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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ㅇㅅㅇ Mar 20. 2020

[D+1] 아름답고 복잡한 네팔 입성기

2019년 12월 27일 (2) 

중국 쿤밍에서 네팔 카트만두로 가는 비행기는 30분 정도 지연되었다. 그래도 저가항공의 악명에 비하면 양호한 연착 시간이었다. 


당연히 사진에는 제대로 담기지 않는 풍경이었다.

꾸벅꾸벅 졸다가 착륙 때 즘 눈을 끔뻑거리며 창문 밖을 바라보았다. 구름 위로 눈에 덮인 히말라야 산맥이 보였다. 나는 그 충격적인 풍경에 그만 잠이 달아나버렸다. 

카메라 셔터를 계속 누르며, 잠든 동생을 깨웠다.

하지만 동생은 많이 피곤했는지, '설산? 어디?', '우와 예쁘다,'라며 잠시 창밖을 들여다보더니 다시 잠들어버렸다. 이 아름다운 풍경을 오래 눈에 담지 못했다니 유감이었다.


긴 경유시간에도 불구하고, 이 항공편이 아니었다면, 밤에 네팔에 도착하는 비행편이었다면 이 광경을 보지 못했을 것이다. 이 시간 이 공간에 존재한다는 사실이 다시 한 번 행복해졌다. 네팔에 다시 오게 된다면 그때도 꼭 낮에 도착하는 항공편을 타리라.


착륙하기 직전, 오후의 태양 아래 네팔의 집들이 보였다. 아시아인가, 중동인가, 헷갈릴 정도로 네모난 집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는 게 보였다. 전체적으로 노란 색감 때문에 사막 같은 느낌도 들었다. 

지금 다시 사진을 보니 한 눈에 봐도 먼지가 많아 보인다는 생각이 들지만. 당시에는 그저 긴 비행이 끝났다는 사실이 기뻤다.



카트만두 공항은 '공항'이라고 부르기에는 왠지 부족해보이는 건물이었다. 도착비자를 발급 받기 위해 사람들이 몰렸지만 정확한 안내가 없어 각자도생하는 분위기였다. 우리 역시 두 번 정도 잘못된 줄을 서고 난 후에야 제대로 된 절차에 맞춰 비자를* 발급받을 수 있었다. 


*네팔 입국을 위해서는 비자를 발급 받아야 한다. 대부분은 네팔 공항에서 도착 비자를 발급 받으며, 현지 화폐 또는 미국 달러를 준비하면 된다. 


사실 이 과정은 꽤나 길었고, 많은 인내심을 요했다. 비자 비용을 지불할 때, 직원은 친절하지도 않았으며 '달러'라는 말도 제대로 못 알아들었다. 동생은 손 안에 10달러 여러 장을 쥐고도 20달러로 내야겠다며 다른 가방을 뒤적이고 있었다. 그 사이 카트만두 공항은 3번이나 정전이 되었다. 천만다행으로 와이파이가 되었기에 간만에 지인들과 연락을 하며 간신히 버틸 수 있었다.



카트만두 공항의 조형물.

비자 발급을 마치고 수하물을 찾자, 우리는 녹초가 되어 둘 다 예민한 상태가 되었다. 손에는 짐이 많았고 큰 배낭이 아직 익숙하지 않아 자세가 엉거주춤했다. 


공항 안에 속한 택시 업체는 타멜 거리**까지 8달러를 불렀다. 네팔 물가를 고려하면 비싼 가격임에 틀림 없었다. 


**카트만두의 메인 관광지역


내가 "7달러?"라며 흥정을 시도했지만, 한 직원이 단호하게 이렇게 말했다:



"No less, no more"


아주 성공적인 대사임에 틀림 없었다. 그 순간 흥정은 포기하기로 마음 먹었으니. 그래, 나는 관광객 상대에 도가 튼 이 사람들을 이겨먹을 수 없겠구나, 생각하며 순순히 택시에 올랐다. 다행히 아저씨 말대로 돈을 더 받는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그런데 택시가 출발하기 직전. 조수석에 수상한 사람이 올라탔다. 자신을 Friend라고 소개한 그 남자는 사실 여행사 직원이었다. 한마디로 영업 사원이 출동한 것이었다.




여행사 직원은 자신의 여행 상품을 팔기 전에 우리에게 이것저것 질문을 던졌다. 분명히 공감대를 형성한 뒤, 친한 척 상품을 팔려는 수작일 테지. 가장 먼저 든 생각은 '내가 내 돈을 내고 탔는데 왜 편하게 가질 못하는가' 였다. 하지만 그 뒤에 '두렵다'라는 감정이 뒤따라왔다. 운전수가 문을 잠구는지 '철컥'소리가 들려왔다. 밖은 어느새 해가 져서 택시의 안과 밖이 잘 구분되지 않을 정도로 깜깜했다. 와이파이도 되지 않는데 이 사람들이 모르는 장소로 데려가면 어떻게 될지 아무도 모르는 일이었다. 한 순간 아무것도 아닌 존재가 될 수 있다는 생각에 두려워졌다.


