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화의 언어
제페토 할아버지가
나무를 깎아 만든 인형은
사람처럼 걷고 말합니다.
할아버지는 나무인형을
'피노키오'라고 부릅니다.
피노키오는 할아버지의 전부입니다.
매트리스가 수명을 다했습니다.
가장자리는 쳐지고 스펀지 보풀이
일어납니다.
매트리스에 스티커를 붙여
분리수거장까지 끌어다 놓았습니다.
매트리스가 있던 자리를 정리하는데
거실에서 아이 울음소리가 들립니다.
"제발 좀 그만해. 그 정도면 충분하다.
도대체 언제까지 그럴 건데?"
"…."
아내의 다그침에도 아이는
어깨를 들썩이며 눈물만 흘립니다.
딸이 우는 이유는 매트리스 때문입니다.
태어난 때부터 자신을 품던 매트리스가
버려진 게 그렇게 서러웠나 봅니다.
아이의 물건 사랑은 유별납니다.
아끼던 그릇이 깨졌을 때,
딸의 그림 중 몇 개를
정리했을 때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그만하라고 했지!"
"엄마도 참는 데 한계가 있다!"
짜증이 난 엄마는 이건 정말 너무한 거 아니냐며
소리 지릅니다.
딸은 한 시간 넘게 울었습니다.
그날 밤 아이에게 말했습니다.
"우리가 사용하는 물건은 모두 사라져.
아무리 소중해도 영원한 것은 없어.
가진 것은 아끼고 잘 관리해야겠지만
버려야 할 때는 미련 없이 버려야 해.
버려야 또 필요한 걸 가질 수 있어.
낡은 물건을 버리지 않으면 우리 집은 아마
쓰레기로 가득 찰 거야. 알겠지?"
"…."
제법 이성적이고 합리적인 설명이라 생각했지만
아이는 답이 없습니다.
한참 후 딸이 말합니다.
"우리가 쓰는 물건에는 영혼이 있어."
"응? 영혼? 무슨 영혼?"
"나는 매일 우리 집에 있는 인형, 그릇, 연필,
아빠 차, 침대, 책상들과 대화를 해."
"그것들은 내 말을 들어주고 가끔 말도 해."
"그러니까 나는 우리가 사용하던 물건과
헤어지는 게 너무 힘들어."
아이는 또다시 눈물을 흘립니다.
여린 딸이 걱정스럽기도 하고
고운 마음이 사랑스럽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동심을 헤아리기보다
논리와 이성을 강요했던 제가 미안했습니다.
어른이 되면 마음이 마르나 봅니다.
어쩌면 동화는 어른에게 더 필요한 가 봐요.
동심으로 바라본다면 아이가 옳았고
동심이 아니라도 동화는 옳기 때문입니다.
아이에게 그릇, 그림, 매트리스는
제페토 할아버지의 피노키노였습니다.
저는 달려가 매트리스의 한 부분을 잘라 왔습니다.
아내는 머리통 크기의 매트리스 조각을 베갯잇에
넣어 딸의 품에 안겼습니다.
아이는 자신의 피노키오를 꼭 안고
미소를 지었습니다.
피노키오에게 할 말이 많은 표정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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