도로 훌쩍 커버린 아들, 딸들이라든지 말이다. 나이 밝히기가 깜깜해질 정도로 아득한 나이가 되어도 ‘카페 친구’, ‘빵 친구’는 끊임없이 생겨나길 바라는 소소한 소망을 품어본다. 쓴 커피와 단 빵 콜라보에 수다 한 바탕 곁들이면 인생 어떤 변수들이 불현듯 찾아와도 덜 무섭지 않을까. 그렇게 나의 카페 사랑도 성숙하게 나이들어가기를, 곁들일 디저트와 함께할 사람들과의 관계도 무르익어 가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