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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ㅇㅅㅇ Mar 15. 2020

[D+1] 초보 노숙자의 중국 경유

2019년 12월 27일 (1)

우리에겐 많은 게 처음이었다. 비행기 환승을 하는 것도, 13시간이나 공항에서 대기하는 것도, 공항에서 밤을 보내는 것도. 게다가 안 좋은 서비스로 악명을 떨치는 중국 항공사였기에 바짝 긴장할 수 밖에 없었다.


맨 아래, 무지개 끈으로 묶인 배낭이 우리의 것이다. 그리고 중국 공항을 거치며 저 끈은 사라졌다.


다행히 우린 연착 없이 쿤밍 공항에 무사 도착했다. 입국 심사대에서는 엄격하게 종이 일정표를 요구했는데, 우린 정갈하게 티켓을 출력해온 상태였다. 문제는 그 후였다. 입국 심사대를 지난 직후, 여권을 돌려받지 못한 것을 깨달았다.



"원래 여권을 안 돌려주는거야?"


앞서 통과한 동생이 멀뚱한 표정으로 나를 쳐다보았고. 동생 뒤로 한 뭉테기의 사람들이 엉거주춤 서 있었다. 그러했다. 여권을 못 돌려받은 건 우리만이 아니었던 것이다.


가만히 서서 보니 공항 직원이 여권을 전부 걷어가면, 아주 높은 단상 위에 앉은 남자 하나가 여권들로 컴퓨터 작업을 하고 있었다. 도대체 무엇을 하는 걸까. 몰래 입국하는 정치사범이라도 골라내는 걸까. 그렇다면 입국심사대에서 하지 않고 왜 번거롭게 이러는 걸까. 공산국가의 잔재인가. 별의별 상상을 하던 찰나. 여권을 한 뭉테기 들고 공항 직원이 사람들 앞에 섰다. 그리고 여권을 하나씩 펼쳐 호명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는 영어에 능숙하지 못한 눈치였다. 별 이상한 발음 탓에 아무도 그 여권이 자기 것이라고 나서지 않았다. 몇 번을 재시도하던 공항 직원은 결국 옆에 있는 한국인에게 여권을 쑥 내밀어 보였다. 그 한국인 관광객이 크게 이름을 읽자. 그제야 여권 주인이 자신의 여권을 찾아갈 수 있었다.


새벽의 쿤밍 공항

그렇게 공항 직원은 모든 여권을 관광객에게 보여줬고, 관광객이 호명하면 여권의 주인이 나타나는 코미디가 시작됐다. 어느새 사람들이 우르르 몰려 '언제 내 여권이 나오나' 귀만 세우고 있었다. 


그 사이에 수십 명의 여권정보가 한 관광객에게 공개되고 있었고. 호명을 시작한 관광객은 졸지에 공항 업무를 보게 되었다. 한 뭉치의 여권 호명이 끝나자. 여권을 돌려받지 못한 사람들은 실망한 표정으로 무기한 대기모드로 돌아갔다.


그리고 나와 내 동생은 우리보다 늦게 온 사람들이 먼저 여권을 받아 나가는 광경을 수십번도 넘게 보아야 했다. 여기에 '선입선출'이란 시스템 따위 없었던 것이다. 여권은 단상 위로 쌓이기만 했고, 덕분에 맨 아래 깔려있던 여권은 제일 나중에야 일처리가 끝나 처음 온 사람이 마지막에 나가는 어마어마한 사태가 벌어졌다. 동생은 '벌써 나는 한국이 좋아지려 해'라며 답답한 일처리에 한숨만 푹푹 쉬었다.




그렇게 입국 심사장을 통과하는데에는 한 시간이 넘게 걸렸다. 그러나 우리는 그 뒤에도 편히 앉지 못했다. 분명 경유하는 관광객을 위한 휴게실이 지하 3층에 있다고 했는데. 한 시간 동안 공항을 구석구석 뒤졌지만 "지하 3층"이란 공간 자체를 발견하지 못한 것이었다. 결국 우린 휴게실을 포기하고 음식점이나 카페에 앉기로 했다. 그러나 그들마저 우리를 받아주지 않았다. 정확히 말하자면, 카드를 받아주지 않았다. 달러를 주겠다고 해도 소용 없었다. 중국 화폐만 받겠다는 심보였다. 


뭐 이런 웃긴 공항이 다 있어!


