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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의 아빠, 아빠의 빛

아빠의 언어

by 김태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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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두운 환경에서 자라며

아빠가 되지 않겠다고 마음먹었습니다.

어머니의 고통을 보며

차라리 결혼을 하지 않는 편이 옳다고 여겼지요.


다짐과 판단은 사랑 앞에 무너졌습니다.

한 사람을 만나 꿈처럼 사랑하고

꿈처럼 결혼했습니다.


동화 속 주인공처럼 아이를 기다렸으나

동화처럼 아이는 쉽게 오지 않았습니다.


5년 후, 딸이 기적처럼 태어났습니다.

아기를 돌보며 매 순간 소중했지요.

아기가 품에 들어오니

'아빠' 소리가 듣고 싶어 집니다.


갓 태어난 아기 얼굴을 들여다보며

하루에도 수백 번

"아빠~" "아빠!" "아~~ 빠!" 합니다.

아기는 웃기도 하고

심각한 표정으로 입 근육을 움직이지만

소리 내지는 못해요.


백 밤쯤 지나 옹알이를 합니다.

아빠는 그때부터 '아빠'에 더 열중합니다.

그러던 어느 날

"아브아브…아브브, 아바바, 아빠!"

옹알이하던 아기가 제 눈을 바라보며

'아빠' 하는 게 아니겠습니까?

아내에게 우리 딸이 '아빠'라고 했다면서

난리 법석을 떱니다.

아내는 백일 된 아기가 어떻게

말을 하냐며 핀잔을 줍니다.

너무 억울한 저는 증명해 보이겠다며

'아빠~, 아~빠!"

얼러 보지만 아기는 멀뚱멀뚱 미소만 지어요.


아내의 몸에

아기가 들어섰을 때,

아니 신이 그렇게 하기로 작정한 때부터

저는 아빠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꽃도 꽃이라 불러 주었을 때 꽃이 된다는

어느 시인의 말처럼 세상에 하나뿐인 딸이

아빠를 불러 주었을 때 진정한 아빠가 되었습니다.

번데기가 나비가 되듯

등이 열리고 날개가 돋았습니다.


사랑이 사람을 만들고,

부름이 존재를 완성합니다.

딸의 목소리에서 구속의 사랑을 깨닫고

삶의 새로운 정체성을 발견했습니다.


아기가 제대로 말을 시작하자

아빠가 수 없이 일러준 '아빠'를 돌려줍니다.

아빠, 아빠, 아빠, 아빠, 아빠, 아빠, 아빠

종일 부르고 따라다니며 몸을 맡깁니다.

질리도록 듣는 '아빠' 소리가 즐겁습니다.

아침잠을 깨우는 새처럼

상쾌하고 발랄합니다.


아빠는 우주를 선물 받았습니다.

우주가 아빠를 부를 때 해와 달과 별이 빛납니다.


딸의 '아빠'는
과거의 어둠마저 끌어안는 빛입니다.

동물농장 기어다니기 008.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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