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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ㅇㅅㅇ Mar 27. 2020

[D+3] 카트만두에서 포카라로, 죽음의 버스와

2019년 12월 29일 (1)

밖에서 희미하게 아기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한 아기가 칭얼대더니, 이어서 다른 아기가 울기 시작했다. 그리고 사방에서 터져 나오는 울음소리들. 

몸을 뒤척이다, '불이라도 난 걸까'하는 생각에 바짝 긴장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가만히 들어보니 그건 사람의 소리가 아니었다. 발정난 고양이들이었던 것이다. 

핸드폰을 보니 새벽 5시반이었다.


뒤이어 들리는 닭 소리와 함께 나는 잠을 깼다.

빼곡한 차와 건물, 닭과 염소, 고양이와 사람이 엉켜 사는 도시라니!




어제 못 말리고 잔 머리 탓에 몸이 좀 으슬으슬했지만 감기에 걸릴 정도는 아니었다. 

하지만 오늘 이 도시를 떠난다는 게 기뻤다. 난방 없이 이 집에서 계속 살다가는 골병이 들 것만 같았다.

우리는 알맞은 시간에 밖으로 나왔다. 큰 배낭이 아직 익숙하지 않았지만 20분 정도 걸어갈 체력은 충분했다.


새벽 여명이 보였지만 밖은 여전히 어둑어둑했다.

새벽 6시반, 버스를 타러 가는 길.


어깨가 아파올 때 쯤 도로 맞은 편에서 버스회사 직원이 손을 흔들었다. 

우리 앞에는 5차선 대로가 놓여 있었지만, 건너 오라는 직원의 급한 손짓에 그대로 무단횡단을 했다. 

네팔답게 아무도 그 모습을 유별나게 여기지 않았다.


하지만 뒤이어 청천벅력 같은 소리가 들려왔다.

아저씨가 티켓을 멀뚱히 쳐다보다, 여기저기 전화를 걸더니, 버스 타는 곳이 여기가 아니라는 진단을 내린 것이다. 




우리는 어제 닫혀 있는 버스 정류장을 보았고, 불안한 마음에 인터넷 예매를 했던 터였다.

통상 만원이라던 버스 티켓은 보이지 않았고 3만원짜리 럭셔리 버스 티켓만을 구할 수 있었지만, 우리는 '주말이라 싼 표는 벌써 다 나갔나봐' 지레짐작을 해버렸다.

그리고 오늘, 럭셔리 티켓이 안내하는 곳으로 왔지만 왜인지 우리의 승차장은 이곳이 아니었다.


정확한 승차장의 위치는 구글맵에 'Thamel Bus Stop'이라고 검색하면 나온다. 카트만두에서 포카라로 가는 방법은 매일 오전 7시 전, 이 곳으로 가서 기사에게서 직접 표를 사는 것이다. 언제나 수요도 많고 공급도 많으니 절대, 절대 예매를 권하지 않는다. 



다행히 친절한 직원은 정확한 정류장의 위치를 설명해 주었다.

우리가 있던 곳에서 15분 정도 더 걸어야 한다고 했다.

시각은 6시 40분. 버스가 떠나기까지 20분이 남았다. 

하지만 어제 처음 네팔에 온 우리는 아저씨의 길 설명을 정확히 알아들을 수 없었다. 


나는 재빨리 지도를 켜 아저씨가 말한 거리 이름을 검색한 후, 이 곳이 맞냐고 확인을 받았다.

이 작업을 거치지 않았다면 우리는 분명히 버스를 놓쳤을 것이다. 

순간 어디에서 이런 기지가 나왔는지는 모르겠지만 나쁘지 않은 위기 극복 방법이었다.


떠나는 날 새벽의 카트만두


우리는 13키로 배낭을 매고 전속력을 다해 걸었다. 그 추운 날 땀을 뻘뻘 흘리며. 뛰는 건 무리였다.

정류장은 우리가 온 방향의 정확히 반대편이었다.


모퉁이를 지날 적에, 큰 경적소리를 내며 오토바이가 지나갔다. 순간 이 도시가 왜 이렇게 시끄러운지 알게 되었다. 

클락션이 없다면 자주 사고가 날 것이 뻔했기 때문이다. 배려로 시작한 그 행위가 습관이 되어 온 도시를 가득 시끄럽게 매우는 것이었다. 