결국 1층 벤치가 노숙 장소로 낙점되었다. 이미 바닥에 누운 사람과, 벤치에 웅크려 조는 사람들이 있었다. 그러나 우린 편히 잠들지 못했다. 저가항공답게 이들은 수하물을 맡아주지 않았다. 우린 환승 대기시간 내내 큰 배낭 두 개를 이고 다녀야 했던 것이다. 말인 즉은, 우린 전재산과 함께 공항 노숙을 해야만 했다. 


가방과 의자를 모조리 연결했다.

처음에 우리는 교대로 눈을 부치는 방법을 사용했다. 그러다 불현듯 자물쇠가 있다는 사실이 떠올랐다. 우리는 모든 가방과 의자를 하나의 자물쇠로 묶었다. 최소한의 방비는 된 셈이었다. 하지만 여전히 난 편히 잠들 수 없었다. 입구에서 들어오는 한기 탓이었다. 나는 후드를 뒤집어쓴 채 졸기만 했다. 동생은 이미 포기한듯 다운 받아온 넷플릭스를 보고 있었다.


결국 우린 잘만한 곳이 없을까, 하이에나처럼 다시 주변을 어슬렁거렸다. 그래도 이번에는 큰 수확이 있었는데, 공항 안을 뱅뱅 돌다가 B3 휴게실이라고 적엘리베이터 표지판을 발견한 것이었다! 어떻게 한 층을 이렇게 꼭꼭 숨겨놓을 수가 있는건지. 이 공항은 도무지 편의와는 거리가 멀었다.


게다가 휴게실은 의자가 푹신하고 공항 직원이 있다는 점을 빼면 벤치보다 나을 게 없었다. 블로그에서는 담요를 빌려준다고 했는데, 쌓여있는 담요를 가리키자 공항 직원이 단호하게 노우를 외쳤다. 어쩔 수 없이 배낭 속 담요를 꺼냈지만 여전히 한기 때문에 오래 있지는 못했다. 


결국 화장실을 잠시 들렀다가 3층으로 자리를 옮기기로 했다. 중국의 화장실은 전부 재래식이었다. 한국과 다른 점이 있다면, 용변 구멍이 매우 넓다는 것이었는데. 그렇기 때문에 허벅지 힘이 더 많이 필요했다... 공항이라고 꽤나 깨끗하다는 점이 더 웃겼다.



3층은 창문이 통유리로 된 데다가 사람이 많아서인지 따듯했다. 게다가 아주 가끔 와이파이까지 잡히니 황송할 지경이었다. 특별히 연락할 곳이 없는데도, 매일 쓰던 와이파이를 갑자기 안 쓰기란 매우 불편했다. 나는 데이터를 껐다, 켰다를 반복하다가 드디어 몸을 떨지 않고 졸 수 있었다.


어디 보자.. 7시간 지났으니까. 아직도 보딩까지 6시간이나 남은거야?


한참을 졸다가 일어난 것 같은데 시간은 징그럽게도 느리게 갔다. 게슴츠레 본 창문 밖으로는 아무 풍경도 보이지 않았다. 먼지인지 안개인지 모를 알갱이들이 뿌옇게 창문을 막고 있었던 것이다. 한국은 환절기에만 미세먼지가 심한데 여기 사람들은 사시사철 이러고 사는 걸까. 그래도 9시쯤 되니 풍경이 조금 드러났는데, 개발이 전혀 안 된 것 같은 시골이었다. 


한국을 떠난 뒤 먹은 첫 끼

'또 카드 없다고 안 받아주는 건 아니겠지', 걱정하며 우리는 아침 먹을 곳을 찾아다녔다. 인천 공항을 떠난 이후로 우린 초코바로만 버텨왔던 것이다. 


그때 멀리서 경찰견과 붉은 띠를 두른 공안이 우리 옆을 지나갔다. 뉴스에서만 보던, 말로만 듣던 그 악명 높은 공안.. 순간이었지만 위압감이 느껴졌다.



우린 의외로 쉽게 카드를 받는 식당에서 아침을 먹을 수 있었다. 톡 쏘는 향신료 맛이 익숙하진 않았으나 그런대로 먹을만했다. 그 뒤로도 우린 졸다, 멍 때리다를 반복하다 드디어 네팔로 가는 비행기에 올랐다. 중국에는 이미 코로나가 퍼지고 있는 상황이었으나. 아무도 그것에 대해 언급하지 않았고, 그렇게 우리는 전염병의 존재를 모른 채 중국을 떠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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