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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평화를 꿈꾸다 Mar 13. 2017

싼값을 포기하고 제값에 사는 사람들

공정무역은 빈곤의 대물림을 막아 주는 지렛대

밸런타인데이와 화이트데이가 되면 연인들은 서로에게 초콜릿이나 사탕을 선물하며 사랑을 고백한다. 처음에 밸런타인데이는 성 발렌티노의 축일인 2월 14일을 기념하기 위해 시작되었지만, 지금은 제과업체의 마케팅에 힘입어 초콜릿을 선물하는 날로 정착되었다. 


초콜릿은 달콤하기 그지없지만, 원료를 공급하는 서아프리카의 카카오 농장은 씁쓸하기만 하다. 초콜릿을 만드는 다국적 기업들은 초콜릿의 단가와 마진을 맞추기 위해 낮은 수매가가 필요하다. 이 과정에서 아동 노동 착취 같은 부작용도 함께 발생했다. 요즘엔 카카오에 제값을 주자는 ‘착한 초콜릿’ 운동도 생겨났다. 


공정하지 못한 무역 관계가 발생할 때, 선진국 기업들은 돈을 많이 버는 반면, 개발도상국 생산자들은 가난에서 벗어나지 못하게 된다. 이러한 현상의 대안으로 ‘공정무역’이 등장하게 되었다. 공정무역은 생산자와 소비자를 직접 연결하고, 투명성과 상호 존중을 기반으로 하여 불평등을 극복하려 한다. 


출처 : EBS 다큐프라임 <히말라야 커피로드>


공정무역이 걸어온 길 


공정무역은 제2차 세계 대전 후 미국과 유럽에서 시작되었다. 제3세계로 불리는 아시아, 아프리카, 라틴아메리카의 빈곤 문제를 해결하는 게 목적이었다. 1946년에 미국의 시민 단체 '텐사우전드빌리지'가 중앙아메리카의 섬나라 푸에르토리코의 바느질 제품을 구매한 것이 그 시초로 알려졌다. 이후 영국의 '옥스팜', 네덜란드의 '오가니사티에' 등이 시민운동의 일환으로 공정무역 조직과 단체를 만들었다. 


1980년대에는 공정무역 상품을 일반 소비자들에게 더욱 보급하기 위해 공정무역 조건을 지키는 제품임을 표시하는 상표를 붙이기 시작했다. 1997년에는 21개국이 참여한 세계공정무역상표기구가 등장했고, 2002년부터 공정무역 마크 제도가 시행되었다. 우리나라는 공정무역의 역사가 그리 길지 않다. 2003년에 '아름다운가게'가 아시아 국가에서 수공예품을 들여와 판 것이 공정무역의 시초가 되었다. 


전 세계적으로 가장 많이 거래되는 상품은 공정무역 5대 상품으로 초콜릿, 커피, 홍차, 면화, 설탕이다. 제국주의 시대에 식민지에서 재배되던 대표 작물들로, 현재도 소수의 다국적 기업들이 생산과 유통구조를 독점하고 있다. 저개발국의 농민들은 구매력과 협상력에 있어 이들과 비교가 되지 않는다. 기존의 무역체제 하에서는 잘 사는 나라는 더욱 부유해지고, 가난한 나라는 더욱 피폐해졌다. 


공정무역은 이를 보완할 여러 장점을 가진다. 불리한 여건에 있는 생산자에게 안정적인 가격과 적정한 임금을 보장해준다. 아동노동이나 강제노동을 금지하도록 정해져 있기에 사회 개선 효과도 있다. 소비자들은 중간 유통 단계 없이 직거래를 함으로써 양질의 물건을 싸게 구입할 수 있다. 공정무역 초기에는 커피나 수공예품 정도만 취급했으나 지금은 올리브기름, 견과류, 의류, 꽃, 목재, 축구공, 인형 등 품목이 다양해졌다. 


출처 : 김영사 <히말라야의 선물>


커피와 함께 자라는 네팔의 희망


<히말라야의 선물>은 EBS 다큐프라임 <히말라야 커피로드>를 책으로 출판한 것이다. TV에서 3부작으로 방영된 이 프로그램은 훗날 극장판으로 만들어지기도 했다. 네팔에서 깨끗한 커피를 길러내는 농부들의 이야기로 80일간 함께 거하며 제작되었다. 이 다큐에 참여한 제작진의 상당수는 공정무역의 중요성을 알리기 위해 ‘재능 기부’라는 새로운 방식으로 참여했다. 


말레는 해발 2,000m 히말라야 산자락에 위치한 작은 마을이다. 가난했던 이 마을은 사실 하늘이 내려준 커피 재배지였다. 커피는 고지대일수록 단단해지고 밀도가 높아진다. 그와 함께 향이 풍부하고 맛도 깊어진다. 말레의 아침 안개는 적당한 습도와 온도를 유지해 주었다. 분지지형인 말레는 거의 하루 종일 그늘이 지는데, 이것이 강한 햇빛과 열을 막아주었다.


가난한 말레에는 고민이 있었다. 주민들은 마을의 젊은이들이 돈을 벌기 위해 더 이상 타지에 가서 일하기를 원치 않았다. 가족들이 생이별하지 않고, 함께 모여 살기를 간절히 바랐다. 아이들의 교육을 위해서라도 안정적이고 장기적인 수입원이 필요했다. 그들은 이 모든 고민을 해결해 줄 수 있는 것이 커피라고 결론을 내렸다.


