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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ㅇㅅㅇ Mar 24. 2020

[D+2] 쿠마리, 사라졌으면 하면서도 보고 싶은

2019년 12월 28일 (2) 

더르바르 광장에 도착하니 매표소 직원이 우리를 불러세웠다. 우리는 인당 10달러의 돈을 내고 들어갔다.

하지만 금세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곳은 말하자면 공원 같은, 사방이 뚫려있는 그야말로 '광장'이었던 것이다.

좁은 길들이 수많은 갈래로 뻗어 골목시장과 연결되어 있었다.

만약 우리가 그 매표소를 통하지 않고 다른 골목으로 왔다면?

25000원을 아낄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운 생각이 잠시 스쳐 지나갔다.



믿기지 않겠지만 지붕 위에 있는 것은 장식물이 아니라 비둘기다.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답게 건물들은 네팔 전통의 모습을 간직하고 있었다.

중국풍과 동남아풍이 섞여 있는 듯한 양식이었다.


안내지도를 펼쳐 설명을 읽어보고자 했으나 고유명사가 많아 이해하기 쉽지 않았다.

말하자면 '기와'를 Giwa로 적어놓은 셈이었는데, 이것이 경복궁을 처음 방문한 외국인의 느낌일까.


유심히 설명을 읽다가 드디어 눈에 익은 단어가 들어왔다.

'KUMARI'

분명히 쿠마리*의 집이라고 쓰여 있었다.


*쿠마리는 네팔의 전설 속에 등장하는 신인데, 현재까지도 여자아이를 선발해 '살아있는 처녀신'으로 모시는 풍습이 남아있다. 쿠마리는 사원 밖을 벗어나기가 힘들고 월경을 시작하면 은퇴해야 하기에 현대에는 비판의 대상이 되기도 한다. (청소년기까지 여신으로 떠받들어진 아이가 사회에서 어떻게 적응할 수 있겠는가) 


정말 쿠마리의 집이 여기라고? 관광지 한복판이?


건물이 쓰러지지 말라고 기둥이 지탱하고 있다. 아이가 아니면 살 수 없을 것 같이 작은 집이었다.

의문이 들면서도 살아있는 신화를 직접 볼 수 있는 생각에 나는 한껏 들떴다.

그러나 한순간 나의 감정은 아쉬움으로 바뀌었다. 

건물 입구에 '외국인 출입금지'가 쓰여있었던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혹시라도 쿠마리가 창문을 통해 얼굴을 내밀지는 않을까, 답답해서 산책을 나와보지는 않을까, 싶어 잠시 서성였다.

마치 기약 없이 줄리엣을 기다리는 로미오처럼?

그러나 쿠마리는 볼 수 없었다. 


나오면서 생각해보니 그들의 문화를 비판하면서도 구경하고 싶어하는 그 심리가 참 이상하게 느껴졌다.

마치 바넘**을 욕하면서도 그의 서커스를 보고 싶어하는 관객 같았다.

새삼스럽게 미셸 푸코의 '광기의 역사***'를 다시 읽어봐야 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위대한 쇼맨'의 모티브가 된 인물. 희대의 사기꾼이면서 대성한 공연연출가라는 양면적인 평가를 받는다.

***광기의 역사는 근대 이성을 비판하는 미셸 푸코의 대표적인 서적이다. 푸코는 '정상과 비정상을 구분해 사람들을 사회 밖으로 추방하는' 이성을 부정적으로 평가한다. 개인적으로 문명과 야만은 어떻게 구분되는가에 대한 부분이 흥미롭다.


중앙에 있는, 그릇 뒤에 서 있는 사람이 이곳의 관리자인듯 보였다.

쿠마리의 집을 나오니 조각상 앞에서 절하는 사람들이 보였다. 불상이 아닐텐데, 힌두교 사원의 조각상은 뭐라고 부를까.


힌두교는 브라마, 비슈누, 그리고 시바 신을 모시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이 조각상은 셋 중 어느 것으로도 보이지 않았다.


사람들은 이마에 색색의 점을 찍고 기도했다.

합장과 묵념을 하는 사람들, 팔을 내밀어 조각상을 더듬는 사람들이 비좁은 공간을 채웠다.

그곳을 기웃거리자 이내 남자 아이가 우리에게도 점을 찍어주었다.

그가 내민 손바닥에 우리는 가지고 있던 잔돈을 내주었다. 정작 들어가서 뭐라고 기도했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특이한 장소지만 그다지 기억에 남지는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하며 우린 더르바르 광장을 나왔다. 

광장 한쪽에는 노숙인들에게 밥을 주는 듯한, 배급을 하는 집단이 보였다. 


동시에 우린 엄청난 식욕을 느꼈다.

새벽 6시에 길을 나선 후부터 정오가 되도록 밥을 먹지 못한 것이다.

하지만 아직 환전을 하지 못해 더 걸어야만 했다.



다행히 체력이 바닥날 때 즘 타멜거리(카트만두의 메인 관광단지)가 나왔다.

사실은 여행을 떠나며 '최대한 로컬 식당에 들어가서 밥을 먹자'라는 다짐을 했는데, 도저히 그럴 엄두가 나지 않았다. 숨만 쉬어도 흙먼지가 들어오는 이 도시에서 흙벽과 판자로만 이루어진 식당을 들어가기에는 겁이 났던 것이다.



결국 우리는 깔끔하고 큰, 프랜차이즈 같은 식당을 골라 들어갔다.

