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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혜원 Nov 10. 2022

단풍은 물드는 게 아니고

포근이와 둘이서 병원에 가던 날이었다. 택시 안에서 무심하게 창밖을 바라보다가 환하게 빛나는 은행나무들을 보았다. 은행잎은 오전의 햇살을 받고 그야말로 황금색으로 눈이 부시게 빛나고 있었다. 올해는 가을이 오는 것을 반기지도 못했는데 어느새 가을이 깊어졌다.  


"아들, 단풍 색좀 봐. 너무 예쁘게 물들었다."


그러자 포근이가 말했다.


“정확히는 물든 게 아니라 물이 빠진 거지.”


포근이는 “나뭇잎들은 그동안 광합성하느라 엽록소로 뒤덮여 있다가 이제 엽록소가 빠지면서 본래의 색이 나오는 것”이라고 했다. 나무는 겨울을 나기 위해 잎으로 가는 길을 막고 잎에서는  이상 당이 합성되지 않기 때문에… 뭐... 그런 설명을 포근이는 이어갔다.


와, 그러니까, 저 나무는 원래 빨간색이었고. 저 나무는 원래 노란색이었단 말이야?


포근이가 당연하단 얼굴로 어깨를 으쓱했다.


그날 이후로 나무들이 왠지 달라 보인다. 예뻐 보이려고 한껏 치장하고 뽐내는 게 아니라 이제 자기 색으로 돌아온 나무들의 다 다른 노랗고 빨간색을 눈여겨본다. 겨울 너무하다 싶게 뎅강 잘렸던 가지들에 잎이 새로 나 자라나는 광경은 매년 봐도 놀라운 일이다. 각자 다른 속도로 다른 색으로 자라는 나무들이라니. 저 눈부신 색이라니. 그렇게 생각하니 성장을 멈추고 맞이하는 가을이란 계절이 쓸쓸하지만은 않은 것 같았다.


외할머니는 생전에 “단풍이 꽃보다 이쁘다”는 말씀을 자주 하셨다. 가을이면, 단풍을 볼 때면 단풍이 참 곱다고 감탄을 잘하시던 외할머니 생각이 났다. 이제는 나도 그처럼 단풍이 꽃보다 예쁘다는 말을 할 수 있을 것 같다. 왜냐하면 단풍은 나무가 가진 본래의 색이니까. 단풍은 색이 물든 게 아니라 입었던 을 벗은 니까. 가을의 단풍은 꽃보다도 예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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