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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arah May 25. 2023

우울증 엄마, 아이와 시골로 이사했습니다.

이사한다고 좋아질까요?



결론부터 이야기하자면
훨씬 행복해졌습니다.



    아이가 점점 자라면서 아파트에서 뛰고 소리 지르는 횟수가 늘고 조용히 해, 뛰지 마라고 말하는 횟수도 늘어났어요.  아이를 진정시키고 타이르는 것도 마음의 여유가 있어야 하는데, 다른 집에 피해가 갈까 봐 늘 조마조마하다 보니 마음에 여유가 있을 리가 없지요. 저녁이 되면 아이를 재우고  힘든 마음을 달래려 술을 마셨어요. 아이에게 더 잘해 줄 수는 없었을까 하는 죄책감과 우울감으로 술의 양은 점점 늘어갔어요. 다음날이 되면 가뜩이나 없는 에너지에 술 마신 것까지 더해져서 늘 찌뿌둥하고 구겨지는 얼굴. 억지미소로 아이에겐 숨기는데도 한계가 오더군요. 악순환이 반복되는 날들을 이어가다 보니  이대로 가다가는 뭔 일이 나겠다 싶었지요.

 

   

  이사를 결정하기 전까지 정말 고민을 많이 했습니다.  정해 놓은 시골집이 있는 동네는 편의점은 고사하고 마트라도 가려면 차를 타고 움직여야 하는 그런 곳이었어요. 과연 그런 곳에 가서 적응할 수 있을까? 혹시나 아이가 아프면 어떡하지? 아이가 좀 더 커서 학원에 가자고 하면 그건 어떻게 할까? 온갖 생각과 걱정과 고민으로 몇 달을 보냈지만 저의 우울과 아이의 행복을 우선으로 두고 나니 저울은 쉽게 한쪽으로 기울었습니다. 가자, 지금은 가는 게 맞다. 아이가 좀 더 커서 다시 아파트로 들어가더라도 지금은 이사를 가는 게 맞다는 결론을 내렸습니다.



   살던 아파트를 세를 주고 5살 아이와 함께 주택으로 이사를 왔습니다.  다섯 계단을 올라가면 철문이 있는 빨간 벽돌집으로. 하루에 버스가 3번 다니는 진짜 시골로 이사를 왔어요. 마당엔 시멘트가 깔려 있지만 집 앞 길 건너가 논과 밭이고 백 미터 앞의 우사에서 소 울음소리가 들리는 곳으로. 

  


   아이가 혼란을 느낄까 봐 어린이집을 바꾸지 않은 덕에 아침마다 다니던 유치원으로 20분을 운전해서 데려야 주고 데리고 오는 패턴으로 바뀌었고 일주일치 먹을꺼리를 한번에 사다놔야 하지만 그런 사소한 불편보다 느끼는 행복감이 훨씬 큽니다.



좋은 점


1. 마음껏 뛰고 소리 질러도 되는 집.

  아이의 놀이터는 구분이 없습니다. 마당이든 집안이든 어디서든 마음껏 소리 지르고 뛰어다닙니다.  마음껏 소리 지르고 뛰고 노는데 그만하라고 할 이유가 없습니다. (너무 소리 질러서 귀가 좀 아픕니다만요.) 이사 오고 나서 한 번도 뭔가 하지 마라는 소리를 해본 적이 없습니다.


 2. 외부 자극에서 오는 스트레스가 없어요.

   아파트과 상점, 자동차가 빼곡한 곳에선 원치 않은 외부자극이 심했어요. 하루 24시간 차소리가 끓이질 않았고 여름이면 열어놓은 베란다로 사람들의 온갖 소리들이 다 쏟아져 들어오고 밤이면 간판들의 불빛으로 어둠이라고는 없는 동네 한복판. 지속적으로 자극에 노출되다 보니 예민해져 있었다는 것을 몰랐어요.  이사하고 나서는 소음들은 지워지고, 밤이면 드문드문 논밭에 난 길을 따라 이어진 전봇대 불빛 외에는 빛이라곤 찾아볼 수 없어요. 마당에서도 별빛이 선명하게볼수 있는 곳이니까요. 외부적인 자극이 10% 이하로 줄었어요. 티브이소리도 없으면 그야말로 적막이죠. 조용하고 싶을 때 조용할 수 있고, 어둡고 싶을 때 어두울 수 있는 선택권이 생겼어요.  아이도 외부 자극이 없으니 점점 뭔가 안정되어 간다는 느낌이 들어요.