책에는 공정무역단체인 '아름다운커피'와의 인연도 적혀 있다. '아름다운커피'는 어려움에 처한 말레에 커피묘목 3000 그루를 지원했다. 대신 말레의 농민들도 농약이나 화학비료를 사용하지 않고, 친환경 유기농 재배법으로 커피를 재배하도록 약속을 받았다. 이 단체의 원칙 중에는 생산지 환경을 보전하여야 한다는 사항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아름다운커피'는 '아름다운가게'의 공정무역 브랜드로 2002년부터 국내 최초로 공정무역 사업을 시작했다. 그간 커피와 초콜릿, 홍차 등의 공정무역 상품을 개발해 왔다. 저개발국가의 가난을 해소하기 위해 노력해왔고, ‘공정무역 실천 학교’ 인증 같은 프로그램도 이끌어왔다. <히말라야의 선물>의 인세 수익금도 아름다운 가게를 통해 공정무역 사업에 쓰이게 된다. 


출처 : 영화 <더 트루 코스트>


패션의 완성은 상생(相生


<더 트루 코스트>(2015)는 ‘패스트 패션’으로 이야기로 시작한다. 옷을 빠르게 기획하고 제작하여 유통시킨다는 의미이다. 우리가 잘 아는 유니클로, H&M, Zara 같은 브랜드가 여기 속한다. 보통의 의상들은 계절 단위로 신제품이 나오지만, ‘패스트 패션’은 주간 단위로 상품을 내놓는다. 최신 유행의 옷을 저렴하게 팔고, 빠른 회전율로 재고를 낮춘다는 전략을 쓴다.


영화는 ‘패스트 패션’이 지닌 화려함과 동시에 어두운 면도 부각하였다. 옷값을 저렴하게 유지하기 위해서는 제3세계의 노동자들을 쥐어짜야 한다. 방글라데시의 노동자들은 열악한 근무조건 하에 저임금으로 고통을 받았다. 무너지기 직전의 건물에서 일하기를 강요받다가 붕괴사고를 맞기까지 했다. 아이티와 같은 개발도상국은 의류와 관련된 기술을 축적하지 못한 채, 외국에 수출할 저가 제품만 만들게 된다.


영화는 패션뿐 아니라 이와 연관되어 있는 산업들도 함께 보여주었다. 면화를 재배하기 위해 사용되는 GMO 종자산업과 농약, 살충제, 질소비료 등의 위험성을 경고한다. 산업화된 농업은 수확량 증대를 위해 땅을 공장처럼 사용했다. 제초제와 농약, 화학물질의 사용이 증가하게 되고 이것은 사람들에도 안 좋은 영향을 끼친다. 자연과의 조화를 강조하는 친환경 유기농 농업의 필요성에 대해서 역설한다.


자본주의와 소비문화를 주도하는 기업은 물건을 더 많이 판매하기 위해 광고를 쏟아낸다. 선전을 통해 끊임없이 소비자의 욕망을 자극한다. 물질주의와 소유가 행복을 약속해 줄 듯 하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았다. 사람들이 물질과 이미지를 중요시할수록 오히려 우울증과 좌절감을 경험하게 된다. 사람들이 싼 옷을 살수록 중산층은 사라지고, 더 가난해지는 아이러니한 상황에 처하게 되었다. 

 

출처 : 영화 <더 트루 코스트>


수익 중심의 사고에서 벗어나자


자본을 숭상하고 인명을 경시하는 분위기는 여러 문제를 발생시켰다. 가정은 해체되었고, 사람들은 오염물질에도 쉽게 노출되었다. 노동자를 착취하기보다 적절한 보상을 해주어야 한다. 누군가 경제적 이득을 얻지만, 그로 인해 희생당하는 사람이 있음을 기억해야 할 것이다. 기업은 일자리 창출이라는 변명을 하며 면죄부를 얻으려 하지만, 이제는 수익 중심의 사고에서 벗어나야 한다.  


긴장과 불평등을 강화시키는 현재의 경제체제는 반성이 필요하다. 산적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소비자의 인식 변화가 필수적이다. 소비에 있어 환경과 사회정의를 고려하는, 보다 사려 깊은 방식이 필요하다.  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요구하고, 그들의 활동을 감시해야 할 것이다. 건강한 사회는 잘못된 관행들에 대해 비판이 가능하고, 그 비판을 통해 개선을 이뤄나가기 마련이다. 


<더 트루 코스트>는 제품의 진정한 비용에 대해 묻는다. 기존의 경제지표들은 거래되는 상품만 측정하여 만들어졌다. 하지만 환경의 오염과 파괴 같은 진짜 비용이 고려되어야만 한다. 좋지 않은 옷을 싼 가격에 사서, 조금 입다가 버리는 일은 결코 지혜롭지 못하다. 부주의한 생산과 소비의 악순환에서 벗어나야 한다. 그러한 운동이 우리가 제대로 옷을 골라 입는 데서부터 시작할 수 있다. 


공정무역은 생산자와 소비자를 동등한 거래의 파트너로 인식한다. 빈곤에 처한 사람에게는 긴급하고 직접적인 도움도 필요하지만, 장기적 관점에서는 경제적으로 자립할 수 있는 기반을 키워 주는 것이 중요하다. 이를 위해서는 적정한 임금이 보장되는 안정적인 일자리와 지속적인 교육이 제공되어야 한다. 공정무역이야말로 빈곤의 대물림을 막아 주는 지렛대의 역할을 해 줄 수 있다. 


출처 : 영화 <더 트루 코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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