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절과 친척
나는 달은 어떤 모양이든 다 좋은 것 같다. 어제 둥글게 떠 오른 달을 바라보며 요즘 자주 듣는 음악을 재생해 두고 한 참을 그 자리에 앉아있었다. 누구에게도 방해받지 않은 그 시간이 새삼 귀하게 느껴지는 아침이다.
설날보다 추석을 더 좋아한다. 겨울은 너무 춥고 가을이 나에게는 딱 좋은 기온이어서 그런가?
우리 집은 제사를 지내지 않아서 흔히 제사상에 올리는 음식은 많이 하지 않지만 명절마다 하는 음식 종류가 다른데 설날에 차려내는 음식보다 추석에 상에 올라오는 음식이 더 내 기호에 맞는다.
깨가 들어있는 송편도 맛있고 요맘때 엄마가 꼭 준비하는 음식 중에 하나 꽃게장과 토란국, 기름기 줄줄 흐르는 달콤 짭짜름한 양념이 베인 돼지갈비도 추석을 기다리는 이유 중 하나이다.
대학생이 되기 전까지 외가와 친가를 오가며 명절 때마다 귀성차량들 틈 한구석을 차지했던 기억이 난다.
경주에서 서울까지 고속도로를 타고 가는 길은 여간 고된 것이 아니었다. 내가 운전을 한 것은 아니지만 차에 타고 앉아 있는 것이 너무 지루하게 답답했다. 중간에 들리는 휴게소가 없었더라면 어땠을까 하는 상상을 하는 것만으로도 끔찍한 기분이 든다.
시간이 흘러 대전으로 이사한 후 중간 지점이라 위로 아래로 이동하는 데 큰 문제는 없었으나 대학생이 되면서 친적집을 자주 찾지 않게 되었고 서서히 멀어져 갔다.
명절에 친척들 만나러 가는 것보다 집에서 TV 보고 친구들과 만나 쇼핑하고 영화 보는 것이 더 즐거웠다.
엄마는 8남매 중 막내, 아빠는 3남 1녀 중 맏아들.
외가의 풍경과 친가의 풍경은 서로 많이 달랐고 그 분위기에 맞춰 지내는 시간이 편하지 않았다. 나보다 나이 많은 언니 오빠들과 선뜻 어울려 놀지도 못하고 또 그들도 살갑게 동생을 챙길 수 있는 나이도 아니었다.
친가에 가도 어른들 눈치 보기 바빴고 모든 상황이 어색하기 그지없었다. 시간이 지나도 매번 똑같았다.
그래도 그나마 오랜만에 보면 반가운 얼굴들이 있었고 내 동생이 태어나 그 작은 아이에게 의지하며 매년 다가오는 명절을 그럭저럭 지나왔는데 결혼을 하고 시댁이 생기면서 처음 맞는 명절은 상상 이상이었다.
먹다가 체하고 토하고 뇌 회로가 고장 난 사람처럼 버벅거리고 무슨 말을 해야 하고 무슨 표정을 지어야 할지 어렵고 모든 것이 낯설었던 그때, 어디론가 사라져 버리고 싶었던 그때. 그 좋아하던 달도 보기 싫고 명절이 없었으면 좋겠다 생각하며 소화제를 먹고 허리 굽은 새우처럼 겨우 잠을 청했던 내 모습이 떠올리니 짠하다.
지금은 시댁 식구들도 편해지고 요령도 생겨서 명절이 크게 스트레스로 다가오지 않으나 여전히 연휴에는 그저 집에서 먹고 놀고 싶은 마음이 큰 건 사실이다. 그럼 보름달도 더 곱고 예쁘게 느껴질 것 같은데 말이다.
보살핌을 받던 아이에서 챙김을 해야 하는 엄마가 된 나는 또 다른 이유로 명절이 달갑지 않으나 애정 하는 사촌동생이 부산에서 올라온다는 말에 설레고, 어린 시절 많지는 않지만 재미있게 놀던 기억으로 그리워지는 사촌들의 소식을 전해 듣게 되면 보고 싶어 지고 그들과 만날 날을 기다리게 되는 명절이 아주 싫지도 않은 모양이다.
추석 당일 날이 흐리다는 일기 예보가 있는데 부디 동그랗게 뜬 눈부신 달을 볼 수 있기를 바라본다. 달에게 소원을 빌지 않지만 그래도 예쁜 달 보며 가족 그리고 친척들과 함께, 그리웠던 이들과 함께 그 풍경 속에 오래오래 머무르고 싶은 오늘, 당신도 곁에 없는 보고픈 이들을 둥근달 액자 속에 넣어 떠올려 보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