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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성성이 Aug 30. 2022

중고 거래를 하며 만난 사람들


잠들기 전 항상 캠핑 카페의 게시글을 읽어보는데, 하루 종일 강력하게 봉인되었던 지름신이 강림하는 것을 느낍니다. 어느 분이 그리들에 고기를 구워 마시는 사진을 보고 파워 스토브와 그리들을 과감하게 질렀고, 기관총만큼 큰 의자의 수납 때문에 고민할 때 헬리녹스 의자가 수납이 용이하고 튼튼하며 캠핑 의자의 종결자다!라는 말에 저도 모르게 의식 없는 좀비처럼 캠핑용품 매장으로 달려가 헬리녹스 사바나 체어를 구입한 적도 있었습니다. 


저는 멈출 줄 모르고 영화 <분노의 질주>에 나오는 운전할 때 거침없이 엑셀만을 밟아대는 대머리 '빈 디젤'처럼 절제와 자제라는 단어를 잊고 브레이크 없이 캠핑 장비 구입이라는 엑셀을 무자비하게 밟고 있는 대머리가 되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한동안 다른 캠퍼분들이 인스타에 올린 감성 캠핑 사진을 보고 또 눈이 돌아 감성캠핑을 하고 나도 좋아요를 받아보고 싶은 마음에 열심히 나무 재질로 된 장비들을 열심히 구입했지만, 결국 장비의 보관과 차량 적재는 물론 저의 수준 낮은 체력으로 인해 결국 미니멀 캠핑을 할 수밖에 없게 되었습니다.


결국 그동안 장만했던 캠핑 장비 중 부피가 크거나 체력적인 소모를 크게 발생시키는 장비들을 당근마켓 등에 열심히 올리고 시작했고, 거래를 하면서 만난 다양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하려 합니다.


1. 거지 (표현이 그렇긴 하지만, 적당한 말이 떠오르지 않네요.)


아마 중고 거래를 해보신 분들이라면 한번쯤은 만났을 유형일 것입니다. 저도 물건마다 최소 한 명씩은 이런 분들과 대화 정도는 했었는데요. 이분들이 가진 공통적인 특징은 제가 책정한 가격과 상관없이 자신들만이 가지고 있는 주관적인 가격으로 제게 거래를 요청했습니다.


그중 인상적이었던 분은 우드쉘프 2개와 우드 테이블을 일괄 처리할 때 만난 사람인데, 저는 하루라도 빨리 처분하고 싶은 마음에 구매했을 때보다 거의 절반 이하의 금액으로 (물론 장비의 상태도 제가 애지중지 아껴 거의 새것에 가까웠습니다.) 올렸는데, 가장 먼저 대화를 신청하신 분은 인터넷에서 자신이 미리 검색해 본 최저가의 우드쉘프와 우드 테이블 가격을 이야기하며 제가 올린 금액의 정확히 절반 금액에 거래하자고 했습니다. 


저는 그분이 검색하신 제품들과 다르게 제가 내놓은 제품은 국산 브랜드의 제품이고 현재 인터넷에 판매 중인 링크를 전달하며 가격 차이를 알려드렸는데, 같은 우드 재질인데 브랜드가 뭐가 중요하냐는 말과 이미 사용한 중고이니 막무가내로 자신이 책정한 절반의 금액으로 달라고 했습니다. 결국 저는 그분에게 그 가격에 판매할 수 없다며 정중하게 거래를 거절했습니다. 


잠시 후 그분이 다시 제게 대화를 요청했는데, 우드 테이블만 살 수 없냐고 해서 한꺼번에 처분하고 싶었지만, 테이블이라도 빨리 없애고 싶은 마음에 다시 가격을 제시했더니 순순히 그 가격에 구매하겠다고 합니다. 그러며 거래할 장소를 이야기하는데 대뜸 '테이블은 제가 제시한 금액에 살 테니 우드쉘프를 하나 그냥 주세요.'라고 합니다. 


'우드쉘프 하나 그냥 주세요..'


순간 저는 제가 글을 잘못 봤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제가 무슨 동물원의 원숭이도 아니고 무슨 '조삼모사' 전법을 쓰려는 건지, 평소 욕 하는 것을 별로 좋아하지 않았지만 그 순간만큼은 마음속에서 욕설이 나올 것 같았습니다. 하지만 온도 유지를 위해 정중하게 '그렇게는 팔 수 없습니다. 그리고 거래는 못하겠네요.'라고 거절했습니다. 


