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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BA하는 아나운서 Oct 08. 2024

다름과 특별함, 독특함과 이상함. 그 어딘가

[아름답고 푸른 신경다양성 세계]

"아빠, 쟤 이상해. 왜 말을 안 해?"


아이랑 키즈카페에 갔는데, 내 안에 가장 예민한 구석 어딘가에 한 목소리가 따끔하게 내리 꽂힌다. '뭐뭐, 뭐가 이상해? 또 무슨 일이야?' 키카 한 켠 구석 자리에 앉아 바지런 떨며 노트북을 두드리고 있었는데, 순간 냉랭한 얼음모드로 변신, 이내 자동 기립. 아이가 옆 친구가 갖고 놀던 걸 말도 없이 뺏었나? 툭 치고 나서 모른 척 태연하게 있었나? 단 0.49초쯤 만에 온갖 갈등상황을 상상하며 "얘 어딨어?" 레이더를 돌린다. 옳거니! 저깄네. 그런데 왜? 뭐가 이상한 건데?


“얘 이상하다”고 말한 또래 남자아이는 아빠랑 레고조각을 만지작 거리며 자동차 타워를 쌓고 있다. 그럼 그렇지. 우리 애는 자동차를 어마무시하게, 그러니까 지구를 한 백여 바퀴돌고도 에너지가 넘쳐 폭발할 만큼이나 좋아한다. 집에 사둔 자동차 총 합하면 중고차 한 대까지 살 만할 것이다... 는 많이 오버고, 음... 좋은 브랜드 패딩 하나쯤은 살 수 있을 것 같잖아. (아, 이럴 줄 알았음, 괜히 다 사줬다). 옆에 앉은 친구가 자동차 놀이를 하니, 해보고는 싶은데 또 겁은 많아서 뺏지도 못하고 그 주변을 맴맴 돌면서 관심을 보였던 모양이다. 그럴 수도 있지! 물건을 말도 없이 가져간 것도 아니고 내 거라고 우기며 소리를 지른 것도 아닌데, 그럼 됐어! 문제없어.


옆에서 "저 친구도 같이 하게 해 줄까?" 한 마디 중재도 없이 말없이 우리 애만 빤히 바라보고 있던 어른이 '이상한 건' 아니고? 그래 맞아, 너희 아빠 말하는 거야. 슬쩍 다가가 상황을 염탐하고 있는데, 눈치 없는 그 아빠는 내가 엄마인 줄도 모르고 이때다 싶었는지, 내 아이에게 질문 폭격을 시작한다. "친구, 이름이 뭐야?", "친구, 몇 살이야?", "친구, 어디에서 왔어?"


아이가 "이상하다"고 말하니까, 직접 나서 시험이라도 해보고 싶었던 모양이다. 진짜 '이상한 애인지'. 자동차의 위치와 모양새에만 사뭇 진지하게 몰입해 있는 내 아이에게 딱히 입력되지도 않을 '물음표'를 쉴 새 없이 던져댄다. 기분이 한껏 상한 나는 곧장 아이의 손을 힘껏 잡아끌고 키즈카페 문을 박차고 나왔다 (... 고 적고 싶지만 이용시간은 알차게 채우고 나와야 한다는 현실 엄마기 때문에 그건 아니고). 마침 2시간 이용시간이 다 되어가던 때라 "뭐, 잘됐네" 싶어 슬그머니 데리고 나왔다. 아이의 최애장소를 빠져나오는 기분이 오늘은 참 텁텁했다. 굉장히 맛없는 아메리카노를 8천 원이나 주고 사마신 느낌이라고 하면 설명이 되나? 이상하고 이상한 날이었다.


자, 여기서 문제 나간다. 여기에서 가장 이상한 사람은 누구였을까. "이상하다"고 말한 아이? "이상하다"는 말이 끝나자마자 내 아이 더 신기하게 살피려던 그 남자 어른? 혹은 우리 애가 "이상해"라는 말을 듣자마자, 남자를 노려보고 자리를 떠야겠다고 결심한 내 억누르지 못한 '화'가 가장 이상했나? 타인을 향한 분노를 켜켜이 접어가지고 나오면서 그 힘을 돌연 아이 손 꽉 쥐는 데 쓴 내가 제일 이상했던 걸까. 그 남자에게 바짝 다가가 "얘 이름은 누구고요, 얘는 4살이에요" 그 옛날 아나운서 발성 살려 또박또박 말해주지 못하고 어물쩍 나와버린 내가 제일 이상했던 것 같기도 하네.


이 중에서 누가 가장 이상한 걸까. 이상하다고 말한 아이가 이상한 걸까 . 고작 발끈하고 돌아선 내가 이상한 걸까.


