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일 저녁, 양념 반 후라이드 반 치킨을 시켜놓고 본방송을 보지 못한 '유퀴즈'를 보기 위해 소파 앞에 앉아 티브이를 켰어요. 광고 영상이 나올 때 음식이 도착하고 기대하는 마음으로 치킨 한 조각을 손에 들고 먹으면서 재밌게 시청할 준비를 하고 있는데 소파에 앉아있던 남편이 한마디 합니다.
-이게 그렇게 재밌어? 시간까지 맞춰서 재방송까지 보고~ 유퀴즈에서 상 줘야 해 ㅋㅋ. 아니 진짜 당신이 한번 나가보는 건 어때? 열혈 시청자 이런 걸로!-내가 뭘로 나가 저기를~ 옛날에는 길거리에서 바로 섭외되는 거라 가능했을지 몰라도 지금은 다 뭐 한 자리씩 차지하는 사람들이나 연예인 아니면 뭔가 대단한 걸 이룬 게 있어야 나가지.
그 말을 뱉고 나서 기분이 상해버렸는데. 이토록 철저한 객관적 시선이라니. 내가 뭘로 나가나.
그래. 집안일하고 육아에 밥 차리고 가끔 동네에 아는 엄마들 만나 수다나 떠는 게 외출의 대부분인 사람의 삶이 누가 궁금하겠는가. 내가 무슨 책을 읽고 어떤 영화를 좋아하고 배우고 싶은 취미가 있는지 없는지 남들이 알게 뭐람.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는 조언이나 행동을 해 줄 수 있는 일을 하는 사람도 아니고 그냥 주어진 하루하루를 별 의미 없이 소비하며 사는 39살 현재 내 인생을 이런 식으로 마주하게 되니 울적해졌습니다.
아니 울적하기보다 화가 나고 한심했어요. 나름 열심히 산다고 살았는데 내 인생 이거 뭐지? 이대로 살아도 좋은가? 이대로 마흔, 오십이 되어도 괜찮은 걸까?
나는 어떤 사람이 되려고 했고 어떤 하루들을 모아 살고 싶었던 걸까?
문을 두드리려고 하지 않고 나는 안될 거야 생각하며 떠나보냈던 기회들과 용기 내지 못해 시도하지 않았던 일들이 후회되고 지금 내 모습이 하찮게 느껴져서 그 날밤 나는 베개가 다 젖을 정도로 울었습니다.
유퀴즈에 뭐라도 돼서 나가고 말겠어. 유튜브 채널을 만들거나 틱톡을 하는 게 제일 빠르려나? 장사를 해서 돈을 많이 벌고 봉사하고 기부하면? 근데 나는 나가서 무슨 이야기를 하고 싶은 거지?
생각의 꼬리들이 서로 엉켜 꼬이고 꼬일 때쯤 아이유의 노래 가사 한 줄이 떠올랐는데요.
[여기 반짝 살아있어요.]이 구절. 맞다. 나는 그냥 살아있는 거 말고 내가 나를 봤을 때도 "반짝'였으면 좋겠다.
내가 꼭 유명한 어떤 인물이 되어서 유퀴즈에 나가 '제 인생은 이렇습니다'라고 자랑할만한 사람이 되지 못한다고 하더라도 이대로 사는 건 아니라는 생각이 훅 들어와 누워서 조용히 다짐했습니다.
'이대로는 안 돼. 내가 내 인생 책임져야 하잖아. 초라한 기분으로 하루의 끝을 맺는 삶은 살지 않을 거야.'
그래서 노트에 내가 현재 어떤 상태이고, 원하는 삶의 모습은 어떤 것들이며 나의 처한 상황에서 시도할 수 있는 도전과 경험들이 무엇이고 그 체험을 통해 인생의 방향이 어디로 흐르게 될 것인가를 따져보고 몇 가지 할 일을 정리하고 적어두기 시작했습니다.
나에게 주어진 귀한 시간을 지난 몇 년간 허투루 무기력하게 쓴 대가를 지금 치르고 있기에, 이 시점부터 나 스스로 노력하고 시도하는 일들이 미래에 내게 선물로 돌아오게 될 것을 믿으며 나는 실행하기로 했습니다.
내가 만족하는 나로 살기 위해 시작하는 내일의 시도들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