정류장에 도착했을 때는 6시 55분이었다.

정류장이라는 말이 무색할 정도로 많은 버스들이 일렬로 늘어져 서 있었다. 

이 중 어떤 것이 우리 버스인지 전혀 알 수 없는 것이 문제였다.


어쩔 수 없이 버스 기사 중 한 사람을 붙잡고 우리의 표를 보여주었다.

버스 기사는 뒷 버스로 가보라고 했다. 하지만 뒤의 기사도 뒷 버스로 가라고 했다.


그렇게 뒤로, 또 뒤로. 갈수록 시간은 흐르고 있었고 불안한 마음도 커졌다.

다행히 거의 마지막 버스 쯤, 우리에게 타라고 하는 기사를 만날 수 있었다.



그러나 아무래도 우리는 버스를 잘못 탄 듯했다.

널찍한 좌석에 와이파이까지 된다는 예매내용과 달리, 버스는 그저 낡은 버스일 뿐이었다.


의자 몸통에는 지저분한 때가 껴있었고 작은 선풍기 안에는 먼지가 뽀얗게 쌓여 있었다. 

우리는 조식 대신에 생수 한 병을 제공 받았다.


나는 버스 안내원에게 설명을 하려 애썼다. 

"우리가 예매한 버스는 이런 게 아니야. 이 바우처를 봐. DELUX BUS라니깐!"



하지만 안내원은 험악하게 빨리 타라고 할 뿐이었다. 

최소한 우리에게 다른 빈 자리를 줄 수도 있었는데, 그는 우리를 굳이 맨 뒷자리에 태웠다. 

포카라에 도착할 다른 방도가 없었으므로 우리는 입을 꾹 다물고 자리로 갔다. 


다행히 우리 앞에 한국인 아저씨 둘이 있어 위안이 되었다. 

카트만두에서 처음 보는 한국인이었다. 그들은 내 속마음을 대변해주고 있었다.


아니 여기 앞에 빈 자리 있구만 굳이 맨 뒷자리에 태운대?
보니깐, 현지 사람들 위주로 앞자리에 태우는 것 같더라고. 외국인들은 다 뒤로 몰고.



7시 5분쯤 사람들을 꽉꽉 태우고 나서야 버스는 출발했다. 

블로거들이 그렇게 타지 말라고 경고한, 네팔 버스의 맨 뒷자리에 앉아.

히말라야에서 새해를 보내겠다는 그 일념 하나로.


다행히도 후에 우리는 업체 측의 사과와 함께 환불을 받았다. 포카라까지 공짜로 간 셈이었다. 

하지만 당시에는 속으로 온갖 불만을 삼키고 있었다. 기대했던 조식, 와이파이, 아무것도 없었다. 가족들에게 연락도 채 하지 못했다. 현실과 상상의 괴리가 큰 만큼 고통스러워야 했다.


버스는 비포장도로 위에서 심각하게 좌우로 덜컹거렸다. 멀미약을 먹은 게 다행이었다.

그 고통도 잠시, 나는 목베개를 하고 꾸벅꾸벅 졸기 시작했다. 

문득 눈을 떴을 때에는 달리는 버스 옆에 낭떠러지가 보였다.




고산 위에 있는 구불구불한 길이었음에도 난간이 없었다. 버스는 낭떠러지 바로 옆에서 좌로, 우로 덜컹거리고 있었다. 느린 속도도 아니었다.


차선은 한 방향에 하나 뿐이었는데, 가끔 반대편 차선에서 엠뷸런스 소리가 들리거나, 오토바이가 차선을 넘어 추월하는 광경이 보였다.




순간 어떤 블로그에서 본 글이 떠올랐다.

낭떠러지 밑으로는 떨어진 버스의 잔해가 보인다는 그 말이.


오만가지 상상력이 발동하며 스멀스멀 공포감이 올라오기 시작했다.

종교가 없음에도 기도가 절로 나왔다. 


"제발 살아서 포카라에 도착하게 해주세요."



물론 그 수 많은 버스 중에서 우리 버스에 사고가 날 가능성은 희박했으나.

