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나운서 엄마가 신경다양성을 이야기하기까지
"물꼬기야! 아, 코 자"
두 아이를 데리고 아쿠아리움에 간다. 연신 뛰어다니면서 쫑알쫑알 거리는 두 아이들. 여기가 그렇게도 좋으냐! 한가위 할인받아 냉큼 연간권을 지른 보람이 있다. 한 아이는 스티커북에서 보던 물고기가 눈앞에 나타나니 좋아하고 한 아이는 어두컴컴한 아쿠아리움을 푸른빛으로 감싸안는 조명에 집중한다. 한 아이가 물살을 호기롭게 가르는 물고기의 유연한 몸짓을 신기하게 바라볼 때, 한 아이는 물고기가 헤엄쳐나간 자리, 그 잔물결에 조용히 심취한다. 공간은 같은데 두 아이가 집중하는 포인트는 사뭇 다르다. 무엇을 보든, 둘 다 '좋아하면 됐지!’ 둘 다 내 배 아파 낳은 아이들인데 첫째 아이와 둘째 아이는 참 다르다. 성별, 성격, 취향만 다른 게 아니라, 세상을 바라보는 방식이 참 다르다. 그리고 세상이 그 둘을 바라보는 시선 또한 매우 다르다.
그 '다름'을 이야기하고자 한다. 그리고 그 '다름'이 결국 한데 어우러지는 데서 오는 '쾌감'에 주목하고자 쓴다. 여기서 중요한 건 '아, 진짜 쫌 경쾌하게' 이야기하고 싶다는 거다. 이 '다름'에 관해, 누군가는 정상발달아동과 자폐스펙트럼 아동으로 구분하는 데서부터 이야기를 시작한다. 더 익숙하게는 장애인과 비장애인의 영역을 나누면서 무거운 표정을 하고는 불편할 걸 기꺼이 꺼내든다는 느낌으로다가 고이고이 화두를 던진다. 어떤 이는 '느린 아이'라는 표현을 덧대 성장발달이 느린 아이를 키워가는 본인을 가리켜 '거북맘'이라고 하기도 하면, 주의가 산만하고 과잉행동의 경향이 있는 아이, 이른바 ADHD 아이를 키워가는 부모는 반대로 '토끼맘'이라고 일컫는다. 호칭이야 어찌 됐든, 좌우지간 다르다는 건데, 그 '다름'을 이야기할 때 먼저 꺼내드는 키워드는 이토록 많다. 물론 이왕이면 예쁜 표현이면 좋겠다. 그리고 나는 그 흐름이 결코 무겁지 않기를 바란다.
우리 아이는 아직 공식적인 의료적 '진단'을 받지는 않았지만, 곧 다가올 '그 순간'을 짐작하고 있다. 돌아보면, 첫째 아이는 뒤집기부터 앉기, 기기, 걷기 등 전반적인 발달영역에서 다소 '느린 아이'였는데, 단순히 '느린 것'이 아니라 조금 '특별할 수 있겠다'는 생각을 가져온 지는 꽤 오래되었다. 나는 본능적인 엄마의 '촉'이 있었고, 남편은 심리상담 (Mental Health Counseling) 전공자로 '다양성 (Diversity)' 화두를 꺼내며 수년을 살아온 사람이나 보니 아무래도 좀 더 예민하게 바라볼 수 있는 학자로서의 '촉'이 있었으리라. 대문자 T 부부의 두 촉이 만나니, 이건 딱히 무거울 것도, 어려울 것도 아니었다. "해야 할걸 하면 되는 거지!"
부지런히 이런저런 치료를 다니며 조기 중재를 시작했다. 둘째 아이를 낳고 키워오면서도 첫째 아이를 좀 더 기민하게 지켜볼 수 있는 시간들이 많았다. 앞서 이야기했지만, 두 아이는 정말 달라서 때로는 정말 경이로울 지경이었다. "아니 이렇게 다르다고?" 첫째는 '신경 다양성의 (Neurodivergent)' 성향을 가지고 인생 4년 차를 살아가고 있다. 의료적 진단은 차후 따라오겠지만, 공식적인 진단을 생각하기 이전에도, 진행 중인 현재의 시간에도, 차후 다가올 내일의 시간을 위해서도 나는 그리고 우리 가족은 그 나름의 다양성에 방점을 찍으며 열심히 살아내고 있다.
