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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연주 Sep 23. 2023

깔끔하게 점차 조금씩

날은 시원하고 저는 자유롭습니다. 기대어 얼굴과 몸에 닿는 바람에 귀를 기울입니다. 문득 공원에서 즐거이 뛰어다녔던 아이가 아른거립니다. 제가 오페어로 지낼 때의 일이지요. 많은 시간을 아이와 함께 보냈답니다.


어느 순간부터 콩깍지가 꼈는지 아이가 어떤 행동을 해도 귀엽게만 보였습니다. 심지어 아이가 악을 쓰며 울 때도 싫지 않았습니다. 저는 어쩐지 아이를 파악한 것만 같았는데요. 악을 쓰며 울 때는 예외 없이 가짜 울음입니다. 아이는 있는 힘껏 소리 지르며 울면서도 슬그머니 저의 눈치를 살피곤 했는데 저는 그것이 웃겨서 새어 나오는 웃음을 억누르고는 했었습니다. 사진첩은 아이의 사진으로 가득해지고 저는 사랑을 느꼈습니다.


그러나 왜일까 저는 동시에 집에 가고 싶더라요. 불행히도 여기서 말하는 집이 어느 곳인지 확신할 수는 없습니다. 불편한 것은 하나도 없음에도 가끔씩 이방인으로서의 저를 느꼈습니다. 어느 하루 트램을 타자마자 안도감이 몰려오며 구역감이 들었습니다. 볼 안쪽을 씹었습니다. 한 번 잘근 씹었습니다. 두 번 잘근잘근 씹었습니다. 여러 번 잘근잘근잘근잘근 그러자 입안 가득 더럽게 가득 괴었지요. 그날 밤 저는 무엇이 비참한지 알 수 없는 주제에 비참해서 잠을 잘 수 없었습니다.


진심은 존재하지 않고 그러니 의도 또한 중요하지 않습니다. 모두 그저 찰랑이는 잔물결입니다. 그리고 저는 언제나 잔물결에 익사합니다. 얼마나 많은 제가 잔물결에 익사한 지는 누구도 관심 가지지 않습니다.


더 이상 견딜 수 없다는 마음이 그래도 견뎌야 한다는 생각을 앞지르기 시작했습니다. 그러자 완전히 떠나기로 결정하는 일은 일사천리로 진행되었습니다.


떠나는 날 아이는 웃고 저는 울었습니다. 희한한 일이었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아이는 시도 때도 없이 엉엉 울곤 했으니요. 아이는 크로와상을 자기가 다 먹어놓고서 크로와상이 어디 갔냐고 울었고, 공원에서 잘 놀다가도 제가 이제 밥 먹을 시간이니 집에 돌아가자고 말하면 싫다며 울었고, 술래잡기 놀이를 할 때면 언제나 술래가 되어야만 했던 제가 장난으로 이번에는 네가 술래라고 말하기만 했을 뿐인데 본인이 왜 술래가 되어야 하냐고 울었고, 유튜브에 나오는 장난감 광고를 보고서는 저 장난감을 당장 사러 가야 한다며 울었고, 주말이면 약속 때문에 밖으로 나가곤 했던 저의 다리를 부여잡고 나가지 말고 자신과 함께 있어줘야 한다며 울었고, 울었고, 울었고, 또 울었는데 말이죠.


조그마한 아이는 입버릇처럼 자기가 얼마나 자랐냐며 얼른 빨리 큰 형이 되고 싶다고 하였지요. 그래서 저는 아이가 울 때면 장난스럽게 울면 형이 될 수 없다며 아기와 다를 것이 없다며 놀리곤 했습니다.


그랬던 아이가 제가 떠나던 날에는 울지 않고 환하게 웃으며 잘 가라며 손을 흔들더라고요. 아이는 울음을 못 그치는 저를 영 이해 못 하겠다는 듯 그가 울 때면 제가 늘 그에게 했던 말을 저에게 돌려주었습니다. 그렇지요. 울면 아기와 다를 것이 없습니다.


상당한 시간이 지났습니다. 그럼에도 저는 오늘과 같이 드문드문 아이를 떠올립니다. 저는 아이를 어쩔 수 없이 사랑했습니다. 아이가 죽도록 미웠을 때도 물론 있었습니다. 그러다가도 저는 아이를 품에 안고 있었는데요. 아이는 특히 제 목을 끌어안고 "Câlin Câlin" 하며 장난치는 것을 좋아했습니다. 그럴 때면 저는 경계가 희미해지는 것만 같았지요. 경계가 희미해지면 잠시나마 완전함을 느낄 수 있습니다. 동시다발적으로 밀려오는 감정과 생각이 끊기는 유일한 순간인 것입니다.


지지난 크리스마스에는 깜짝 영상을 받아보았습니다. 즐거운 몸짓으로 조잘조잘 말하는 영상 속 아이를 들여다보며 모든 것이 순식간에 괜찮아졌습니다. 아무래도 그 찰나 생의 완벽한 균형이 있었던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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