2. 네고시에이터


미니멀웍스의 글래머 쉘터를 판매할 때 만난 협상가입니다. 처음 제가 올린 가격에 판매가 되지 않길래 가격을 한 번 낮췄는데, 낮추고 얼마 되지 않아 한 분이 거래 관련 채팅을 신청했습니다. 쉘터의 전체적인 상태, 폴대의 상태 등을 꼼꼼하게 점검하며 이 분은 제게 좀 더 구체적으로 피칭했을 때의 사진과 현재 상태의 사진을 요청했습니다. 


그 당시 이 쉘터를 하루라도 빨리 처분해야 새로운 쉘터를 구입할 수 있었기에 요청대로 주차장으로 달려가 쉘터를 설치히고 그 모습을 사진으로 담고 부속품들을 나열한 사진을 찍어 함께 보냈습니다. 


그분께서 제가 전송한 사진을 보더니 쉘터에 먼지가 좀 묻었다며 2만 원 정도 가격을 내려달라 말했습니다. 바로 먼지를 털고 이 먼지의 흔적은 좀 전에 쉘터를 치면서 묻은 먼지라며 설명과 동시에 깨끗해진 상태의 사진을 전송했습니다. 그 후 어떻게 발견했는지 쉘터를 넣는 가방의 흠집을 이야기하며 1만 원 네고를 요청하길래 저는 쉘터에 흠집이 있는 것도 아니고 보관하는 가방에 작은 흠집 때문에 1만 원을 빼줄 수는 없다고 강경하게 대응했습니다. 


그러나 끝까지 가격 네고에 대해 포기하지 않으려 합니다. 전생에 무슨 방망이 깎는 노인이었는지 깎는 것을 엄청 좋아합니다. 그럼 자신이 직접 가지러 갈 테니 다시 1만 원을 깎아 달라고 합니다. 이 분과 채팅을 하면서 저의 인내심도 섬세하게 깎이고 있는 것을 느낍니다. 아무래도 이 분에게 저는 미완성된 조각상 같은 존재였나 봅니다. 


결국 저는 그분에게 "제가 그럼 님이 계신 곳에 직접 가져다 드릴 테니 만원 더 올려서 팔게요."라고 했을 때 비로소 제가 제시한 금액으로 거래를 할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하도 깎는 것을 좋아하길래 조각칼 같이 날카로운 인상의 조각 미남을 기대했는데 의외로 인상 좋은 토토로 같은 아저씨여서 아주 조금 충격을 받았습니다. 하하.. 그래도 제가 협상왕을 이긴 뿌듯한 거래였습니다.


3. 토끼에서 살쾡이로 변신하는 여사님


캠핑용품 중 비교적 가장 크고 수납할 때 자리 차지를 많이 하는 키친 테이블을 처분할 때 만난 귀여웠던(?) 중년의 부부의 이야기입니다. 구입해서 2번 정도밖에 사용하지 않은 거의 새것이었지만, 승용 캠퍼의 한계 때문에 눈물을 머금고 판매한다는 글을 올리면서 키친 테이블의 부피가 상당히 크니 승용차로 캠핑하시는 분들은 신중하게 구매를 결정해달라는 글을 올렸습니다. 


그때 한 분이 구매 의사를 밝히셔서 채팅을 신청하셨고, 아주 쿨~하게 협상을 완료하여 주말에 거래하기로 약속했습니다. 그리고 거래하기로 한 주말 구매하신 분에게 아침 일찍 연락이 왔고 (아주 상냥하시고 뭔가 기분이 좋아지는 목소리를 가진 아주머니셨습니다.) 차로 직접 저희 집까지 오시기로 했습니다. 


약속한 시간에 정확히 맞춰 오셨고, 저는 그분들 앞에서 전체적인 상태를 보여드리기 위해 크고 웅장한 자태의 키친 테이블을 펼쳐 보였습니다. 수납된 상태부터 이미 컸던 키친 테이블을 펼쳤을 때의 그 웅장한 크기에 두 분은 조금 놀라시는 것 같았지만, 이내 평정을 찾으시고 아내분께서는 이곳저곳을 꼼꼼하게 살펴보셨습니다. 아내분께서는 구매에 적극적인 모습이셨고, 남편 분은 주말에 쉬고 싶은데 어쩔 수 없이 아울렛에 끌려온 남편의 표정 그 자체였습니다. 저는 남편 분의 표정이 이해합니다. 하하..


