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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arah Jun 09. 2023

암수술보다 더 무서운 수술실 트라우마

의사의 자만심이 한 사람에게 미치는 영향




   제왕절개로 아이를 낳고 산부인과 정기검진 다닐 무렵, 겸사겸사 한 자궁경부암 검사에서 암진단을 받았다. 아이가 두 달도 채 안되었을 때였다. 게다가 동생도 암으로 항암 중이었는데, 나까지 암진단을 받은 것이다. 집안에  딸 둘 모두가 암환자가 되어버렸다. 남들은 애 낳을 때 하늘이 노래진다던데, 나는 애를 낳고 두달이나 지나서  하늘이 노래졌다.


   나의 경우는  진행이 많이 되지 않은 초기의 암이라서 일명 콘 수술이라는 수술법으로 수술을 받게 되었다. 자궁경부를 아이스크림 콘 모양의 원뿔모양으로 잘라내는 수술이었다.  당시 나를 담당했던 교수님은 은퇴를 몇 앞둔 노교수님이셨는데, 이런 수술은 외국에서는 입원도 안 하고 수술한다고 걱정 말라고 하셨다.


    아이의 출산과정도 순탄치 않았고 워낙 심리적으로 약한 상태라 수면마취라도 해주면 안 되겠냐고 부탁드렸지만, 10분에서 20분밖에 안 걸린다며 단칼에 거절하셨다.


   결국 또렷한 맨 정신으로 수술대위에 눕게 되었다. 괜찮겠지 하고 나를 애써 달래며 수술이 시작되었는데 십 분은커녕 삼십 분이 지나도 수술은 끝날 줄 몰랐고 갑자기 간호사들이 분주해지면 싸 해지는 수술장의 분위기가 나에게로 전해져 왔다. 말을 걸면 방해될까 봐 말도 걸지 않았고, 수술 자세에서는  의사의 얼굴의 볼 수가 없었지만 계속 뭔가 불안하게 움직인다는 건 느낄 수 있었다.  계속 긴장을 하니 몸엔 힘이 들어갔고, '힘 빼세요' 라는 계속 들었는데 갑자기 목뒤쪽으로 확 당기는 느낌이 들었다. 그러면서 손이 덜덜 떨리기 시작했다. 발작인가? 뭐지?


심장이 터질 듯이 뛰고
입술이 덜덜 떨리기 시작하면서
식은땀이 났다.
대체 내 몸은 왜 이런 거지?



  이런 증세가 체감상 십 분이 넘게 지속되었는데, 정신을 아득해지려고 할 때쯤 수술이 끝이 났다.


   수술장을 나와서 회복실에서 남편은 나를 보자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십 분이면 끝난다던 수술이 한 시간이 넘게 걸리는 바람에 밖에서 애간장을 태운 모양이었다. 나 역시도 수술장 안에서 겪었던 무서운 감정 때문에 줄줄 눈물을 흘렸다.


 

   다행히 지혈이 돼서 그날 집에 갈 수 있었고, 며칠 후 진료에서 수술이 잘되었다는 말을 하면서도 30년 의사생활에서 이 수술이 이렇게 오래 걸린 건 처음이었다는 말에는 약간의 짜증이 묻어있었다.  지혈이 안돼서 그렇게 시간이 오래 걸렸단 설명과 함께 너무나도 태연하게 그 말을 하는데, 나는 어처구니가 없었다.  그렇게 자신만만했던 의사 선생님은 미안한 기색이라곤 전혀 없었다.


   차라리 수술할 때 힘들다고 말이라도 했어야 됐나? 그저 의사의 말을 믿은 것뿐이었는데? 내가 뭘 잘못한 거지? 심한... 짜증이 밀려왔다!



    문제는 나중에 생겼다. 그날 이후로 수술 이라던가 검사를 받을 때마다 호흡곤란과 심장박동증가, 식은땀등 공황발작이 찾아온다는 거였다.   진정제라던가 마취를 하지 않고는 할 수가 없었다.



 그토록 호언장담한 의사 덕분에
 나는  수술실 트라우마가 생겼다.





    다행히 수술 자리는 잘 아물었다.   6개월에 한 번씩 정기검진을 받고 있지만,  받을 때마다 엄청나게 긴장하는 바람에 힘 빼세요 라는 의사의 짜증 가득한 말을 들을수 밖에 없는 처지의 환자가 되었다.  트라우마가 생긴 것도 억울한데 진상환자로 낙인찍혀서 갈 때마다 눈칫밥 먹는 환자가 되다니.. 의사말을 믿었을 뿐인데  억울하다.


   





    수술 후 몇 일이 지났다.  소액에 속하긴 했지만 암보험금이 지급되었다. 온갖 고생을 하고 받은 암보험금. 나는 그 돈으로 구찌백을 샀다. 여태껏 명품이란 것에 전혀 관심이 없었기에 딴 세상얘기였는데 간도 크게 일시불로 사버렸다. 솔직하게는 언제 죽을지도 모르는데 죽기 전에 명품백이나 한번 들어보자 싶은 마음이 컸다.  그렇게 산 가방은 몇 번 들지도 못하고 옷장 안에 고이 간직하고 있다. 지금 생각하면 소고기나 사 먹을걸 하는 생각이지만, 내가 살면서 명품이란 것도 샀었네 하면서 볼 때마다 혼자서 깔깔 웃는다. :)


 다만, 명품백 안사도 좋으니 암도 수술도 안하고 싶다.

그거 말고도 사는게 너~무 힘든일이 많으니.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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