핸들 한 번만 잘못 틀면 바로 낭떠러지행인 그 곳에서 확률은 아무런 의미가 없었다.

나는 지금 당장 죽는 상상을 했다.



나는 그동안 이 정도면 행복했다고, 언제 죽어도 상관 없다고 생각해왔다.

하지만 살게 해달라고 안하던 기도까지 하는 걸 보면 사람의 욕심이란 끝이 없나보다.

그리고 아이린 애들러를 쫓을 때 셜록 홈즈가 보여준 통찰*은 정확했다. 


*셜록 홈즈는 아이린 애들러가 갖고 있는 기밀 사진을 되찾아달라는 의뢰를 받는다. 그는 아이린의 집에서 방화극을 벌여 사진의 위치를 알아낸다. '불이야'하는 소리를 듣자마자 아이린이 사진을 챙기러 갔기 때문이다. 홈즈는 인간에게 위험이 닥치면, 도망치기 전에 가장 소중한 것을 지키려 한다고 말했다. 



그 순간에도 내가 쓴 작품을 떠올리고 있었으니. 죽음에게는 이상한 힘이 있다.

'내가 죽어도, 그래도 지인들에게 대본을 보내놨으니깐. 유작으로라도 만들어주지 않을까. 각색을 해서라도 작품이 세상에 나왔으면 좋겠다. 지금이라도 데이터를 켜서 최종고를 보내 놓을까. 제발 그렇게라도 세상에 무언가 남기고 갈 수 있었으면 좋겠다.'

그런 우스꽝스러운 상상을 하고 있었다.



왼편의 오토바이는 추월을 하느라 차선을 벗어났다

그렇게 버스는 서너시간쯤을 산길에서 달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 채 정오가 되지 않은 것이 끔찍했다.


버스는 총 4번 정도 휴게소에 들렀다.

하지만 옴짝달싹도 하기 싫은 자리에서는 그냥 일어나지 않는 편이 훨씬 편했다.


그 중 나는 두 번째 휴게소에서 밖으로 나왔는데.

산 위에 평지, 그 위에 덩그러니 간이 식당과 나무 판자로 된 화장실이 얹혀 있었다.


화장실은 남녀 구분도 없었고, 불빛도 없었다.

문을 닫고 들어가자 온통 깜깜한 어둠이었다.

바닥에는 진흙인지 오물인지 모르는 것들이 잔뜩 깔려 있었다. 

바지가 끌리지 않게 바짓단을 한껏 올리고는, 말 그대로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채로 헤치워야만 했다.



포카라가 가까워지자 창문 너머로 히말라야가 모습을 드러냈다.

산은 이상하게도 홀로 뿌연 모양새였다. 비현실적인 그림이 CG로 덧붙여진 것 같은 모습에 한참을 쳐다보았다. 

버스는 계속 달리는 데에도 산과의 거리가 좁혀지지 않는 것 같이 느껴졌다.





오후 2시쯤 포카라의 도심이 눈앞에 나타났다. 

하지만 그곳에서 버스 정류장까지는 1시간 가량이 더 걸렸다. 

멀어서가 아니었다. 주유를 해야했기 때문이다.


정류장을 코앞에 두고 이 주유소에서 몇십분을 정차했는지 모르겠다.

하지만 안전히 포카라에 도착했으므로 이 사람들의 방식을 그냥 받아들이기로 했다.


한국에서는 서너시간만 버스를 타도 굉장히 길게 느껴졌는데, 8시간을 달렸음에도 생각만큼 힘들지는 않았다. 

지쳐있기는 했지만. 도착의 기쁨이 더 컸기 때문일까.




최종 도착은 오후 3시 쯤이었다.

가장 위험한 자리, 버스 맨 뒷좌석의 중앙자리에 앉아 있던 젊은 일본 여자가 우리에게 같이 택시를 타자고 제안했다.

우리는 그렇게 게스트하우스가 있는 포카라 호수에 도착할 수 있었다.


알고보니 우리와 그녀는 바로 옆 숙소에 묵는 사이였다.

두 숙소가 멀기 때문에 돈을 더 달라던 택시 기사의 말이 무색하게 느껴지는 순간이었다.



'세계일주 실패하다' 매거진은 매주 일/화/목 자정(월/수/금이 되는 12시)에 연재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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