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은 임신 8개월 때에 회사를 그만두면 안 되겠냐고 물었다. 임신 전에'이제는 정말회사를 그만두면 안 된다'' 가장이니까 마음 단단히 먹어야 한다고' 다짐을 받아둔 게 다 허사가 됐다. 이제 곧 돈을 쓸 일 넘쳐날 텐데, 회사를 그만두고 싶다니. 어이가 없었다. 그렇다고 그만두지 말라고 하는 성격도 아니다. 돈보다 사람이 우선이다. 그래, 당신이 살아야지. 나의 말에 용기(?)를 얻어 남편은 그달로 회사를 관뒀다.
회사를 관둔 후, 남편은 출산은 물론 산후조리원에서 까지 24시간을 나와 같이 붙어있었다. 회사 때문에 일부러 다른 도시로 잡은 산후조리원은 의미가 없어졌다. 오히려 집과 멀어져서 더 힘들기만 했을 뿐.
조리원을 퇴소하고 그날 저녁, 아무것도 할 줄 몰라 허둥대며 한껏 예민해져 있던 나는 남편과 작은 말다툼이 있었고겨우 3킬로를 갓넘긴 신생아를 안고 있던 나에게 남편은 고함과 욕과 함께 폭언을 퍼부었다. 나는 심장이 멈추는 듯했고 몸이 얼어붙었으며 귀에서 폭탄이 터지듯 삐- 하는 소리가 들렸다. 잠시동안 숨을 쉴 수가 없어서 숨이 멈추었고, 숨을 내쉬었을 때 내 눈에선 눈물이 흐르고 있었다. 아이는 한 번도 들어본 적 없는 데시벨의 소리에 악을 쓰듯이 울었다. 그날이 어떻게 지나갔는지 모르겠다. 아이에게 젖을 물렸는지, 우유는 먹였는지, 기저귀는 갈았는지 나는 전혀 기억하지 못한다. 그냥, 큰 폭탄이 옆에서 터진 것처럼 아프고 무섭고 힘들었다는 것 밖에는.
남편은 산후조리도우미가 와 있는 동안 작은 골방에 갇혀서 나오지 않았다. 오후가 돼서 도우미가 돌아가고 나면 골방에서 나와서 티브이를 보고 아이를 봤다. 나는, 그날 저녁 이후로 남편과 어떤 말을 했는지 어떻게 지냈는지 사실 기억하지 못한다. 아이를 어떻게 씻겼는지 무슨 일이 있었는지 전혀 기억이 없다. 나에게는 두 가지 기억만이 존재한다.
한 가지는그런 폭언과 고함을 그 이후로도 계속되었다는 것이고, 또 한 가지는 나는 아이에게 울면서 팝송을 수도 없이 불러주었다는 것. because you love me와 you raise me up. 왜 이 노래들인지 모르겠지만, 그냥 내 마음속에서 이 아이가 노래의 가사처럼 이렇게 자라기를 원했는 지도 모르겠다.
폭언과 고함, 그리고 싸움이 계속되자 아이가 두 달도 되기 전에 집을 나왔다. 몸조리 란건 상상도 할 수 없었고, 몸보다 정신이 더 피폐해져 있었다. 아주 더웠던 날 저녁에버스를 두 번이나 갈아타고 친정집으로 갔을 때 엄마의 차가웠던 시선을 잊을 수가 없었다. 엄마는 무슨 일이냐고 묻지도 않았다. 그냥, 빈정대기만 했을 뿐. 모든 것들이 내 잘못이라는 그 말투에서 나는 느낄 수 있었다. 여기는내가 도움을 받을 수 없는 곳이구나.
집을 나와서 버스를 탔다. 그리고 터미널 근처 모텔로 가서 씻지도 않고 이불도 덮지 않고 그 위에서 쪼그려서 잠을 청했다. 남편의 전화와 엄마의 전화, 여동생의 전화가 계속 울려댔지만 아무것도 받지 않았다.
다음날 나는 버스를 타고 다른 도시로 갔고 비즈니스호텔에서 2주를 머물렀다. 호텔에서 며칠쯤 지냈을 때 나는 내 목소리를 찾을 수 있었다. 집에 있을 땐 머리가 마비되는 느낌이라 남편이 한마디를 해도 전혀 반박할 수가 없었는데, 혼자 있고 나니 숨이 쉬어지면서 머리가 돌아가는 느낌이 들었다. 그리고는, 더 이상 울지 않았다.
남편은 잘못했다고 미안하다고 자신이 직장이 안잡혀서 스트레스 때문에 미쳤었다고 한 번만 만나달라고 애원했다. 아이는 시어머니가 보고 있다고 했다. 나는 왜 그랬나고 묻지 않았다. 다만 집에 들어갈테니 매달 당신을 평가할것이라고. 당신은 그것이 싫으면 언제든 이야기 하라고 했다. 남편은 울며 그것만으로도 감사하다고 했지만, 나는 남편에게 말하지 않았다. 당신에게 가진 모든 신뢰를 잃었다고.
아이가 세돌이 되던 해에 저는 정신과 병원에 갔다. 그리고 나중에서야 남편의 고함과 폭언으로 인해 내가 느꼈던 경직이 일종의 공황발작이었단걸 알았다. 이 일뿐만 아니라 다른일도 있었지만 이 일이 트리거가 되었다.
그 이후로도 많은 일들이 있었지만 저 시기때의 일은 내몸에 있는 제왕절개 자국보다 더 크고 깊게 상처를 남겼다. 아이가 다섯살이 된 지금도 잊혀지기는 커녕, 흐려지지도 않고있으니.
생각하면 슬프지만, 오늘도 나는 아무렇지 않은듯 아이를 데려오고, 아이 생일 준비를 계획하고 남편의 안부를 묻는다. 언제 무뎌질까? 시간에 기대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