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렵게 백컨트리 320 쉘터를 구입한 뒤 이 아이를 활짝 펼쳐보고 싶은 마음에 캠핑장 예약을 하려 했으나 가고 싶은 캠핑장은 모두 예약이 완료된 절망적인 상황이었습니다. 물론 저보다 더 실망한 건 캠핑 간다고 들떠 있는 아들이었는데, 그런다고 10살 아이와 함께 노지 캠핑을 도전할 중년의 패기는 없기에 캠핑을 포기하고 있는 순간 구원의 전화가 왔습니다.
아이의 학교 친구 아빠가 이번 주에 캠핑장을 예약했는데, 주말에 급한 일이 생겨 가질 못하니 원한다면 저보고 대신 가라고 하는 기특한 연락이었습니다.
저는 1초의 고민도 없이 "내놔!"를 외쳤고, 캠핑을 하며 어떤 음식을 먹을지, 어떤 놀이를 할지 아이와 이야기하며 즐거운 마음으로 짐을 챙겼습니다.
드디어 토요일, 5월 이후 날이 따뜻해지면 캠핑을 함께 다니겠다는 와이프를 집에 남겨두고 아들과 저는 들뜬 마음으로 출발했습니다. 다음날 비가 내린다는 예보는 있었지만, 저희 부자는 비 좀 맞으면 어때! 얼마만의 캠핑인데! 하는 기대감으로 가득 차 있었습니다.
아이가 요즘 푹 빠져있는 포켓몬에 대한 이야기를 하면서 오다 보니 벌써 캠핑장에 도착했습니다. 처음 가보는 캠핑장인데, 서울에서 한 시간 정도의 거리인데 캠핑장 관리가 잘 되지 않는 것 같아 그런지 사람도 없었는데, 아이와 함께 많은 시간을 보낼 수도 있을 거 같고, 자리 또한 마음대로 고를 수 있었는데 방방장 바로 옆인 자리라 아이도 만족하고 있었습니다.
오후 3시가 넘었어도 아무도 오지 않았습니다. 마음속으로 캠핑장의 이 구역은 우리 부자가 접수했다!라고 생각할 때 차 한 대가 들어왔습니다. 잠시 정차 후 창문 너머로 이야기는 나누는데 캠장님의 표정이 예사롭지 않음을 느꼈습니다. 잠시 후 황급히 도망치 듯 자리를 피하시는 캠장님을 보고 저는 짧은 시간 동안 여러 생각과 도대체 저 차에는 누가 타고 있을까 하는 궁금증이 생겼습니다.
"아저씨 무리인가? 아니면 무섭게 생긴 형님들인가?"
그 차는 자리도 많은 데 하필 저희 텐트 옆에 차를 세웠습니다. 그리고 제 궁금증은 생각보다 빨리 풀렸습니다. 아이들이 먼저 내리는데 아이들 머리가 모두 금발입니다. 그리고 운전석과 조수석에 아빠, 엄마가 내리는데 역시 머리가 금발입니다. 한국인 4인 가족이 단체로 금발로 염색을 했나 생각을 하고 싶었지만, 그들은 외국인이었습니다.
그들은 뭔가 자기들만의 언어로 이야기를 하는데 얼굴 표정으로 봐서는 매우 기분이 좋아 보입니다. 순간 제가 텍사스로 캠핑을 왔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애써 관심이 없는 척하려 해도 저의 눈길은 캠핑장에서 처음 보는 외국인 가족 쪽으로 향하고 있습니다. 아빠의 이런 사정도 모르는 아들은 전용 방방장에서 미친 듯 날뛰고 있었고, 아이가 신나게 노는 소리를 들은 외국인 가족의 아이들 (여자 아이는 저희 아들과 비슷한 또래 같았고, 남자아이는 한 대여섯 살 되어 보였습니다.)은 방방장으로 달려갔습니다.
아직 텐트 안의 짐정리가 남아 빠르게 정리하고 동네와 학교에서 많이 보지 못한 낯선 외모의 아이들과 어색하게 놀고 있을지도 모르는 아들이 걱정되어 방방장으로 달려갔는데, 제 걱정과는 다르게 금발의 아이들과 저희 아들은 재미있게 놀고 있었습니다. 안도의 한숨을 쉬며 아이들이 노는 모습을 흐뭇하게 바라보는데, 그 아이들의 어머니가 방방장 쪽으로 오고 있었습니다. 저는 마음속으로 "제발 오지 마세요. 고.. 고.. 렛잇고 마담, 마더님"을 외치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어머니는 방방장 앞에 도착했고 저와 똑같이 흐뭇하게 아이들이 노는 모습을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때 저와 눈이 마주쳤고, 어머니는 미소를 지으며 눈인사를 보냈습니다. 그리고 저는 저도 모르게 손가락으로 아들을 가리키며 "마이 선.. 마이 온리 선"이라 했고, 어머니는 제게 알아듣지 못하는 말로 뭐라고 했습니다.