"신경다양성이란 인간의 뇌신경학적 차이를 장애나 결함으로 보는 대신 하나의 다양성으로 인정하는 관점입니다"
[김명희, <신경다양성 교실>, p.14-15]
'신경다양성 (Neurodiversity)'. 한 마디로 '장애'라고 이름 붙여진 그 모든 영역과 구분 짓는 경계를 '특별함'과 '고유함'으로 감싸안는 시선이다. 아이가 자폐스펙트럼장애(ASD)로 진단받았든, 주의력결핍과잉행동장애 (ADHD)인 것으로 결론이 났든, 지적장애 및 불안장애 등등, 이 세상이 '장애'라고 규정지어 둔 영역을 '다양성 (Diversity)'의 조각으로 받아 들고 "우와, 너는 그렇구나" 엄지척해줄 수 있는 세상이다.
과하게, 착하게 베풀어달라는 이야기가 아니다. 심드렁하게, 땅을 파고들어 갈 정도의 어두운 눈빛을 하고 '안쓰럽게 한 번만 봐달라'는 이야기는 더더욱이 아니다. "이 아이는 이럴 수 있구나" 그냥 끄덕여주고 미소 한 다발 날려줄 수 있는 잠깐의 여유 정도를 기대해보고 싶다. 모두가 단박에 그럴 수 없더라도 곧 옛 한국 나이, 마흔이 되는 '엄마'로서의 나는 이 얘기 계속해나갈 생각이다.
Connecting the dots. 인생 속 수많은 점들과도 같은 순간들이 모여 운명적인 순간들을 만들어 나간다. 오묘하게 연결해 보자면, 쪼큼 오바해서 "나 이 이야기 세상에 잘하라고 10년 간 아나운서로 살아왔던 걸까"도 싶다. 신경다양성 이야기 더 잘하고 싶어서, 이 세계 더 잘 알고 싶어서 둘째를 품고 응용행동분석 세계에 입문했다. 태교를 ABA치료세션 수련으로 했을 때, 간혹 치료 아동의 세찬 발길질에 뱃속 아이가 놀랐을까 걱정됐을 때, 나는 돌연 놀랍게도 이렇게 생각했다. "태어나기도 전부터 다양한 언니 오빠를 만나니, 네 시야는 얼마나 대단히도 넓을까" 온 세상 다 품을 줄 아는 멋진 딸이 태어날 것만 같아서 일찍이 '도치맘' 모드로 설렜던 건 안 비밀이다.
앞으로 진행되는 글들에서는 지난한 '결핍'의 이야기는 과감히 생략할 생각이다. '우리 아이가 언제 자폐 성향이 보였고, 말은 얼마나 늦게 트였고, 아이에게 가장 효과적인 중재는 무엇이었으며, 대학병원의 진료대기는 얼마나 길었는지, 그래서 진단은 언제 받는지’ 등등에 대한 고군분투 이야기는 완벽히 지양한다. '결핍'과 '아쉬움'을 툭 내려놓는 대신 '경쾌함'과 '웃음' 한 방울 '킥'으로 신경다양성 이야기를 요리하고 싶은 게 내 바람이다. 요즘 <흑백요리사>가 그렇게 인기라던데, 그렇다면 나는 인기에 편승해 '신경다양성' 세상에서 가장 활짝 웃는 요리사가 되고 싶다. 그 요리사는 한 때 메인 뉴스 앵커만 내리 도맡았던 10년 차 아나운서였고, 두 아이의 엄마이며, 현재 ABA치료사로 워킹맘 일상을 살고 있다.
"물꼬기야, 다음에 또 만나!
다음에 또 올게!"
한 아이는 물고기를 정확히 응시하며 아쉬움을 담아내고 빠빠이 한다. 한 아이는 공중점프를 30번을 연신 해대며 같은 말을 반복한다. '내가 용수철을 낳았나 봐!' 감복하는 순간이 바로 지금이지, 지금이야! 같은 말을 하는데 두 아이는 매우 다르다. 그런데 다른 것 같으면서도 또 다를 게 없다 똑같다. 내가 낳은 남매는 지금 이 순간 매우 활짝 웃고 있다. 내가 지향하는 세상과 감히 맞닿아 있다. 신경다양성을 이야기하며 활짝 웃을 수 있으면 된다. 그런 글을 앞으로 꼬박꼬박 스무 차례 쓸 것이다.
일곱 개의 꼬리표 (ADHD, 자폐증, 난독증, 기분장애, 불안장애, 지적장애, 조현병)는 전문가와 가족, 그리고 다른 사람들에게도 부정적인 생각과 특성을 떠올리게 하고 그 꼬리표를 단 이들은 낮은 기대치에 매여 살아가게 된다. 하지만 그들의 삶을 좀 더 깊이 들여다보기 시작하면 강점과 재능, 능력과 지성이 빛을 발하는 모습을 보게 된다.
[토머스 암스트롱, <증상이 아니라 독특함입니다>, p.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