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이 가라앉고 생각이 어두워질 때 달콤한 걸 입에 넣으면 그 순간, 아주 잠시나마 행복감을 느낄 때가 있다. 어떤 음식을 먹는 상상만 해도 기분이 들떠서 신이 나고 저절로 춤을 추게 되기도 하고, 먹방을 보면서 맛집 이야기하느라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떠들며 대리만족하는, 먹는 것만으로도 즐거운 사람이 나 하나만은 아닐 것이다.
이처럼 먹는 행위, 그리고 맛있는 음식은 삶을 좀 더 풍요롭게 만들어 줄 수 있고 이것을 가능케 하는 것이 ‘요리’라는 것도 안다. 하지만 주부로서 가족들의 먹거리를 책임져야 한다는 의무감이 오히려 요리를 배우고 싶은 마음을 가로막았다. 건강과 만족을 위해서 요리는 피할 수 없는 것임을 알면서도 외면하고 싶을 때 나의 핑계.
[나는 요리 DNA가 없어. 배워도 손맛이 워낙 없어서 맛없을 거야.]
동네에 조리기구 브랜드 매장에서 주 1회씩 수업하는 요리 교실도 있고, 대형마트 문화센터에서 주말마다 식품회사와 협력해서 교육해 주는 요리 교실 둘 다 비용이 저렴한 편이었다. 이마저도 여의찮으면 인터넷을 통해 블로그나 카페에서 알려주는 요리법도 있으니 다양하게 배울 수 있는데도 선뜻 나서지 않았던 건 배웠는데도 내 요리가 형편없으면 어떡하지? 하는 걱정이 컸기 때문이리라. 그렇다면 꼭 내가 만들어서 먹어야 하는, 그 행위. 요리하는 일이 내게 왜 필요한 것인가 물어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다. 그 질문에 대한 답은 이러했다. 온종일 지치고 힘든 사회생활을 마치고 돌아와 집에서 편하게 시켜 먹는 배달 음식이 나쁘다고 볼 순 없지만 매일 배달해서 먹으면 가계지출이 상당할 것이고 장과 위 건강에 도움이 되진 않을 것이다. 배달 용기 쓰레기 처리 문제까지 생각하니 요리는 내게 꼭 해야 하는 일 중 하나가 되어야 했고, 더 이상 뒷걸음치지 않고 과감히 요리 배우기에 뛰어들어야 했다. 좋은 재료를 알아보는 법, 상황에 맞는 조리법, 다양한 담아내기 방법 등 배울 것이 많은 그 요리의 세계로.
장을 보고 내 수고로움으로 요리해서 한 끼 해 먹는 게 쉽지 않은 일인 것은 알지만 귀찮음을 떨쳐버리고 나는 요즘 요리를 배운다. 영상을 보거나 책을 읽는 것보다 엄마에게서 요리를 배우는 게 제일 빠르고 확실한 방법이라는 걸 깨닫고 할게~할게~하고서 배우기를 미뤘던 겉절이, 꽈리고추볶음, 장조림, 오이냉국, 깻잎장아찌 등등 손질하는 법과 양념 비율을 깨우쳤다. 만지기 꺼려졌던 꽃게탕, 갈치 조림, 아귀찜도 배워서 이제는 할 줄 안다. 맛은 개인차가 있겠지만 다행히 가족들은 맛있다고 잘 먹어주고 있어 다행이라 여긴다. 가끔 별식으로 서양식을 할 때 필요한 재료의 이름과 낯선 재료들의 쓰임도 알아보고, 건강하고 맛있는 조리법을 찾아 프린트하거나 노트에 필기해서 그날 저녁 메뉴로 만들어 식탁에 내놓으면 그게 그렇게 뿌듯할 수가 없다. 깨끗하게 비워진 그릇들이 요리하며 수고했던 시간을 보상해 주는 것 같다.
한 번은 앞집에 사는 이웃 언니의 생일에 전복 돌솥밥을 해 준 적이 있다. 이런 귀한 대접받아도 되냐며 숟가락으로 크게 밥을 퍼 올려 맛있게 먹는 언니의 모습을 떠올리니 음식은 정성이라는 말. 나뿐만 아니라 다른 누군가에게 내가 귀하게 대접받고 있다는 경험을 선물하는 그 일을 내일의 시도로 선택하길 정말 잘한 일 아닌가?
계절에 따라, 기분에 따라 내가 나를 대접할 수 있는 행동. 좋은 재료를 골라 정성 들여 요리하고 멋스럽게 담아 황홀하게 음미하는 것. 그 기쁨을 위해 요리를 배우고 쉬운 것부터 시작해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