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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엘리 Sep 10. 2024

나를 귀하게 대접하는 일, 요리하기

나는 마음이 가라앉고 생각이 어두워질 때 달콤한 걸 입에 넣으면 그 순간, 아주 잠시나마 행복감을 느낄 때가 있습니다. 어떤 음식을 먹는 상상만 해도 기분이 들떠서 신이 나서 저절로 춤을 추는 경우나 먹방을 보면서 대리만족하기도 하고 맛집 이야기로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떠들며 즐거웠던 경험도 있고요.

이처럼 먹는 행위, 그리고 맛있는 음식은 삶을 좀 더 풍요롭게 만들어 줄 수 있는 주제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주부로서 가족들의 먹거리를 책임져야 한다는 의무감 외에도 내 건강과 만족을 위해서 요리는 피할 수 없는 것이라는 걸 알고 있음에도 어쩐지 배우기를 미루고 외면하고 있었지요.

좋은 재료를 알아보는 법, 상황에 맞는 조리법, 다양한 담아내기 방법 등 배울 것이 많은데도 말입니다.

동네에 조리기구 브랜드 매장에서 주 1회씩 수업하는 요리 교실도 있고, 대형마트 문화센터에서 주말마다 식품회사와 협력해서 교육해 주는 요리 교실 둘 다 비용이 저렴하고 이마저도 여의찮으면 인터넷을 통해 블로그나 카페에서 알려주는 요리법도 있으니 다양하게 배울 수 있는데도 선뜻 나서지 않았던 건 배웠는데도 내 요리가 형편없으면 어떡하지? 하는 걱정이 컸기 때문이에요.

그렇다면 꼭 내가 만들어서 먹어야 하는, 그 행위. 요리하는 일이 내게 왜 필요한 것인가 묻게 되었습니다.

온종일 지치고 힘든 사회생활을 마치고 돌아와 집에서 편하게 시켜 먹는 배달 음식이 나쁘다고 볼 순 없지만 매일 배달해서 먹으면 가계지출이 상당할 것이고 장과 위 건강에 도움이 되긴 어렵겠지요. 배달 용기 쓰레기 처리 문제까지 생각이 미치게 되면 요리는 내게 해야 할 일 중에 하나가 됩니다.


장을 보고 내 수고로움으로 요리해서 한 끼 해 먹는 게 쉽지 않은 일인 것은 알지만 귀찮음을 떨쳐버리고 나는 요즘 요리를 배워요. 영상을 보거나 책을 읽는 것보다 엄마에게서 요리를 배우는 게 제일 빠르고 확실한 방법이라는 걸 깨닫고 할게~할게~하고서 배우기를 미뤘던 겉절이, 꽈리고추볶음, 장조림, 오이냉국, 깻잎장아찌 등등 손질하는 법과 양념 비율도 알게 되고 만지기 꺼려졌던 꽃게탕, 갈치조림, 아귀찜도 배워서 이제는 할 줄 압니다. 맛은.. 개인차가 있겠지만 다행히 가족들은 맛있다고 잘 먹어주고 있어요.

가끔 별식으로 서양식을 할 때 필요한 재료의 이름과 낯선 재료들의 쓰임도 알아보고, 건강하고 맛있는 조리법을 찾아 프린트하거나 노트에 필기해서 그날 저녁 메뉴로 만들어 식탁에 내놓으면 그게 그렇게 뿌듯하더라고요. 깨끗하게 비워진 그릇들이 요리하며 수고했던 시간을 보상해 주는 것 같기도 했습니다.


한 번은 앞집에 사는 이웃 언니의 생일에 전복돌 솥밥을 해 준 적이 있는데 이런 귀한 대접받아도 되냐며 숟가락으로 크게 밥을 퍼 올려 맛있게 먹는 언니를 보며 많이 흐뭇했던 기억이 지워지질 않아요.

음식은 정성이라는 말. 나뿐만 아니라 다른 누군가에게 내가 귀하게 대접받고 있다는 경험을 선물하는 일. 그것이 내가 내일의 시도로 요리를 선택한 이유랍니다. 

계절에 따라, 기분에 따라 내가 나를 대접할 수 있는 행동. 좋은 재료를 골라 정성 들여 요리하고 멋스럽게 담아 황홀하게 음미하는 것. 그 기쁨을 위해 요리를 배우고 쉬운 것부터 시작해 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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