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ㅇㅅㅇ Mar 22. 2020

[D+2] 건물과 사람이 함께 숨쉬는 스와얌부나트

2019년 12월 28일 (1)

눈을 떴을 때는 새벽 6시였다. 한국 시간으로 오전 9시에 일어난 셈이다.


5층 옥상에서 내려다본 아침 길거리


호스텔 주인은 수도꼭지를 오른쪽으로 돌리면 온수가 나온다고 했지만 온수는 나오지 않았다. 

우리는 세수만 하고 일찌감치 길을 나섰다. 

씻지 못한 긴 머리는 빙빙 돌려 똥머리를 묶었다.


우리가 일찍 나온 이유는 조식 때문이었다.

하지만 모든 층은 불이 꺼져 있었고, 그 어디에도 조식의 조짐이 보이지 않았다.



아침부터 카트만두는 먼지 투성이었다. 

어젯밤, 이곳의 공기가 심상치 않음을 직감한 우리는 다행히 마스크를 챙겨 나왔다.


"까만코 나올 것 같아."


동생에게 말했다. 나중에 숙소에서 보니 내 예상은 틀리지 않았다.



다행인 건 어젯밤과 달리 차와 사람이 많이 없다는 점이었다. 


골목골목 낡은 집들이 꽤나 아기자기해 보였다.

길거리에는 집만큼이나 개가 많았는데, 그 중 하나가 다가와 내 손을 핥았다.

돌멩이로 노는 아이들, 판자 하나로 만든 상점 간판, 자연 그대로의 도로.

사람이 거의 없는 아침 풍경, 그 꾸며지지 않은 모습이 매력적이었다.

골목길을 지나갈 적에 한 할머니가 합장을 하고 '나마스떼'라고 인사를 건넸다.



무심코 길을 걷다 도살당하는 염소를 보았다.

이 남자는 자신의 집앞에서, 누구나 볼 수 있는 골목 에서 칼질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것이 일상인 삶은 도대체 어떤 느낌일까, 생각하니 기분이 묘해졌다.


그리고 이 광경을 보는 순간에도, 무안하지만 배가 고팠다. 결국 우리는 큰 마트에서 오레오와 'murano'라는 로컬 과자를 집었다. 



사실 '큰' 마트라고 표현하기는 매우 부족했지만. 

벽돌과 판자로 꾸려졌던 다른 곳들과는 달리, 그래도 한국 시골에서 볼 수 있을 법한 편의점의 모습이었다.




그렇게 40분쯤 걸었나, 드디어 '스와얌부나트 사원'에 도착했다.

중간 중간 맵스미가 우리를 말도 안되는 골목으로 안내했지만. 그것은 그것 나름대로의 재미가 있었다. 

아침 일찍 사원으로 향하는 듯한 현지인도 몇 보였다.


배낭여행을 떠난다면 오프라인 지도 '맵스미' 어플을 추천한다. 와이파이가 되는 곳에서 해당 지역의 지도를 미리 다운로드 받아 놓으면 요긴하게 쓸 수 있다. GPS로 나의 현재 위치와 방향, 목적지까지 소요시간까지 알려 준다.


우리 앞에 여러 개의 종들이 나타났다.

사람들은 동쪽에서 서쪽으로 걸어가며 종들을 돌리고 있었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우리의 지도는 동쪽으로 (역방향으로) 가라고 안내했다.

'이 종들을 돌려보고는 싶은데, 그냥 가는 방향으로 돌리면 되는 걸까?'라는 궁금증이 생겼다.


작은 종과 큰 종


우리는 곧 답을 찾을 수 있었다.

우리가 역방향으로 종을 돌리자, 경보로 걸어가던 아주머니가 고개를 저으면서 종을 다시 옳은 방향으로 돌려놓았다. 그 분이 시크하게 우리 옆을 걸어가는 데에는 1초가 채 걸리지 않았다.


작은 종들을 따라 길을 걸으면 가끔 큰 종이 나왔는데, 사람들은 그 종도 한 바퀴 비잉 돌리고는 다시 길을 걸어갔다. 재밌는 풍경이었다.


스와얌부나트는 한국의 불교 사원과 확연히 다른 분위기를 갖고 있었다.

건물의 질감 자체도 달라보였고, 네팔 글자가 곳곳에 쓰여 있는 것도 달랐다.

원숭이가 사람만큼이나 많다는 것도 특이했다.



쉬고 있는 우리를 원숭이가 한심하다는 듯 쳐다본다

사원은 높은 계단 끝에 있었다. 

셀카봉을 든 나는 사원까지 도착하는 영상을 찍고 싶었지만, 20분 쯤 계단을 등반하다 결국 포기했다.


다 도착했을 즘, 옆쪽에서 아저씨가 우리에게 호통을 쳤다. 매표소였던 것이다.

