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각디자인을 전공하고 결혼 전까지 회사 두어 곳을 다녔습니다.
대학교에 다니며 아르바이트를 쉰 적 없이 일했고 취업을 위해 자격증을 따고 토익시험을 보는 바쁜 일과 속에서도 나는 항상 일을 했다. 내 시간과 체력, 약간의 일머리로 돈을 받는 노동.
일이 능숙해지고 할 수 있는 업무가 늘어날수록 보람보다는 피곤함이 쌓이게 되는 그런 일 말입니다.
결혼과 출산, 육아로 인해 나의 일터는 이전과는 완전히 다른 장소로 바뀌고 가정주부로서 가족과 나를 위해 일하지만, 그것이 금전적인 보상을 주거나 공을 인정받는 승진의 기회를 제공하지는 않았습니다.
가족이 배부르고 안전하고 청결하게 집안을 요새 삼아 편히 쉴 수 있도록 돕는 일을 하는 것이라면 그것도 의미 있는 일이라고 할 수는 있겠으나 스스로 만족스럽지 못했습니다.
시도는 많이 했는데 집에서 할 수 있는 부업도 알아보고, 시간을 비교적 자유롭게 조정할 수 있는 학습지 선생님, 영어학원 선생님도 해보려고 했고 경력을 살려 디자인 단기 아르바이트나 또 서비스업, 물건을 파는 가게를 개업할까도 생각했었다. 하지만 모두 목적이 "돈"인 일이어서 내가 하고 싶은 "일"과는 거리가 멀었습니다. 내가 하고 싶은 일을 찾고 싶었어요. 힘들고 어려워도 공부하게 되고 알고 싶고 잘하고 싶은 일.
매번 기쁠 수는 없어도 그 일을 하면 즐겁고, 반복되는 일이라 지루하게 느껴질 때가 찾아와도 다시 새롭게 시작하게 되는 일. 나는 그림 그리는 것을 좋아하고 잘하고 싶어 한다. 그리고 말하고 글 쓰는 것을 즐겨한다. 책도 좋아한다. 몇 가지 이유로 나는 그림책 작가가 되기로 결심했습니다. 고민의 시간이 길었던 건 아니지만 선택하고 포기하며 결정에 이르기까지 나는 고통스러웠어요.
아이 방 한가득 채우고 있는 그림책들을 모아 두고 그림 스타일과 내용을 분류했고 연구하면서 매일 한 장씩 도화지에 인물, 동물, 식물, 사물들을 그리는 연습을 하고 그림책 내용들을 구상했지요.
여러 이야기 소재 중에 하나를 골라 주변 지인들에게 의견을 묻고 그것을 토대로 더미북을 만들고 출판사 연락처 목록을 연필로 차례대로 그어가며 내 작품을 메일로 전송했습니다. 몇 군데에서 연락이 오고 그중 마음이 가는 곳과 출판 계약을 하게 되었고 나의 책이 곧 나옵니다. 그토록 원하고 바라던 "일"이라는 걸 하게 된 것입니다. 누군가의 선택이 없으면 진행되기 힘들고 늘 결정을 기다려야 하는 일이라 기운 빠질 때도 있지만 내가 변하려고 마음먹은 그 순간부터, 생각에 그치지 않고 움직이고 행동했던 그때부터 이미 상황은 바뀌고 있었어요. 내일의 시도. 찾아내자. 내가 원하고 꿈꾸는 일. 나만의 "일"을 발견만 해도 하루의 시작이 빛나는 느낌일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