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창 시절 동아리 활동도, 대학교 클럽 활동에도 적합하지 못한 사람이 나였다.
내적 친밀감이 두껍게 쌓여야만 그를 "친구" 또는 "친하다"라는 단어로 부를 수 있었고, 먼저 다가가서 말을 걸거나 아는 척하는 건 상상도 할 수 없는 내성적인 사람이기도 했다.
작고 좁은 내 인간관계는 늘 만나는 사람과 비슷한 주제로 안정적인 대화를 나누며 견고하게 잘 지켜지고 있었고 굳이 돌발상황에 대비하며 마음 졸이는 모임에 나가서 새로운 사람을 만나는 일을 만들 이유는 없었다. 하지만 나는 내 상황과 마음의 지경이 넓어지고 변화하길 바라지 않았었나? 하는 질문이 집요하게 따라붙어 나를 괴롭혔다.
굳이 새로운 만남의 위험을 무릅쓰지 않아도, 책을 통해 경험해 보지 않은 생을 공부하면 삶의 지혜가 생길 테니까 걱정하지 말자며 마음의 고민을 외면했다.
하지만 책에서 읽은 것들을 생활에 적용하기에는 한계가 있었다. 내가 사는 곳은 상상이 아닌 현실의 세계니까. 읽고 혼자 사유하기보다 옆에서 들려주는 경험과 비법을 바로 듣는 것이 실질적인 도움이 될 때가 있었고, 혼자였다면 생각지 못했을 다양한 해결법이 문제를 대하는 나의 관점을 넓혀주기도 했다. 이런 이유로 ‘무리’를 두려워하는 마음을 떨쳐보겠다 다짐했다.
여전히 낯선 사람과의 대화가 어색하고 불편하나, 아이가 크니 학원도 보내고 이런저런 행사 때문에 다른 엄마들을 만나게 되면서 마냥 피할 수만은 없었다. 무엇보다 내 아이가 사회적이길 원하면서 내가 하는 행동은 영 딴판이니 스스로가 우습기도 했기에 공동의 주제를 두고 모이게 되는 "모임", “공동체”에 적극적으로 참여해야 할 때였다.
그러나 시작했다고 원하는 모습이 될 거라고 기대하진 마시라. 나랑 성격을 맞춰보고 고른 구성원도 아니고 자라온 환경, 가치관, 생활방식, 표현법이 다 다른 사람들이 한 가지의 목적이나 주제를 가지고 모이다 보니 잡음이 날 수밖에 없는 게 사실인데 난 그것이 참 불편했다.
-저 사람은 왜 말을 저렇게 하나. 잘난 척 대단하네. 은근히 무시하는 행동인데. 아 시끄럽고 정신없어.
내 머릿속은 온통 다른 사람들이 나와 맞지 않음과 그들이 싫은 이유로만 가득 차 있었는데 어쩌면 그들도 나를 '저 여자는 뭐 저렇게 뚱한 표정으로 입 꾹 다물고 눈치만 보고 있어?'라며 속으로 나를 평가하고 있진 않을까 하는 걱정도 늘 따라다녔다.
이대로는 안 되겠다 싶어 새롭게 내일의 시도를 하게 된 날!
나는 나와 그들에게 기회를 주기로 했다. 맞지 않더라도, 오해가 생긴데도 서로 같이 공유할 공통의 주제 안에서 자유롭게 이야기하고 다른 의견도 듣고 배우고 시야를 넓혀보는 일은 의미 있는 일이니까 용기를 내어 보기로 말이다. 처음에는 독서 모임에 나가 늘 열려있는 마음으로 환대하려고 노력하는 그들의 태도를 배웠고, 학원에서 만난 엄마들끼리의 모임에서 나의 열등감을 자극하는 사람이 있어도 그 사람 있는 그대로를 인정하고 그와 나의 삶을 분리하는 요령을 터득했다. 늘 하던 일만 하고 만나는 사람만 만나면서 변화를 꿈꾸는 것만큼 허무맹랑한 일이 어디 있을까. 드라마틱한 일이 나에게 짠! 하고 일어나 준다면 참으로 고마운 일이겠으나 그럴 일이 거의 없으니 내가 나를 던져야 한다는 마음으로 그렇게 관계 속으로 뛰어들었다. 새로운 상황과 사람의 관계 속으로. 상처도 있고 아픔도 있지만 그 경험이 낯선 사람을 어느 선까지 허용하고 판단해야 하는지 정할 수 있는 나만의 기준점을 만들어 주었다.
내일의 시도. 공통의 관심사를 가지고 있는 다양한 사람들을, 그들의 삶을 만나러 가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