이십여 년 전 토익 족집게 학원을 다녀 900점을 넘긴 경험이 있다는 자부심으로 살았는데, 이 순간 전혀 쓸데가 없다는 것이 느껴집니다. 역시 한국의 주입식 교육은 문제가 많습니다. 하지만 저는 편안한 표정으로 미소 지으며 어머니의 말을 들으며 "으~음. 아~" 이런 액션을 취했습니다. 이 외국인 아주머니 속으로 "이 사람 지금 내 말을 알아듣는 거야.. 뭐야?" 하는 것이 느껴집니다. 외국인 아주머니도 저의 안절부절못하는 표정을 보고 어색함을 느끼셨는지 먼저 자리를 피해 남편이 홀로 열심히 텐트를 치고 있는 곳으로 갔습니다.
아이들은 잡기 놀이 비슷한 것을 하는 거 같은데, 아들은 한국어로 외국인 아이들은 영어로 대화를 나누는데 신기하게 서로 의사소통이 됩니다. 그리고 아들이 태권도에서 열심히 배운 발차기도 보여주는데, 외국인 아이들은 신나서 소리 지르고 따라 하기도 합니다.
그렇게 열심히 놀았더니 아들이 배가 고팠는지 간식을 달라며 제게로 왔습니다. 그리고 친구들을 우리 텐트로 데리고 가도 되냐고 묻습니다. "여기 네 친구가 어딨 어?" 아들에게 묻자 아들은 저와 아들을 바라보고 있는 두 아이를 가리킵니다.
"야.. 우리 간식 짜장 떡볶이인데 쟤들은 못 먹을 거야."
"그럼 위에 치즈 하나씩 올려주면 되지?"
아들은 너무 해맑고 간단하게 해결책을 제시합니다.
그리고 아들은 아이들에게 "야! 우리 간식 먹으러 가자!"라고 합니다. 정말 신기한 건 그 아이들이 그 말을 알아듣고 아들을 따라옵니다. 그리고 저는 옆에서 조심스럽게 "두 유 라이크 짜장 떡볶이?"라고 묻지만 아이들은 웃기만 하고 벌써 외국인 남자 동생과 친해진 아들은 그 아이 손을 꼭 잡고 데리고 가고 있었습니다.
저희 텐트에 아이들이 모두 들어가는 모습을 바라본 외국인 아빠가 저희 텐트 쪽으로 오기 시작합니다. 그 짧은 순간 영어로 "애들 간식 좀 먹이겠습니다. 제가 요리 실력이 미천하여 맛은 없지만 건강에는 좋은 식재료로 넉넉하게 준비할 테니 걱정 마세요."가 뭐지 하는 생각이 듭니다.
그리고 그 아버지가 도착해서 제가 말을 겁니다.
"안녕하세요."
헛... 한국어였습니다. 어머니와 아이들은 우리말을 잘하지 못하는 것 같은데 아버지는 능숙하지는 않지만 간단한 한국어를 하시는 것 같았습니다. 저는 최대한 쉬운 한글 표현으로 말했습니다.
"어린이들 간식 먹는다. 돈 워리! 양 많다. 짜장 몸에 좋다."
외국인 아버지는 미안한 표정을 지으며 "괘.. 괜찮아요? 미안합니다."라고 했고 저는 "돈 세이 소리. 노 프라블럼. 고.. 고 유어 텐트 업 업.." 정말 25살 이후로 영어를 멀리한 제가 원망스러운 순간이었습니다.
그렇게 저는 외국인 아이들에게 한국의 수도 서울 면목동식 짜장 떡볶이를 대접했고, 신기하게 아이들은 너무도 맛있게 먹어줘서 땡큐 했습니다.
** 여자 아이 이름은 좀 헷갈리는데, 남자아이 이름은 훗날 크면 딸바보에 싸움 좀 하게 생긴 이름인 "니암"이었습니다.
** 외국인들은 캠핑 와서 뭐 먹나 살펴봤더니 똑같이 고기를 구워 먹었습니다. 역시 캠핑에서 고기는 진리입니다.
** 아이들에게 간식을 줘서 감사하다는 말과 빵을 주셨는데, 뚜레*르였습니다.
** 그 이후에는 한 번씩 지나가다 마주치면 눈인사하는 정도였습니다. 다행입니다.
** 아이들은 말이 통하지 않아도 신나게 놀더라고요. 역시 놀이는 훌륭한 문화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