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12월 30일 (1)
새벽 5시에 일어나는 건 생각만큼 어렵지 않았다.
우리는 단단히 짐 점검을 한 후 선물받은 공진단을 챙겨 먹었다.
처음으로 마주하는 히말라야 위에서 지쳐 포기하지 않기를 바라면서.
큰 배낭 1개, 그리고 작은 배낭 2개.
3박 4일치의 짐을 들고 우리는 1층으로 내려갔다.
그렇게 입고 갈거야?
바람막이 차림으로 고도 3200미터의 히말라야를 올라가겠다니. 당연한 반응이었다.
하지만 우리는 패딩조끼, 후리스, 그리고 바람막이 총 3겹을 껴입고 있었다.
핫팩도 두둑히 챙겼으니 괜찮을거라고 민박집 사장님이 우리 편을 들어주었다.
어차피 등산할 때에는 추위를 느낄 틈이 없을 것이다*.
*땀이 식은 후가 최악이다. 체온이 급격히 내려가기 때문이다. 처음부터 땀이 나지 않는 차림이 최고다. 패딩을 안 가져간 것을 후회하진 않는다. 하지만 돌이켜보건대, 내복과 긴팔옷을 몇 벌 더 챙겼으면 좋았을 뻔했다.
재윤님과 달님. 둘은 2박 3일 일정으로 푼힐을 트레킹한다고 했다**.
**푼힐은 히말라야 트레킹 코스 중 가장 난이도가 낮다. 여유롭게 3박 4일을 잡고, 빠르면 2박 3일도 가능하다. 가장 대중적인 코스는 안나푸르나 베이스캠프까지 가는 코스로, 일주일 정도가 소요된다.
재윤님은 지프에 올라타자마자 우리에게 먹을 것을 권했다.
그렇게 4명의 등산객과 2명의 포터, 그리고 드라이버까지 7명이 탄 지프가 출발했다.
좁은 공간 안에서 우린 서로의 이야기를 나누었다.
재윤님은 탈색모에 숏컷, 마르지 않았지만 누가 보아도 운동을 많이 한 외형이었다.
그녀는 반 년간 외국에서 일을 하고 나머지 반 년을 남미에서 보낼 예정이었으나, 일을 오래 하게 되며 여행은 포기했다고 한다.
귀국하기 전, 네팔에 두 달 가량 머무는 모양이었다.
6개월 간의 남미는 너무 길지 않냐고 물었더니 되려 너무 짧다는 답이 돌아왔다.
그녀는 이미 포카라에서 요가 클래스를 배우고 왔으며, 하산한 후에는 타투를 하고 아이들과 무술도 배울 거라고 했다. 오래 머물며 현지에 완벽히 스며드는 여행자였던 것이다.
'내가 생각했던 진정한 배낭여행은 이런 건데.'
멋있다는 생각과 함께 동경심이 따라왔다.
문득 나는 배낭여행을 흉내내고만 있는 것은 아닌지 불안한 마음이 들었다.
그러나 돌이켜보면 고작 여행 4일차였다. '나의 여행은 어떻다'며 평가를 내릴 필요는 없었다.
달님의 이름은 실제로도 굉장히 특이한 외자였다.
그녀는 어디서나 한 명 쯤은 볼 법한 인상 좋은 얼굴을 하고 있었다.
달님은 지난 1년을 방글라데시에서 보냈으며, 직장도 그곳에서 찾을거라고 말했다.
내가 기억하는 방글라데시는 카트만두보다도 먼지가 많고 인프라가 없는 곳이었다.
(12년 전 쯤 잠시 의료봉사를 도우러 간 적이 있었다.)
그런 곳에서 직장을 찾는다니, 이번에는 경외심이 들었다.
그 정도로 달님은 복지와 봉사에 관심이 많은 걸까.
그녀가 뭐라고 얘기했는지는 정확히 기억나지 않는다.
하지만 달님에게 특별한 사명이 있다기보다는, 그저 방글라데시가 '더 편한 곳'인 듯했다.
문득 사람에게는 정신적 고향이 따로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정신적 고향.
그 단어 자체가 이상할 수도 있겠다.
정신은 애초에 몸과 분리되어 태어나지 않는 것 같기에.
적어도 나는, 정신이란 시간이 겹겹이 쌓인 자취라고 생각한다.
그러므로 살아온 삶과는 떼어 놓을 수도 없는 것이고, 그렇기에 평생을 한국에서 산 달님이 방글라데시를 더 편하게 여긴다는 것은 설명할 수 없는 일이었다.
그럼에도 나는 그녀를 보며 그런 생각을 하게 되었다. 인간에게 정신적 고향이 따로 있을지도 모르겠다는.
또 하나 기억에 남을 만한 이야기는 인도에 관한 것이었다.
세계일주 얘기를 꺼내면 모두가 인도를 걱정했는데, 역시나 또 얘기가 나왔다.
두 사람 모두 인도 여행을 한 후였다.
재윤님은 매력적인 그 곳에 다시 가고 싶다고 한 반면, 달님은 다시는 발도 들이지 않겠다며 질색팔색을 했다.
