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도 고속도로에서 운전할 때는 잔뜩 긴장한 채로 아득히 먼 곳에 빨려 들어갈 듯 한 두려움에 벌벌 떨면서도 목적지로 자동차를 향하게 할 수 있다는 자신감에 찬 운전자가 나라는 사실이 신기하기만 합니다.
아주 어린 시절부터 운전을 할 수 있는 사람은 가족 중 아빠가 유일했고,
그래서 여러 궂은 상황에서 가족의 발이 되어준 아빠의 고단함을 그때는 알지 못했으나 내가 운전을 시작하면서 그 수고를 깨달았어요. 온 신경을 집중해서 조작하고 판단하고 수행하는 그 일이 얼마나 힘든 일인지 말입니다. 높은 곳에 올라가면 발끝이 간지러우면서 정신이 멍해지고 식은땀이 나는 고소공포증.
그 외에 모서리를 보면 몸이 경직되고 어딘가 위에서 물건이 떨어질 것 같은 불안과 잘못 정리된 보도블록의 빈 곳에 신발의 앞코가 걸려 넘어지면서 이나 다리가 부러질 것 같은 몹쓸 상상으로 거리를 걸을 때마다 초조함을 느끼는 겁보. 그런 나여서 운전을 해야겠다는 생각은 꿈도 꿔 본 적 없었지요.
든든한 아빠의 차가 있었고 좀 불편해도 이동에 무리 없는 대중교통이 있으니 운전의 필요성에 대해 생각한 적 없었으며 직장에 들어가기 전에는 내 힘으로 자동차 한 대 살 돈도 없었으니 나는 평생 운전과는 상관없이 살 것 같았습니다.
하지만 비 오는 날이나 불친절한 기사를 만날 때, 짐이 많거나 대중교통으로는 가기 애매한 위치에 있는 곳을 찾아가야 할 때마다 나는 마음속으로 작게 외쳤었지요.
'내가 하면 또 잘하지. 언젠가 제대로 배운다.'
27살.
취업의 문턱 앞에 이도 저도 아닌 인간으로 스스로가 한심해 보이던 그때, 무슨 용기였는지 자동차 운전면허학원에 덜컥 등록했습니다. (이모의 도움이 있었기에 가능했던 건지도.)
처음에 안전 교육과 필기시험 준비를 하며 앞으로 닥쳐올 일도 모른 체 금방 따겠다고 생각한 나를 비웃기라도 하는 듯 기능 시험에서 주차 턱을 보기 좋게 넘어가며 탈락했고요.
어찌저찌 두 번째 본 기능 시험에서 만점으로 통과. 여자는 따기 힘들다는 아빠의 말에 욱 해버려서 1종 보통(수동)에 응시했던 나는 굳이 증명하지 않아도 될 일에 힘을 빼고 있었습니다.
내가 사는 지역에서 제일 수업료가 저렴한 곳에서 면허시험을 준비했기에 도로 주행은 2번 달려 보고 나머지는 시뮬레이션 수업을 진행했는데, 교실에 설치된 TV앞에서 수강생들이 모여 앉아 도로 주행 코스를 녹화된 영상으로 보면서 진행 방향을 외웠어요. 그리고 학원에서 자체적으로 시험 보는 형식이 아닌 지역의 지정 운전면허시험장에 가서 시험을 봐야 해서 달려 보지 않은 코스를 영상을 봤던 기억을 떠올리면서 운전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라는 걸 시험 보는 도중 깨달았지 뭡니까.
도로 주행에서 시험관의 호통을 들으며 탈락했고, 이 시기쯤 실연의 아픔을 겪었던 지라 모든 걸 그만두고 싶어 다시 시험에 응시하지 않고 나의 운전면허시험 도전기는 허무하게 끝나버렸습니다.
그리고 시간이 흘러 36살의 어느 봄. 끼어들기하는 트럭에 놀라 눈을 감아 버린 나는, 조작 미숙과 판단력 부족으로 시험관에게 운전하지 말라며 쓴소리를 듣고 탈락한 나는 또 한 번 "운전"이라는 것에 도전하게 되었습니다.
아이가 태어나니 병원뿐 아니라 어느 모임의 장소에 가기까지 내가 생각지 못한 변수는 참 많았으며 나의 불편으로만 그치면 그럭저럭 지냈을 테지만 아이가 어려움을 겪으니 그건 참기 힘들었어요.
또 무릎이 불편한 아빠가 수술 후 다리가 온전치 못함을 전해 들었을 때, 남편이 허리 통증으로 운전의 어려움을 호소할 때 등등 "해야 한다"는 무언의 압박이 다양한 형태의 바람으로 내게 불어왔습니다.
그래서 도전하기로 마음을 먹었습니다. 그리고 포기하지 않기로 했습니다.
못해도, 다른 사람들도 다 하는 걸 하지 않고 있는 나 자신이 싫었기 때문이었어요. 다행히 이때는 자체 시험장을 가지고 있는 운전면허학원에 2종 보통 면허 취득을 위해 등록하고 기능 시험까지 한 번에 무사히 통과했습니다. 몇 년 만에 잡아본 운전대가 낯설면서도 익숙해 묘한 자신감을 준 덕이었을까요?
봄에서 여름으로 넘어오며 뜨거운 열기가 느껴지던 어느 날 나는 땀에 흠뻑 젖어 도로 주행에 합격했습니다.
울렁거리는 속을 몇 번이나 가라앉히며, 자칫하면 탈락했을 그 순간을 떠올리고 지우기를 반복하며 집으로 향하는 길. 못할 줄 알았는데. 나는 안 되는 줄 알았는데. 하니까 되네. 나 이제 운전할 수 있다!!!
바로 중고차를 몰고 다니는 내 모습을 상상했으나 코로나와 경제적인 사정으로 2년이 지난 후에야 나는 내 명의로 된 차를 가지게 되었습니다. 부부간의 운전 연수는 이혼의 지름길이라 했지만 침착한 남편과 주제 파악이 빠른 내가 함께한 운전 연수는 할 만했고요. 고성도 비명도 울음도 침묵도 없었습니다.
단지 생각을 좀 하라는 말만이 내 머릿속과 차 안에서 돌림 노래처럼 반복될 뿐.
지금의 나는 마트에 장도 혼자 보러 다니고 아이 학원이나 친구들과의 약속 장소에 데려다주는 것도, 부모님 모시고 나들이, 인쇄물 맡기러 먼 시내까지 나가는 일을 할 수 있습니다.
운전을 할 수 있게 되었으니까. 차 안에서 라디오를 들으며 신나게 노래를 따라 부르는 일도, 모든 것으로부터 도망치고 싶을 때 가만히 앉아 울거나 침묵하는 일도, 사랑하는 이에게 지는 노을이나 날리는 벚꽃 잎의 풍경을 선물하는 일도 용기 내어 운전에 도전했기 때문에 가능했던 일이었어요.
내일의 시도! 아직 망설이고 계신 분이 있다면.
저처럼 사고의 위험성과 불안으로 떨며 애써 외면하고 있으신 분이 있다면.
언젠가 필요하다고 느끼시면 도전하세요. 쫄보에 어리숙한 사람인 저도 2년 가까이 사고 없이 잘 운전해서 다니고 있어요. 운전도 하다 보면 익숙해지고 수월해지는 일이었어요. 응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