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해와 공감의 언어
아내는 늘 빠릅니다.
손, 말은 물론 행동까지요.
그래서일까요.
일을 미루거나 더딘 사람에게
잘 적응하지 못합니다.
"오빠, 그게 어려운 일이 아니잖아?"
"내가 하라는 데로만 하면 쉬운 일을 왜
아직까지 질질 끌고 있을까?"
"아, 정말 답답해."
아내의 성격이 굽은 건 아닙니다.
사람을 업신여기거나 미워하지도 않아요.
다만 그 순간 상대를 이해하지 못할 뿐입니다.
"그 사람은 그게 최선이야."
"다그친다고 되지 않아."
"조금 느리고 더뎌도 나쁜 사람은 아니니
좋게 봐주는 게 서로 좋을 것 같아."
저는 그런 아내가 상대를 이해할 수 있게
상황을 설명합니다.
아내의 잘못을 지적하거나 상대의 부족함을
감싼 게 아닙니다.
그냥 세상에는 이런저런 사람들이 있으니
두루 잘 살아보자는 의미입니다.
그런데 말끝에 흐르는 공기의 온도가 이상합니다.
고개를 돌려보니 아내의 얼굴에
하얀 서리가 내렸어요.
저는 잘 이해되지 않습니다.
상황을 좋게 만들어 주기 위해 애쓴 노력에
전혀 예상치 못한 반응이기 때문입니다.
바싹 마른 장작에 기름을 얹어 불을 붙였는데
활할 타오르지 않고 연기만 자욱합니다.
아내가 씩씩거릴 때마다
저는 조금씩 질식합니다.
"내가 그 사람 편든 것도 아니고
그 사람이 잘했다는 것도 아닌데
왜 그렇게 기분이 나쁜 거야?"
"이래서야 뭐 겁나서 말 한마디 제대로 할 수
있겠어?"
"말하기 전에 허락이라도 받아야 되는 거야?"
막힌 숨통을 뚫으려 언성을 높입니다.
그러자 이번에는 아내의 눈에 실핏줄이 도드라져
빨갛게 물듭니다.
'울지 마, 울면 정말 나 화낼 거야!'
남편의 공갈협박도 통하지 않습니다.
눈물이 얼굴을 타고 주룩주룩 흐릅니다.
'이게 이렇게까지 할 일인가?'
한참이나 침묵이 이어집니다.
몇 시간이 지났을까요.
갓 태어난 사슴이 흔들리는 목과 다리로
어미를 찾듯 입술을 열어 속을 내어 놓습니다.
"오빠…, 그럴 때는, 그냥… '음, 그랬구나~'
하면 되는 거야."
"…."
"나도 그 사람을 이해 못 하는 내가
다 옳다는 게 아니야."
"이해하기 어려우면 이해하는 척만 해주 면 돼."
"내가 오빠 아니면 누구한테 그런 말을
할 수 있겠어?"
"…."
그렇습니다.
아내는 제게 이해나 문제의 해결을 구한 게
아니었습니다.
아주 작은 공감을 원했던 것이지요.
이해하지 못했더라도
그냥 '음, 그랬구나~' 하며 공감하는 척이라도
했으면 아무 문제가 없는 일이었습니다.
상대의 느림을 이해하지 못하는
본인에게도 문제가 있다는 사실을
이미 잘 알고 있기에
논리나 이성적 해결보다
부족한 부분을 감싸 안아줄
넉넉한 가슴이 필요했던 거예요.
그리고 그 사람이 가장 가까이에서
오랜 시간을 함께 한 남편이기를
기대했던 거지요.
우리는 모두 커다란 종유석처럼 다듬기 어려운
부분이 있습니다.
알면서도 고치지 못하는 자신의 모습에
실망하며 평생을 후회하기도 해요.
노력이 힘들고 어려울 때
한 사람쯤은 그 모자란 부분에
공감해 주기를 바라는 마음 또한 누구에게나
있습니다.
이해는 사리를 분별하여 해석한다는 뜻도 있지만
사정을 헤아려 너그러이 받아들인다는
의미도 있어요.
어쩌면 받아들이는 이해가 사리를 분별하는
이해보다 더 이해의 의미에 가까운 게 아닐까요.
분별과 해석이 지식에 가깝다면
너그러이 받아들임은 사람에게 더 가까우니까요.
후에 비슷한 상황에서
"음, 그렇구나~", "음~, 그렇구나~~" 하니
아내가 제 옆구리를
꼬집으며 놀리지 말라고 눈을 흘깁니다.
그러나 그 표정은 부드럽고 봄처럼 따뜻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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