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를 잘 키우려는 마음
나이가 들어가면서 그런 건지 아이들이 성장하면서 그런 건지는 모르겠지만, 생각이 조금씩 바뀌어가는 걸 느낀다. 예전에는 짜증이 났던 순간도 알고 보니 별게 아니라는 걸 알게 되었고, 아등바등하지 않아도 결국 해내는 아이들을 보면서 배우고 성찰하며 한 단계 성장한다.
아이와 매일 밤 숙제와의 사투를 벌인 적이 있다. 영어 학원 숙제였는데 매일 정해진 분량이 만만치 않았다. 그렇다고 못해낼 정도로 많거나 어렵지는 않았는데 문제는 아이 혼자 해내기가 버거웠다는 것이다. 먼저, 온갖 애를 써도 스스로 할 생각을 하지 않았다. 둘째, 매번 무엇을 해야 하는지 몰랐다. 셋째, 꾸역꾸역 자리에 앉아서는 온갖 짜증을 냈다. 넷째, 글씨는 알아볼 수 없고 다섯째, 시간이 무한정 걸렸다.
이런 이유들로 나는 저녁 내내 아이 옆에 앉아 있어야 했고 떨어뜨리는 연필을 몇 번이나 주워주며 잔소리를 했다. 그러다 보면 열 시가 훌쩍 넘어 부랴부랴 양치하고 잠이 들기까지 또 전쟁이었다.
학습 태도만큼은 흐트러지는 걸 못 보는 엄마였다. 학습 내용을 이해하지 못해도 되고 어려워해도 괜찮다. 그런데 최선을 다하지 않는 모습을 보고 있자면 화가 났다. 이렇게 가다가는 아이와의 관계가 나빠질 일만 남은 거나 마찬가지였다.
이런 날이 쌓여가자, 어느 날 아이가 부족한 게 아니라 내가 바뀌어보면 어떨까 생각이 들었다. 객관적으로 아이가 그렇게 최악이지는 않았다. 숙제를 스스로 잘 하지 못하긴 해도 고작 8살이었고 학습 또한 못하는 건 아니었다. 일하는 엄마로서 내가 편하자고 보낸 영어학원이었다. 아이는 엄마의 니즈에 맞춰 매일 살아내고 있을 뿐이었다.
엄마 공부가 필요했다. 나와 아이를 살려줄 무언가가 필요했다. 고인 지식만으로는 육아의 현실을 살아내기가 역부족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이에게 잔소리하는 말들을 담아 나에게 했다. 스스로 좀 더 괜찮은 엄마가 되어보자고 마음먹었다. 아이가 해주었으면 하는 행동들을 내가 먼저 해보자 싶었다. 틈이 나면 읽고, 쓰고, 말하면서 나의 생각을 단단히 쌓아 올리는 일에 몰두했다.
졸린 눈을 비비고 몸을 움직였다. 귀찮음을 이겨내고 읽고 썼다. 오락의 유혹을 물리치고 아이들과의 시간에 집중했다. 그랬더니 정지한 뇌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나도 꽤 창의적인 사람이라는 생각을 인생에 처음 하게 되었다. 아이들과 함께하는 시간을 어떻게 꾸려나갈지 아이디어가 마구 떠오르기 시작한 것이다.
공부하며 듣고 보는 것이 많아지니 생각하는 시간은 자연스레 따라왔다. 주어진 시간을 수동적으로 살아내는 것이 아니라 적극적으로 만들어나가고 싶은 욕구가 생겨났다. 이 모든 것이 아이들을 잘 키우고 싶은 마음에서부터 출발한 것이다.
그렇게 아이의 마음을 잘 이해하고자 하는 공부에서부터 미래 사회를 맞이하는 자녀 교육까지, 나의 배움은 계속되는 중이다.