음식은 저렴하고 맛있었다. 

야채가 특히 고랭지에서 바로 따다가 상에 올린 것 같았다. 김치를 먹는 것 같은 아삭한 식감이었다.


며칠 더 지내보니 네팔의 야채들은 대체적으로 다 그런 듯 보였다.

무엇보다 이 모든 것이 한 플레이트에 4천원 정도였다. 아주 만족스러운 식사였다.




이렇게 6시간 가량을 걸었음에도 시간은 아직 오후 1시였다.

우리는 잠시 숙소로 갔는데, 와이파이가 잡히기 시작하자마자 방에는 정적이 흘렀다.

원래도 이불 속 인터넷은 좋은 여가거리지만 여기서는 인터넷이 귀했기에 더더욱 재미있었다.



그렇게 1시간가량 쉰 후 다시 길을 나섰다.

어제 택시를 타며 눈여겨 보았던 티베트 서점에 들렀다.


네팔 특유의 색감과 책들이 어우러져 아기자기한 분위기를 만들어냈다.

책들은 주로 티베트의 역사, 싯다르타, 이너피스, 마음 다스리기에 대하여 다루고 있었다.

내가 본 네팔은 집요하게 영적인 힘에서 답을 찾으려는 곳 같았다.


종교라는 말은 왠지 어울리지 않는다. 믿음이라는 말도. 굳이 글로 풀자면 '영적인 습관'이 가장 어울린다.

이다지도 시끄러운 도시에 이런 단어가 어울린다니 아이러니했다.

같은 힌두교를 믿었지만 인도와도 달랐고, 한국의 유교, 일본의 도교, 심지어 불교와도 무언가 달랐다.




그 와중에 나의 시선을 잡아끈 것은 네팔어로 쓰인 책 '어린왕자'였다. '살까?' 잠시 고민했지만. 

이틀차부터 배낭에 짐을 더하기 싫어 포기했다.

서점에서 나온 우리는 내일 버스 탈 곳을 확인하러 버스 정류장으로 향했다.


이렇게 큰 사거리에도 신호등은 없었다.

정확히 말하면 시설은 있었지만 작동하지 않았다.

심지어 중앙에 경찰이 서 있었는데도 아무런 규제를 하지 않았다.

우리는 로컬 사람들이 길을 건널 때 눈치껏 종종걸음 쳐 길을 건넜다. 


불길하게도 버스 정류장은 문이 닫혀 있었는데. 

우리는 토요일이니 그러려니 하고 넘어갔다.

하지만 불길한 예감은 절대 틀리는 법이 없었다. 

(이 얘기는 D+3편에서..)





돌아오는 길에 '가든스오브드림'이라는 명소가 보였다.

무심코 들어가기에는 8천원이라는 입장료가 굉장히 아까운 곳이었다. 

분명히 아름다운 곳이었지만, 사진으로 봤을 때가 더 아름다웠다.

사진을 찍고 한바퀴를 도는 데 채 20분이 걸리지 않았다.


그래도 가끔 예쁜 상점이 등장한다, 이렇게!


우리는 금세 다시 타멜거리에 서 있었다.

1평 남짓의 공간에서 빼곡히 물건을 쌓아놓고 파는 사람들, 좁은 흙 골목길, 그 사이를 경적소리와 함께 시끄럽게 지나가는 오토바이. 우리에게 '니하오'라고 하는 사람들.


이런 네팔의 거리가 퍽 익숙해졌다.

심지어 길치인 나의 머릿속에 숙소와 주요 명소의 위치가 파악되기 시작했다.




방탄소년단의 굿즈를 파는 상점도 보았다!


그리고 우리는 서양인들이 많았던 카페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동생은 가끔 이 때 먹은 밀크쉐이크가 생각난다고 했다.

하지만 같은 곳에서 포장한 치즈케잌은 뽀또 과자를 10배쯤 응축해놓은 맛이 났다.

다 식은 블랙커피를 벌컥벌컥 마시고 나서야 입이 개운해졌다.




하루의 끝, 숙소 안. 다행히도 미지근한 온수가 나오고 있었다.

내가 추위에 떨며 샤워를 할 동안 동생은 남자친구와 통화를 했다.


'온수 곧 끊길 것 같은데'


재빨리 샤워를 했지만 소용이 없었다. 동생이 물에 손을 댔을 때는 이미 냉수가 되어 있었다.

동생은 샤워를 포기했고, 나는 선풍기를 틀어 덜덜 떨며 머리를 말렸다.


배낭여행을 떠난다면 드라이기를 챙기길 추천한다. 특히 머리카락이 길다면! 기온이 낮을 때에는 감기에 걸릴 확률이 커지기 때문이다. 게다가 속옷 등을 손빨래 해서 말릴 때에도 드라이기는 유용하다.


한국을 떠날 때 많이 상해 있었던 머릿결은 이상하게도 훨씬 좋아져 있었다.

'자주 감지도 않고, 드라이기로 열을 가하지 않으니 수분이 탱탱한 걸거야.'

그런 잡생각을 하며 침낭으로 들어갔다.


다행히 악몽을 꾸지도, 중간에 깨지도 않았다.



'세계일주 실패하다' 매거진은 매주 일/화/목 자정(월/수/금이 되는 12시)에 연재됩니다. 그리고 오늘 성균관대학교는 한 학기 전체를 온라인 강의로 진행하겠다고 공지했어요! 이렇게 집콕하며 글쓰는 한 학기 확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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