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곳에서는 1군 발암물질, 어떤 집에서는 김치에 곁들이면 더할 나위 없는 밥도둑. 전 인생에 걸쳐서 극심한 스트레스에 시달리던 시기마다 아토피가 재발했던 나에게는 애증의 대상이었던 햄과 소시지는 어언 1년 전, WTO 산하기관이 대놓고 발암물질로 규정하면서 더더욱 집어 들기 껄끄러운 식재료가 되어갔다. 그렇다고 먹지 않았느냐? 그건 아니고, 소위 ‘쏘야’를 만들 때는 소시지를 따로 볶아서 넣고, 구운 스팸은 개수를 세 가면서 먹는 정도로 건강에 신경을 쓰는 척 해 왔을 뿐이다.
아니, 우리나라에서는 세계 미문으로 명절 선물에 등극할 정도인 쌀밥의 친구 햄과 소시지에 ‘발암물질’이라는 딱지가 붙었다고 해서 냉큼 식생활에서 밀쳐내 버릴 수는 없지 않은가, 의리가 있지. 물론 발암물질은 심각한 단어지만, 요컨대 그럼에도 소시지가 먹고 싶은 사람에게 선택의 여지가 있어야 한다는 말이다. 그리고 집에서 만들어내고 싶을 정도로 소시지에 대한 애정이 깊다는 뜻이다.
사실 르 꼬르동 블루에 다닐 당시에 소시지 만드는 법을 배워서 마음만 먹으면 못 만들 것도 없지만, 정통 소시지와 의욕과 추진력 사이에 깊은 고랑을 파는 재료가 있으니 바로 케이싱이다. 탱탱하고 길쭉한 소시지의 제 모양을 내려면 케이싱을 사야 하는데, 무엇이 문제인가 하면 귀찮다. 구하는 과정도 만만찮지만 짤주머니 깍지에 끼워서 공기층이 들어가지 않도록 빡빡하게 짜 넣는 과정도 귀찮다. 왠지 억울해서 한 번에 오십 개 정도는 만들어야 성이 차지 않을까 싶을 정도다.
자, 이제부터가 본론이다. 이렇게 케이싱을 구하고 사용하기 싫은 사람을 구제하는 놀라운 소시지가 있으니, 바로 미국 특유의 ‘브렉퍼스트 소시지’다. 원래 농장에서 돼지를 도축한 후에 남은 부위를 처리하려고 만들기 시작했으며, 길쭉한 원형으로 빚어서 만들기도 하지만 대체로 햄버거 패티 모양을 띤다. 만들기도 편하고 보관하기도 좋은 형태다. 집에서 기른 돼지를 잡아서 고기를 염장하고 소시지를 만든다니, 가끔 농장 생활 에세이에서 접할 때마다 자연과 함께 숨 쉬는 멋진 모습이라고 생각하며 동경하는 식생활이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스타벅스 생활권을 벗어날 생각이 없는 사람으로서 농장의 노동량을 소화하는 건 불가능할 터이니, 필요한 재료를 원하는 만큼만 돈 주고 살 수 있는 환경에 감사하기로 했다.
브렉퍼스트 소시지는 정말로 만들기도 보관하기도 쉽고, 손에 익으면 각종 재료를 첨가해서 독특한 소시지를 만들기도 좋다. 향신료도 다양하게 넣어보고 과일이나 채소를 이것저것 다져 넣어서 마음에 드는 조합을 만들어보자. 우선 기본 소시지를 만드는 과정은 다음과 같다.
소시지를 만들기 위해 다진 돼지고기를 살 때는 그 자리에서 직접 갈아주는 정육점에 찾아가서 평소보다 지방 함량이 높은 부위를 갈아달라고 하자. 고기는 냉장고에 넣어 직전까지 차갑게 보관한다. 소시지 sausage의 어원이 소금을 치다 salted인 만큼 간을 넉넉히 해야 하는데, 다진 고기 1kg을 기준으로 소금은 12g, 후추는 2g을 넣는다. 더더군다나 케이싱이 없으면 익으면서 염분이 빠져나 가기 때문에 간을 제대로 해야 한다. 반죽 상태에서 간을 확인하고 싶으면 조금 떼어내서 구워 맛을 보면 된다. 소시지에 특유의 풍미를 더하기 위해 기본적으로 세이지와 타임 허브를 다져서 넣지만, 허브의 종류 또한 취향에 맞춰서 다양하게 바꿀 수 있다. 맛을 내기 위해 황설탕을 더하고, 넛맥을 약간 더하면 기본 소시지가 완성된다. 이번에는 여기에 다진 생강과 마늘, 사과를 더해서 ‘사과 생강 소시지’를 만들었고, 훈제 향을 더하기 위해서 훈제 파프리카로 간을 맞췄다.
모든 향신료와 부재료를 준비했으면 곱게 다진 다음 냉장고에서 돼지고기를 꺼내 비닐장갑으로 모든 재료를 주물러 으깨면서 섞는다. 시원한 날씨에도 다진 고기는 상하기 쉬우므로 가능하면 얼음 볼을 아래 받쳐놓고 작업하는 편이 안전하다. 충분히 섞이면 지름 8cm의 동글납작한 패티 모양으로 빚어서 10 X 10cm 크기로 자른 유산지에 올린다. 차곡차곡 쌓아서 비닐봉지에 넣어 냉동실에서 얼리면 한두 달 정도 두고 먹을 수 있다.