3. 비록 시멘트마당이라도 마당은 마당

   아이는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헬멧을 쓰고 자전거를 탑니다. 마당 한구석 손바닥 만한 텃밭에서 상추를 뽑으면 옆에 붙어서 상추룰 뽑겠다고 손을 대다가 뿌리째 뽑아버리기도 하고 흙장난으로 늘 손톱밑이 새까맣지만 더 이상 놀러 가자, 나가자 라며 조르는 일이 없어졌어요. 조르는 대신에 마당으로 나가서 알아서 놀아요. 물론 처음부터 그랬던 것은 아니에요. 아파트에서 나가자고 조르던 말들은 시간이 지나고 차차 없어져 가고 있어요.



덜 좋은 점


1. 벌레와의 동거

   단독주택에다가 기단을 높여서 지은 집이라 벌레가 덜할 줄 알았는데 착각이었습니다.. 대체 꽉꽉 닫아놓은 문외엔 들어올 구멍도 없는데 벌은 어디서 들어오는 것이며 지네 같은 발 여러 개 달린 기다란 이름도 모를 벌레는 어디서 들어오는 것일까요? 파리는 아이가 문을 열어놓고 나가버리는 바람에 거실에서 상주를 하고 있습니다. 자기 전에 파리 열 마리는 잡고 자는 것 같습니다.(방충망이라도 달아야겠어요.)  마당에는 지렁이와 개미들이 사이좋게 밭에서 공동주거를 하고 있습니다.


2. 편의시설이 뭔가요?

   이사 오기 전 일주일에 3번 이상 배달음식을 시켜 먹었어요. 치킨부터 회, 족발, 피자등 배달이 안 되는 음식이 없었는데 이사한 곳은 전혀 배달이란 게 되지 않는 시골이라 3끼 전부 손수 만들어야 합니다. 오늘은 또 뭘 해 먹나 라는 걱정은 아파트 살 때나 주택이나 같은데, 뭔가 믿을 구석이 없어진 기분이랄까요? 그렇다고 또 끼 때마다 잘해먹는 것도 아니면서 말이에요.  그래도 밭에서 뜯은 채소들과 고기반찬 한 개면 또 한 끼를 먹어요.  가끔, 정말로 힘이 없을 때는 남편 퇴근길에 읍내에 들러서 뭐라도 포장해 오라고 하고요.  덕분에 외식비가 1/3로 줄었어요. 이걸 좋다고 해야 할지 나쁘다고 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천천히 시골 생활에 적응해 가는 중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3. 음식물 쓰레기 차가 다니지 않는 동네.

  가장 당황스러웠던 건 음식물 쓰레기 수거차가 다니지를 않았어요. 주민센터에 문의해 보니 담당하는 업체가 있기는 했어요. 통화해 보니 이 동네는 음식물 쓰레기를 내놓지 않아서 안 다닌다고 하더군요. 다들 음식물 쓰레기를 어떻게 하는 거지? 눈치를 보니 대부분 자신들의 밭에 묻거나 퇴비로 만들기 위해 흙과 섞으시더라고요. 나는 밭도 없고 흙도 없는데? 이 문제로 한참 고민을 하다가 인터넷을 뒤져 퇴비 만드는 방법을 찾았습니다.  커다란 플라스틱 통에 음식물 쓰레기과 흙을 켜켜이 섞고 몇 개월 지나면 자연퇴비가 되는 식이었죠. 그날로 통을 사서 거기에 음식물쓰레기를 붓고 여기저기서 흙을 긁어와서 채워놓고 있습니다. 이사 와서 가장 번거롭다고 생각이 들어요. 가장 귀찮기도 하고요. 아파트 음식물 쓰레기 통이 그리워질 줄은 몰랐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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