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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신랑이에요.

아내의 언어

by 김태호

함께한 지 20년이지만

여전히 저는 아내의 이름을 부르고

아내는 저를 오빠라 합니다.


저는 '오빠'의 어감이 좋습니다.

부모님들께서

"나이도 있고 애들도 자라니, 이름이나 오빠보다는

좀 더 어른스러운 호칭으로 바꾸는 게 어떻겠냐."

하시지만 저는 그 청만은 거절하고 싶습니다.


계속 처음처럼 살고 싶기 때문입니다.

지금만큼 세상을 알지 못했을 때

검고 긴 생머리 휘날리며 순전한 눈빛과

맑은 목소리로 들려주던 '오빠'라는 부름이

참 좋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 오빠보다

더 듣기 좋은 호칭이 생겼는데 그것은

'신랑'입니다.


아내는 물론 저를 오빠라고 부르지만

다른 사람에게 저를 들먹일 때면 꼭

'우리 신랑', '우리 신랑' 합니다.


그 '우리 신랑…', '우리 신랑…' 하는 소리가

저에게는 바람에 살랑이는 어린 풀이

발가락을 간지럽히듯 평안하고 설렙니다.


우리라는 말도 신랑이라는 말도

'나는 오빠를 믿어.'

'오빠와 함께임이 그리 나쁘지 않아.'

하는 말처럼 들리기 때문입니다.


우리라는 말은

'울' 혹은 '울타리'에서 왔다고 여깁니다.

한 울타리 속에서 먹고 잠자며

토닥이는 관계를 우리라고 할 수 있겠지요.


그러니 아내의 입에서 나오는 '우리'라는 말은

제게는 한 몸처럼 가까운 사이

이십 년을 살아도 또 함께 하고픈 관계로

여겨지기에 고맙고 따뜻합니다.


그리고 '신랑'은

'갓 결혼한 남자' 혹은 '결혼하는 남자'라는

뜻입니다. 신혼 초의 남편 말입니다.


결국 아내가 '신랑', '신랑' 할 때마다

저는 신혼의 낭군이 되는

느낌이 들었나 봅니다.


3년 연애 후 빨간 카펫 위를 걷던 황홀함,

발리의 향기,

신혼의 우리는 세상 누구도 부럽지 않았고,

서로의 어떤 모습도 밉지 않았으며,

그저 시간이 그대로 멈추었으면 좋겠다는

말만 되뇔 뿐이었습니다.


그러니 아내의 '우리 신랑'이라는 말은

처음을 연결하는 비밀통로입니다.

첫사랑, 첫 키스, 첫 여행과 첫 번째 나의 가정.

그 뜨거운 처음은 시간이 지나도

북극성처럼 그곳에서 빛납니다.


우리 신랑으로 불러주는

우리 아내가 지금까지 내 안에 빛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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