여행사 직원은 우리에게 직업과 전공을 물어봤다. 나는 '법 전공'이라고 힘주어 대답했다. 사실 별로 아는 건 없지만 말이다. 행여라도 함부로 건드리지 말라는, 내가 할 수 있는 최대한의 경고였다. 효과가 있었던 걸까. 그 말에 여행사 직원은 살짝 움찔하더니 이 근방 마을에서도 소송이 끝나질 않는다고 불평을 조금 늘어놓았다.




택시가 큰길가를 벗어나자, 창문 밖으로 보이는 풍경은 시장통이 따로 없었다. 차선이라는 게 있기는 한 건지 의심스러울 정도로 무질서했고, 오토바이가 차만큼이나 많았다. 제대로 포장되지 않은 도로는 차가 덜컹거릴 때마다 흙먼지를 만들어냈다. 게다가 맥락 없이 눌러대는 경적 탓에 온 거리가 빵빵 소리로 가득 찼다. 


사람은 또 왜 이리 많은 것인지. 큰길가를 제외하고는 오토바이와 자동차 틈으로 사람들이 사이사이 들이찼다. 처음에는 게임 '길건너 친구들' 속의 한 장면 같아 귀엽고 재밌게 느껴졌지만. 계속되는 소음에 머리가 아파지고 있었다. '도대체 이런 곳에서 사람이 어떻게 살지?'라는 생각을 하는 순간에도 여행사 직원은 열심히 떠들고 있었다.


"너희는 나 같이 정직한 사람을 만나서 다행인거야. 우리는 절대 돈을 먼저 보지 않아. 관계를 먼저 생각하지."


'진짜는 그렇게 싸구려처럼 대놓고 얘기하지 않아'라는 말이 턱끝까지 차올랐다. 하지만 실상은 여행사 직원의 말에 친절히 대답하기도 바빴다. 긴장된 상태라 에너지가 팍팍 닳고 있었지만, 내 안전을 담보로 쥐고 있는 이 여행사 직원을 언짢게 해서 좋을 건 없었다.



하지만 히말라야 트레킹 포터를 구했냐는 질문에 '아직'이라고 대답한 건 실수였다. 시세라도 알아놓자는 생각으로 한 대답이었지만, 이제 여행사 직원은 "지금 우리 여행사에 가서 티나 마시고 얘기나 하자"는 말까지 꺼냈다. 더 이상 가식의 대답을 할 수 없었던 나는 "우리 너무 피곤해. 내일 시간 되면 들러볼게.. 근데 우리 숙소로 제대로 가고 있는거지?"라고 퉁명스레 대꾸했다.


이런 건물 중 하나가 우리의 숙소였다.

교통체증은 너무나도 심했고 운전수와 여행사 직원은 한참을 더 길을 헤맸다. 끝끝내 그들은 우리의 숙소를 찾는데 실패했고, 우리를 숙소 근처에 내리고 가버렸다.


숙소는 정말 찾기 어려운 구석에 있었다. 시장 뒷골목의 4층 주택은 도무지 호스텔이라곤 보이지 않았다. 방은 깔끔했지만 한기가 심하게 들어왔고, 방문과 창문은 심각하게 부실했다. 순간 이런 상태가 8개월 동안 지속될 것이라 생각하자, 조금은 집에 가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일단은 허기진 배를 채워야 했다. 어두워진 탓에, 숙소 바로 앞 거리에서 대충 '트립어드바이저' 표시가 붙은 식당을 찾았다. 그들은 카드를 받지 않겠다고 했다. 대신 그들은 나름의 친절을 발휘해 우리를 ATM으로 안내해줬는데, ATM은 낡은 컨테이너 박스 안에 있었다. 공중화장실이라고 해도 믿을 외관이었다. 화폐 단위를 잘 몰랐던 우리는 메뉴판에 있던 가격을 떠올려내 감으로 돈을 뽑았다. 와이파이가 되는 곳에서 다시 통장을 확인했을 때, 우리는 6000원의 수수료를 내고 13000원을 인출했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그래도 늦은 밤 배를 채울 수 있는 식당이 있다는 사실에 감사했다. 게다가 식사는 굉장히 맛있었다. 배가 차서 들어온 숙소는 여전히 황량했다. 하지만 숙소 복도에서 어린 아기를 마주치자 어쩐지 안도감이 들었다. 숙소 아래, 3층이 호스텔 주인의 가정집이었던 것이다. 



우리는 와이어와 자물쇠를 꺼내 창문과 문손잡이를 꽁꽁 묶었다. 여전히 숙소는 안전하지 못했고, 한기는 계속 들어왔으며, 난방 시설은 당연히 없었다. 그래도 침낭 속에 들어가니 하루가 무사히 끝났다는 사실에 기분이 좀 나아졌다. 


그리고 난 끔찍한 악몽을 꾸었다. 누군가 얼굴을 벗겨서 살인하는 고어한 꿈을. 눈이 번쩍 뜨였고. 천장을 바라보며 가만히 숨만 쉬다가 겨우 잠들었다. 그 순간은 정말 집에 가고 싶었다. 하지만 고집이라고 해야할까, 맷집이라고 해야할까. 죽이 되는 밥이 되든 지구는 한 바퀴 돌겠다는 생각을 하며 그렇게 첫날밤이 지나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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