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계절은 짧고, 기억은 영영 _ 이주혜’에는 글쓰기 모임을 통해 유년 시절의 기억을 돌아보고 과거의 나를 만나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나옵니다.
유아기의 결핍과 불안은 성인이 된 지금까지 내 행동과 인지에 어떤 영향을 미치고, 해결되지 못한 문제나 기억이 나를 괴롭게 하는 시간은 누구나 겪는 일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나는 비교적 순탄한 삶을 살아왔다고 말할 수도, 풍파를 겪은 사연 많은 삶이라고도 말할 수 없는 경계에 서 있는 사람인데요. 그래도 지나온 시간을 되돌아보면 기쁨과 환희의 순간보다 슬픔과 후회가 조금 더 앞서있는 느낌이 듭니다. 이전까지는 그랬지요.
나는 나의 모순된 부분이 어디서부터 시작되었는지 궁금했고 알고 싶었습니다. 시에서 제공하는 교육원 프로그램에 참여해서 미술심리상담사 자격증도 취득하고 아동심리와 관련된 서적을 전문가에게 추천받아 읽어보고 공부하기도 했지요. 어린아이였던 나와 만났던 시간들.
내가 선택하지 않은 여러 관계로 인해 내상을 입었던 순간들을 마주하고 위로했습니다.
물질적 여유가 있는 사람도 각자의 사정을 들여다보면 마음의 공허와 울분이 있을 수 있고 겉으로 보기에 밝고 유순한 사람도 깊은 우울과 난폭한 감정이 휘몰아치고 있을 수도 있습니다.
내가 나를 모르고 산다는 것은 어찌 보면 서글픈 일이에요. 나는 왜 이럴 때 이런 반응을 보이는지, 지금 내 상태는 어디쯤 와있는지 알 수 있으려면 자신과 대화하는 시간이 필요합니다.
헛헛한 마음을 채우려고 이 사람 저 사람 만나고 돌아온 날 더 허무할 때가 많았거든요.
내가 왜 그랬을까? 하는 후회와 자책으로 조금이나마 자유로워지려면 그때의 나를 만나줘야 하는데 그렇게 하기에는 꽤 큰 용기가 필요했습니다. 그리고 이제는 받아낼 수 없는 사과. 만날 수 없는 사람.
이런 과거의 장애물 앞에 무너져 내린 적도 더러 있었어요. 그들이 내게 사과하지 않고 또는 내가 나를 해명할 기회를 잃었을 때 느꼈던 패배감은 아주 오래 나를 힘들게 했습니다.
그러나 어떠한 순간에도 나를 지켜야 했던 사람은 나였고 그렇게 하지 못한 나를 긴 시간 받아주지 않고 외면했던 것 같아 미안했습니다. 과거는 과거이고 지나간 일이며 그때의 미숙했던 나를, 지금의 내가 알아주고 괜찮다고 말해주었어요. 완전히 소멸하는 기억이라는 것이 존재한다면 좋겠습니다만 그럴 일은 드물죠.
가끔 마음 깊숙한 곳에 가라앉아 있다가 어떤 날 수면 위로 떠 올라 마음을 복잡하게 할 때가 생기겠지만, 그 괴로운 시간이 예전처럼 길지 않을 것이라는 걸 나는 이제 압니다. 힘들지만 나를 똑바로 보고 나와 화해했던 순간을 지나왔기 때문에요. 내일의 시도. 가만히 나와 대화해 보는 시간을 가져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