"이상해"라는 말을 들으면 나는 초등학교 5학년 때 유독 얼굴이 새하얗던 남자아이가 생각난다. 나는 유독 사람 이름을 한 번만 스쳐도 기억을 잘하는 편인데, 그 아이와 단 한 번도 말을 섞어본 적이 없는데도 여전히 그 이름이 맴맴 돈다. 그 친구가 교실에서 입을 떼 말하는 건 격일에 한번 들을까 말까였는데, 가끔 말을 하면 한 음절을 더듬거리며 반복하거나 정말 들리지 않는 목소리로 소곤소곤 거렸다. 글자를 읽는 걸 어려워하는 것 같았다. 방과 후에 집 근처 서점에서 우연히 마주치기라도 하면 '어? 같은 반 애잖아!' 알아차리긴 했지만, 꽤 먼 거리를 유지하며 고고하게 턱을 세우고 새로 나온 문제집을 읽는 척했다.


그 아이와 한 공간에 있는 게 괜히 불편하다고 생각했고, 말을 걸어도 그 아이는 대답하지 않을 거란 생각에 아는 척하기 싫었다. 그 애 엄마는 내가 반 친구임을 인지하고 가끔씩 시선을 던졌는데, 나는 그럴수록 "안 친해요" 메시지를 내가 지을 수 있는 최대치의 뾰로통한 표정을 하고 던졌던 것 같다. 그러고 보니, 아이는 학교 밖에선 늘 엄마랑 같이 다녔다. 그땐 몰랐는데, 지금 그 장면을 떠올리면 자꾸 그 애 엄마의 눈동자에 머물렀을 눈물을 상상하게 된다.


돌아보면 나도 누군가를 '이상하게' 여겼던 적이 있었다. 그 아이가 어떤 것 때문에 조금 '달랐던' 건지 그때도, 지금도 나는 정확하게 알지 못한다. 허나, 신경다양성 세계에 있었던 것 같다고 이제 와서 가물가물한 추측 한다. 1997년 당시, 나는 인생 12년 차였고, 그때까지도 '장애'에 대해 편히 이야기하는 사람들을 본 적이 없었다. 그 엄마도 그랬을 것이다. 아이도 조용했고, 옆을 지키며 따라다니는 엄마도 굉장히 조용한 사람이었다. 숨소리 하나 크게 내지 않고 고요하게 머물렀던 그 모자의 그림자가 지금 어디에 있을지 자꾸 궁금해진다. 직장은 다니고 있을까, 결혼은 했을까, 곁을 늘 지켰던 그 어머니는 건강하게 지내실까. 무려 27년이나 지났는데 절친도 아니고, 좋아했던 짝사랑도 아닌, 그 애가 요즘 유독 많이 생각이 난다.


"여보, 내가 이상한 게 아니라,
여보랑 내가 다른 거야"


부부싸움할 때 흔히 나오는 레퍼토리 대사 중 하나. 신경다양성의 출발점도 별반 다르지 않을 테다. '장애'의 편견이 아니라 그냥 너랑 내가 '다르고' 네가 특히 '색달라서' "오!"라고 감탄 한번 뿜어내는 것. 다름과 색다름, 특별함과 독특함. 음절 몇 개를 다른 글자로 대체하면 되는데 우린 익숙해빠진 '이상해'라는 말로 일상을 퉁치고 만다. 신조어는 말도 안 되게 구구절절 만들어내는 시대, 왜 '이상하다'는 말은 지고지순하게 고집하는 걸까. 진짜 이상해. 독특함과 특별함에 집중하자고 하면 그 시선이 매우 유별나다고 또 '저 사람 쫌 이상한 사람' 되고 마는 듯하다.




주말엔 늘 아이랑 키즈카페에 자주 가는 편이다. 그나마 신경다양성의 아이가 또래친구들과 가장 스스럼없이 마주치기 제법 괜찮은 공간이다. 또렷한 대화 한 마디 안 나눠도 나는 그렇게 숨소리 맞닿은 공간에 함께 부딪는 기회가 막연히 소중하다고 느낀다. 아직은 불편함에 대해 배척과 경계가 덜 심한 나이다 싶으니까. 게다가 아이가 좋아하는 자동차가 한가득이니 좋고, 그 빌미로 육아 좀 편히 해보겠다는 알량한 심산도 엄마는 계산할 수 있다. 뭐, 너무 다행히도 애도 좋다니까 점점 더 자주 간다. 그래, 더 자주 갈 거니까, 다음번에 한 번쯤은 더 그 “이상하다”고 했던 '이상한' 부자를 만날 기회가 찾아오겠지? 그땐 차라리 내 옷 단추하나쯤 삐딱하게 끼우고 가서 한 마디 꼭 리액션 날려주고 와야지! 우스운 작전계획 하나를 심드렁히 짜본다. "얘가 이상해? 어우, 아줌마도 더 이상하지?" 화내지 말고, 키즈카페 문 꽝 닫고 나오지 말고, 다른 단어도 알려주고 와야겠다.


  "이상한 게 아니라, 독특한 거야"
"이상한 게 아니라, 특별한 거야"


다름과 독특함, 특별함과 이상함. 그 어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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