당시에는 이해하지 못했지만 직접 인도에 가보니 두 사람 모두 이해가 되었다.
어느새 지프차는 산중턱을 올라가고 있었다.
점심인 듯한 아침을 먹기 위해 우리는 한 휴게소에 섰다.
진정한 로컬식당에서 먹는 첫 로컬음식이었다.
우리는 구멍이 뚫린 도우와 국에 가까운 수프를 선택했다.
네팔과 인도에서 흔히 맡을 수 있는 향신료 냄새가 올라왔다***.
맛은 이질적이지도 특출나지도 않았다.
산 중턱이라 물가가 비쌌을텐데도 한 접시에 천원이 채 안 됐다.
***두 국가는 문화적으로 매우 비슷하다. 그들만의 차이점이 있겠지만, 외국인의 시선에서 비슷한 점이 많았다. 특히 식당 음식은 공식 메뉴판이 따로 있는 건 아닌지 의심스러울 정도로 비슷했다.
잠시 찬바람을 들이킨 후 우리는 1시간을 더 이동했다.
드디어 눈앞에 세찬 물줄기가 보이자 고든은 지프에서 내려 팀스퍼밋을 제출하러 갔다.
나는 새파란 빛의 물줄기를 사진에 담은 후, 스트레칭을 하며 본격적인 산행 준비를 했다.
동생은 화장실에 가고 싶다고 했는데, 유료 화장실인 것을 현지인 운전수가 도와주어 슬쩍 다녀왔다.
다른 포터는 여기에 한국인이 세운 학교가 있다며 뿌듯하게 표지판을 가리켰다.
엄홍길 대장이 세운 학교였다. 한국인 4명은 일제히 '우와 신기하다'는 반응을 보였다.
우리보다도 네팔인 포터들이 더 신나보였던 건 나의 착각이었을까.
그리고 별안간 다시 타라는 얘기가 들려왔다.
아직 도착하려면 멀었다는 청천벽력 같은 소리와 함께.
지프 산행은 이제부터가 시작이었다****.
****이 곳은 '나야풀' 근처이다. 푼힐 트레킹 코스는 보통 '나야풀' 혹은 '울레리'에서 시작 된다. 우리는 지프로 나야풀을 지나쳐, 울레리까지 올라간 것이었다.
우리는 2시간 가량 '지프를 타고 트레킹을 했다'.
네팔은 도로라고 부를 수 있는 곳도 그다지 사정이 좋지 못했다.
하물며 등산길인 이 곳은 그야말로 사막 위의 매드맥스를 연상케 하는 길이었다.
매 초 지프는 좌우앞뒤로 흔들렸고, 종종 놀이기구를 타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작은 나무다리가 놓인 냇가를 지날 때 지프는 쿨하게 네 바퀴로 물을 뚫고 지나갔다.
한국의 사파리라면 '수륙양용차'라는 세련된 장비를 사용했겠지만.
여기서 그런 걸 들이밀었다간 한 달도 안돼서 바퀴에 구멍이 날 게 분명했다.
덜컹거리는 지프 위에서 우리 넷은 폭소를 터뜨렸다.
이 상황 자체가 웃기기도 했지만, 아무렇지 않은 현지 포터들의 반응이 더욱 웃겼다.
그리고 재윤님과 달님은 그야말로 '미친 캐미'를 보여주었다.
"이 지프 일회용이냐?"
"그냥 이대로 푼힐까지 올라가달라고 하자"
두 사람의 티키타카는 이루 묘사할 수 없을 정도로 정신 없었고 재미있었다.
그들의 유머를 더 많이 기억하지 못한 게 유감일 정도다.
지프는 중간에 딱 한 번 멈추었다.
공사 탓에 길이 통나무로 막혀 있었다. 산의 저어 위 절벽에 인부들이 보였다.
포터들이 크게 외치자, 저쪽편에서 대답이 들려왔다.
약간의 대화 끝에 우리는 통나무를 치우고 다시 전진할 수 있었다.
그렇게 2시간.
목적지인 울레리에 도착했다.
제 일을 마친 지프는 마침내 얌전히 주차되었다.
날씨가 좋아 맑은 하늘에 설산이 빼죽 보였다.
우리는 마지막으로 재윤님, 달님과 인사를 나누고 떠날 준비를 했다.
등산스틱과 수통을 꺼내고 화장실에 다녀왔을 때 두 여자는 이미 출발한 후였다.
우리 역시 고든 아저씨와 셋이서 출발 인증샷을 찍고 힘차게 돌계단을 오르기 시작했다.
아 맞다, 충전기 안 갖고 왔어!
동생이 외쳤다. 안타깝게도 나와 동생은 핀모양이 달랐기에 도움을 줄 수 없었다.
이렇게 꼭 빼먹은 게 생각난 때는 이미 늦은 때다.
저번주는 개인사정으로 3회 연재에 실패했어요.. 4월이 되었으니 다시 새로운 마음으로 달려볼게요!!
이 매거진은 매주 일/화/목 자정(월/수/금이 되는 12시)에 연재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