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하기 전까지 주택에서 부모님과 함께 살았다.
자라온 지역에 있는 대학교에 다녔기 때문에 멀리 떨어져 살 일도 없었고 졸업 후 직장도 같은 지역이어서 부모님을 떠나 따로 자취할 기회가 없었다. (조금 아쉬운 기분이 들기도.)
내 기억 속에 집은 오래전부터 편의성을 위한 물건들만 존재할 뿐, 내 취향이 묻어나는 공간을 가지는 건 언감생심 꿈도 꾸지 못하는 공간이었다. 좋아하던 연예인이나 만화가의 포스터를 간혹 붙여보긴 했으나 그것만으로는 한참 부족한 걸 느끼면서도 나중에-나중에-하며 미루기만 했었다. 부모님은 폐기물 스티커가 붙어있지 않은 중고 물건을 집으로 간혹 들고 와서 부족한 살림살이를 채우셨는데, 겨울 외풍을 막기 위해 걸어둔 길이가 맞지 않는 커튼이나 서랍의 아귀가 맞지 않는 책상 같은 것과 한쪽 모서리에 금이 간 보관함, 집안의 물건들과 동떨어진 느낌의 거울 같은 그런 것들이었다. 그렇게 통일성 없는 물건들이 어지럽게 놓여있는 친정을 나는 결혼과 동시에 떠나게 되었다.
그렇게 신혼집을 장만해서 처음으로 '인테리어'라는 것에 눈을 뜨기 시작했을 때 나는 막막하기도 했다. 내 공간을 꾸미게 되는 것은 좋은데 어떻게 하는 거지?
내가 어떤 스타일을 좋아하는지, 집에 돌아왔을 때 어떤 분위기가 나를 맞이했으면 하는지 정확히 알지 못해 불안했었다. 하지만 이내 고민하고 찾아보는 그 과정은 내게 즐거움이 되었다. 눈을 높이자면 한도 없이 예산을 초과하겠지만 부지런히 발품을 팔면 어느 정도 내가 원하는 수준의 느낌을 낼 수 있어 신기했고, 가구와 소품, 그리고 가전과 침구까지 유행을 타지 않으면서 관리하기도 쉬운 제품을 발견하면 신이 났다. 오래 두고 아끼며 쓸 수 있는 것을 알아보는 일이 수고롭다기보다 보람되고 기쁘게 느껴졌다.
남들이 보기에 특별할 것 하나 없는 인테리어라도 나만 아는 작은 차이들이 지친 일상에 위안이 될 때가 있지 않나? 내 경우가 그렇다. 베란다를 확장하지 않고 그곳에 작은 티테이블을 놓고 푹신한 의자와 내가 좋아하는 화가 마티스의 그림이 인쇄된 페브릭 포스터를 걸어두고 스탠드 조명을 설치한 옆 작은 선반 위에 여행에서 하나, 둘 모은 기념품을 진열해 두었는데 늦은 밤 그곳에 앉아 불을 켜 스마트폰으로 음악을 틀고 앉아있으면 그게 그렇게 행복할 수가 없었다. 계절이 바뀔 때마다 내가 원하는 패턴과 질감으로 침구를 바꿔주고 그 안에서 포근하고 보드랍게 나를 어루만져 주는 감촉을 느낄 때도, 세상에서 제일 안전한 어딘가에 숨어든 것 같은 감정이 생기며 안심이 되었다.
저렴하게 구매했어도 비 오는 날 볼 때마다 귀여워서 웃음 짓게 되는 우산꽂이, 약통과 각종 잡동사니가 굴러다니는 부엌을 깨끗하게 내가 원하는 모양으로 정리할 수 있게 도와준 벽걸이 수납장, 눈이 시원하게 쉴 수 있는 민트색 벽지, 큰 타일과 실리콘으로 마무리한 욕실과 음식이 맛있어 보이게 도와주는 식탁 조명까지 내가 둘러보는 주위가 바라던 모습으로 존재한다는 것. 그것은 내게 충분한 만족을 주고 살아가는 데 힘을 주었다.
집안 전체를 다 원하는 형태로 바꾸기 어려운 상황도 존재하겠지만 할 수 있는 범위 내에서 크게 돈 들이지 않고 내가 머무는 공간 어디 한 구석이라도 자신이 좋아하는 것들로 온전히 나만의 분위기로 꾸밀 수 있다. 나는 지친 누군가 그 시도를 꼭 해보아 주기를 바란다.
그 시도가 어떤 날은 작게, 어떤 날은 크게 위로하는 기분을 여러분도 느껴보셨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