남편 분은 뒤에서 '이거 너무 큰 거 아닌가..' 라며 중얼거리셨고, 아내 분은 그런 남편 분의 말을 못 들은 체하시며 제게 사용법, 접는 방법 등을 물어보셨습니다. 그러나 남편분께서 "평소 요리도 안 하는 사람이 캠핑 가서 간단히 먹지. 뭐 얼마나 한다고 이런 거까지.."라고 하셨을 때 인자하고 상냥한 토끼 같은 표정의 아내분의 이마에서 조금 힘줄이 서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아마 남편 분께서는 캠핑에 큰 의지가 없으신데 아내분의 강력한 캠핑에 대한 의지로 캠핑을 하고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아내분께서는 심호흡을 크게 한 번 하신 뒤 인자하신 모습으로 저를 바라보며, "접는 방법 다시 한번 알려주세요."라고 하셨고, 저는 살짝 눈치를 보며 접는 방법을 다시 한번 친절하게 설명해 드렸습니다. 아내 분께서는 "의외로 접는 게 더 쉬운 것 같네요." 라며 만족하시고, 캠핑을 시작하신 지 얼마 안 되었는데, 또 어떤 장비를 사야 하는지 물어보셔서 저는 캠핑 관련 카페를 알려 드리며 여기서 한 번 물어보신 뒤 구체적으로 체크 리스트를 만들어 구매하시면 좋을 것 같다고 말씀드렸습니다. 


하지만 그때 남편 분이 또 작은 목소리로 '아주 캠핑장에 살림을 차리려나 보네..'라는 식의 말씀을 하셨고 드디어 아내 분의 인내심이 끊어지셨고, 토끼 같던 표정은 분노한 살쾡이의 표정으로 변해 남편 분에게 분노한 표정으로 단 세 글자, "입. 금. 해"라고 하셨습니다.


순간 세상이 멈춘 듯 정적이 흘렀고 그때까지 머리를 긁적이며 불만스러운 표정으로 있던 남편 분의 표정은 바싹 긴장한 표정으로 "어. 그래야지." 라며 빠르게 제게 계좌번호를 물은 뒤 입금하셨고, 저는 입금이 된 휴대폰 화면을 보여드리며 그동안 아내 분께 말씀드리지 않던 호칭으로 조심스레 말씀드렸습니다. 


"사모님 입금 확인했습니다. 즐거운 캠핑되십시오. 그리고 물건은 제가 차에 실어드리겠습니다." 


"아니에요. 이렇게 아끼시는 것을 싸게 주신 것만으로도 충분하죠." 라며 온화한 표정으로 제게 말씀하셨고, 남편 분을 향해서는 "뭐 해. 당장 실어."라고 눈에서 슈퍼맨과 싸이클롭스가 쏘는 레이저를 발사하며 말씀하셨습니다. 


그렇게 토끼와 살쾡이의 양면성을 가진 아수라 백작 사모님과의 거래를 마치며 돌아가는 차를 바라보며 그날 남편 분께서 제발 무탈하시길 기원했습니다.


4. 검증은 필요합니다.


빔 프로젝트를 판매할 때 경험한 일입니다. 빔 프로젝트를 뭔가에 홀린 듯 구입했지만, 생각보다 필요성을 느끼지 못해 중고로 판매를 결정했습니다. (사실 룸앤TV를 사고 싶은 마음에 처분했는데, 와이프 설득이 너무 힘드네요.)


거의 새 제품과 다름없어 그런지 몇 분이 대화 신청을 하셨고, 저는 그중 가장 먼저 대화를 신청하신 분과 거래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이 분은 엄청 쿨하신 분이어서 제품의 상태만 간단히 물으시더니 제가 사는 지역 근처로 직접 오시겠다고 했습니다.


우리는 지하철 역 앞에서 거래를 진행하기로 했고, 저와 짧은 단답형으로 계속 짧게 채팅이 이루어지길래, 저와 같은 건장한 아저씨를 예상했는데, 예상 밖으로 예쁘장하게 생긴 젊은 여성분이 제게 "빔 프로젝트 판매하기로 하신 분이죠?"라고 말을 걸었습니다. 


저는 물건을 보여드리며, 간단하게 설명을 드렸습니다. 그러자 그 여성분께서 "제가 중고 거래하면서 몇 번 안 좋은 경험 때문에 검증을 해야 할 것 같습니다."라고 하셨습니다. 문제는 빔 프로젝트를 검증해 드리려면 전기가 필요한데요.


결국 저희는 지하철 역사 내로 들어와 전기를 연결할 곳을 찾았지만, 제가 찾은 곳은 남자 화장실 밖에 없었습니다. 그런데 구매하시려는 분이 여성분이어 남자 화장실로 모시고 와 검증을 할 수도 없고, 결국 일단 구매는 하고 집에서 시연해 본 뒤 이상이 있을 경우 환불 약속한다는 내용의 문자로 안심을 드린 뒤 거래를 마쳤습니다. 


그 후 이 분에게 문자는 더 오지 않았습니다. 다행입니다.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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