기본 소시지가 지겨워지면 한 단계 더 나아가서 스페인의 강렬하게 매콤한 소시지 초리소를 만들어보자. 정통으로 만들려면 안초 칠리 파우더가 있어야 하지만 파프리카 가루나 카이엔 페퍼, 고운 고춧가루 등으로도 충분히 비슷하게 만들 수 있다. 매콤한 맛과 더불어 향신료를 듬뿍 넣어주는 것이 포인트다. 쿠민과 정향을 빈 프라이팬에 살짝 볶아서 고소한 향이 올라오도록 한 다음 곱게 빻는다. 절구가 있으면 좋았겠지만 없어서 볼에 넣고 밀대로 빠갰다. 여기에 다진 타임과 마늘을 더한 다음 시나몬 파우더를 뿌리고, 훈제 향을 더하는 훈제 파프리카와 고운 고춧가루를 섞어서 넣었다. 여기에 다진 돼지고기를 넣고 손으로 으깨듯이 섞으면 반죽이 조금씩 벌게진다. 전체적으로 고른 색을 띠면 셰리주 식초를 넣고 마저 섞어주자. 모양을 내서 보관하는 과정은 위 기본 소시지와 동일하다. 다만 초리소의 경우 하루 정도 숙성하면 맛이 더 좋아진다.
물론 이왕이면 소시지 모양을 내고 싶을 수도 있다. 그런 사람은 쿠킹포일 위에 유산지를 깔고 반죽을 올린 다음 돌돌 말아서 모양을 잡자. 먹을 때는 쿠킹포일이나 유산지 째로 프라이팬에 구워서 마무리하면 된다.
얼마나 더 건강할지는 알 수 없지만, 적어도 아질산나트륨을 더 추가하지는 않았다는 점에서 마음이라도 편하게 만들어주는 수제 브렉퍼스트 소시지다. 이렇게 만들어두면 한 덩어리로 뭉친 시판 소시지보다 더 많은 요리에 활용할 수 있다. 조각조각 부숴서 채소와 함께 볶으면 피자 토핑이나 타코 등에 넣을 수 있고, 그냥 밥반찬으로도 훌륭하다. 바삭하게 구운 잉글리시 머핀에 치즈와 함께 끼우면 맥머핀처럼 먹을 수도 있다.
수제 브렉퍼스트 소시지 만들기
<사과 생강 소시지>
재료(7개 분량)
다진 돼지고기(지방 함량 높은 부위로) 200g, 소금 2g, 후추 0.5g(그러니까, 적당히), 다진 사과 30g, 다진 세이지 1/2작은술, 다진 타임 1/2작은술, 다진 생강 1/2작은술, 다진 마늘 1/2작은술, 황설탕 1/4작은술, 훈제 파프리카 적당량, 넛맥 약간
만드는 법
1 다진 돼지고기는 냉장고에 넣어 사용하기 직전까지 차갑게 보관한다.
2 볼에 다진 허브와 사과, 생강, 마늘, 모든 향신료, 돼지고기를 넣고 위생장갑을 낀 손으로 으깨듯이 섞는다.
3 10 X 10cm로 자른 유산지를 8장 준비한다. 소시지 반죽을 7 등분하여 지름 8cm 크기의 원형으로 빚은 다음 유산지 – 패티 – 유산지– 패티 순으로 차곡차곡 쌓는다. 비닐봉지에 넣어 냉동 보관한다.
<수제 초리소>
재료(7개 분량)
다진 돼지고기(지방 함량 높은 부위로) 200g, 소금 2g, 후추 0.5g(그러니까, 적당히), 쿠민 1/2큰술, 정향 2개, 시나몬 파우더 1/4작은술, 다진 타임 1/2작은술, 다진 마늘 1/2큰술, 훈제 파프리카 1큰술, 고운 고춧가루 1/2작은술(또는 카이엔 페퍼 1/4작은술), 셰리주 식초 1큰술
만드는 법
1 다진 돼지고기는 냉장고에 넣어 사용하기 직전까지 차갑게 보관한다.
2 빈 프라이팬에 쿠민과 정향을 넣고 약한 불에 고소한 향이 날 때까지 볶은 다음 곱게 빻는다.
3 볼에 식초를 제외한 모든 재료를 넣고 위생장갑을 낀 손으로 으깨듯이 섞는다. 소시지 반죽이 붉어지면 식초를 넣고 마저 섞는다.
3 10 X 10cm로 자른 유산지를 8장 준비한다. 소시지 반죽을 7 등분하여 지름 8cm 크기의 원형으로 빚은 다음 유산지 – 패티 – 유산지– 패티 순으로 차곡차곡 쌓는다. 비닐봉지에 넣어 냉동 보관한다.
Writing&Drawing 정연주
Blog: 『이름을 부르기 전까지』 http://nonameprojectstory.tistor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