엄마 공부가 필요한 이유
세상은 계속 변하고 있다. 그런데 그 속도는 점점 더 빨라지고 있다. 아이들이 살아갈 세상은 내가 자라던 때와 너무나도 다르다. 나는 디지털도 어른이 되어서야 익숙해진 디지털 이민자일 뿐이지만, 아이들은 디지털과 모바일을 모두 다 뛰어넘은 AI 네이티브로서 살아간다. 이 간극은 우리가 다른 나라 사람과의 사고방식 차이를 느끼는 수준, 어쩌면 그 이상일지도 모른다.
기술도, 가치관도, 사회적 흐름도 따라잡을 수 없을 정도로 변한다. 아이들의 엄마이지만 아이들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멈춰있을 수 없었다. 새로운 것을 배우고 익혀야 한다. 이제 부모 공부는 선택이 아닌 필수가 되었다.
또 다른 이유로는, 아이를 키우는 과정에서 겪어보지 못한, 예측할 수 없는 상황에 자주 부딪히게 된다는 것이다. 나와는 다른 아이, 이해가 되지 않는 아이를 볼 때 "이럴 땐 어떻게 해야 하지?" 하는 막막함이 한두 번이 아니다. 이해를 하기 위해서는 알아야 한다. 수학도, 영어도 배울수록 잘 이해할 수 있게 되는 것처럼 아이들의 발달 단계와 마음공부를 배워야 한다.
마지막으로, 아이 마음도 중요하지만 그에 못지않게 중요한 건 바로 엄마 마음이기 때문이다. 아이를 키우면서 그동안 이렇게 나에 대해 모르는 게 많았구나 싶다. 아이를 돌보는 데만 에너지를 쏟다 보면 나라는 존재는 희미해져만 갔다. 그럴수록 육아도 더 힘들어지고 있다는걸, 엄마 공부를 하면서 깨닫게 되었다.
나의 감정, 욕구를 잘 알게 될수록 아이들에게도 좋은 영향을 주기 시작했다. 그러니 엄마 공부는 선택이 아닌 필수가 아닐까.
엄마 공부를 하면 생기는 변화
엄마 공부를 하면서 아이들과의 관계가 훨씬 부드러워졌다. 유연해졌다. 일상에 여유가 생기기 시작했다. 예전엔 아이들이 왜 그러는지 이해하지 못해서 화가 날 때도 많았는데, 이제는 아이들의 감정을 더 공감할 수 있게 되니 아이들 내게 먼저 고민도 털어놓고 마음을 표현한다.
또 엄마의 변화가 아이들도 자연스럽게 영향을 주는 걸 느낀다. 책 읽고 공부하는 부모의 모습이 자연스럽다. 엄마도 계속 도전하는 모습을 보면서 아이들이 응원해 주기도 한다. 핸드폰 하나로 온 세상과 연결되어 있는 아이들일지라도, 가장 큰 영향을 받는 건 바로 부모이기에, 엄마 공부는 아이들 역시 성장하게 만든다.
아이들을 잘 키우기 위해서 시작한 공부였지만, 사실은 나를 위한 일이기도 했다. 뭔가를 배우고 성장한다는 건 나를 돌보는 일이었다. 하루하루가 조금 더 충만해지는 건 우리 모두가 건강하게 성장하는 힘이 되어주고 있다.
사실 엄마 공부라는 것은 거창한 게 아니다. 책 한 권 읽기, 강의 하나 듣기, 아니면 평소 더 배우고 싶었던 것을 시작해 보는 것도 출발점이 될 수 있다. 꼭 육아서가 아니더라도, 아이 교육에 대한 배움이 아니더라도 좋다. 중요한 건, 아이와 함께 자라는 엄마가 되겠다는 마음일 테니까.
여전히 난 성장하는 중이고 아마 아이가 다 클 때까지, 아이가 성인이 된 이후에도 공부는 계속되지 않을까. 함께 가는 길에 있는 모든 엄마, 아빠들을 응원한다. 빨리 가지 않아도 된다. 괜찮은 엄마로 평가받기 위함이 아니라, 좋은 엄마, 좋은 사람이 되어가기 위한 길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