카드는 받지 않는 매표소. 그리고 아직 환전을 하지 않은 우리. 순간 머리가 백짓장이 되었다.

이 수많은 계단을 다시 내려가야 하는 걸까.


하지만 다행히 매표소에서 달러를 받아주어 입장할 수 있었다.





그렇게 한시간 즘 만에 도착한 정상은 아주 높았다. 풍경은 뿌옇기 그지없었지만.

사람들은 아침마다 여기서 모이는 건지, 사원보다는 시장통에 가까워 보였다. 

실제로 물건을 파는 사람들도 많았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그 점이 이 공간을 살아있도록 만들고 있었다.

상인들의 호객하는 소리, 앉아서 기도하는 사람들의 중얼거리는 소리.

빽빽하게 줄 지은 향초의 불꽃, 그리고 향내. 곳곳에 흩뿌려진 꽃가루.

그런 것들이 영적인 힘을 더해주는 것 같았다. 

말하자면 사람과 건축물이 하나 되어 하나의 분위기를 만들고 있는 셈이었다.

새삼 한국의 절은 너무 썰렁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가운데쯤에서는 이상한 의식이 펼쳐지고 있었다. 사진 촬영도 금지된 곳.

사람들은 줄을 서서 작은 탑건물 안에 음식을 던지고 기도를 했다.


무엇을 하는지, 왜 하는지 아무것도 알지 못하면서 슬쩍 줄을 서 보았다.

그저 앞 사람이 하는대로 물그릇에 손가락을 담그고, 기도하고, 꽃잎을 머리 위에 뿌렸다.

왜 이 행위를 하는지는 중요하지 않았다. 

이 공간 이 풍경에 내가 하나의 조각처럼 존재한다는 게 기뻤다.



사원 안의 기념품 상점

사실, 이들과 완벽히 섞인다는 건 불가능했다.

동양인이기 때문이었다.


우리는 아침부터 우리는 '니하오? 곤니치와? 안녕하세요?' 세 가지 언어를 계속 듣고 있는 참이었다.

여기에서 동양인은 관심의 대상인 듯 보였지만 우리의 인종을 정확히 맞추는 사람은 없었다. 


그러나 인상깊게도 한 부자가 우리를 제대로 알아보았다. 아저씨는 아들에게 '코레아노!'라고 기쁘게 소리쳤고. 어린 아들은 수줍게 손바닥을 내밀어 보였다.


억측일테지만, 그 사람들의 외양과 어투로 보아 터키 사람들이 아니었을까. 

터키 사람들은 한국인을 유달리 반가워하니까.

평소에는 한국에 대한 소속감, 혹은 자긍심이 없음에도.

인종을 알아봐준다는 그 별 것 아닌 일이 기쁘게 느껴지는 건 왜인지 모르겠다.




우리는 마지막으로 사원 앞에서 소원을 빌고 내려왔다.

소원. 사실 지금 이대로가 너무 좋아서 소원을 빌 게 없다고 생각했다.

하나, 바라는 게 있는 것 같기도 했지만. 지금이 제일 행복하다는 말이 가식은 아니었다.


계단 폭이 좁아 내려올 때에는 조금 위태로웠다.

사원에서 나와 우리는 더르바르 광장 쪽으로 가기로 했다.



고작 하루 있었는데 골목길을 찾는 것이, 그리고 오토바이를 피하는 것이 익숙해졌다.

신호등이라는 것은 거의 존재하지 않았기에 눈치껏 길을 누비고 다녔다.


가는 길은 올 때보다 더 재미있었다.

서울 종로와 같이 어떤 거리는 빵집만 가득하고 어떤 거리는 천 시장만 가득했다. 

이 좁은 동네에도 시장 위에 정해진 규칙이 존재하는 것 같았다.



맵스미는 점점 더 좁은 골목길을 알려줬고, 급기야 로컬들도 잘 다니지 않는 길까지 나왔다.

비좁은 골목에는 창문이 빽빽한 건물 두 개가 마주보고 있었다.

2층에서 아기가 창문을 열고 우리에게 손을 흔들었다.

하지만 2층이라고 해봤자, 우리가 손을 뻗으면 닿을 것 같은 높이였다. 


"인형이나 난쟁이 집 같아. 정말 사람이 들어가 있는 걸까?"


당연히 사람 사는 집이었겠지만. 계속 허리를 굽히고 생활하는 걸까, 라는 이상한 상상을 하며.

우리는 더르바르 광장에 드디어 도착했다.



일기장을 보니 D+2의 1/3 밖에 쓰지 못해서, 속도를 좀 더 내야겠어요... '세계일주 실패하다' 매주 일/화/목 자정 (월/수/금이 되는 12시)에 올리는 연재글입니다!!
이전 03화 [D+1] 아름답고 복잡한 네팔 입성기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