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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arah Jun 10. 2023

남자는 동굴로 들어가고 나는 호텔로 들어간다

살기위해 가는 호캉스




     집은 내게 직장이었다. 집에 있으면 늘 머릿속에서 해야 할 일들이 끊임없이 샘솟았다. 그리고 아무리 열심히 해도 집안일은 마침표도, 마감도 없었다. 마치 시지프스의 돌 굴리는 형벌처럼.



    가끔 오는 지인은 이렇게 깨끗하면 애들 정서에 안 좋다고, 어지르기도 하고 책도 널브러져 있어야 애가 호기심이 생겨서 보기도 한다고 잔소리를 했지만  물건이 바닥에 널브러져 있는 건 내게 큰 스트레스였다.


    병적으로 청소를 열심히 하는 타입도 아니었지만 정리되지 않은 집은 스트레스로 다가왔고 아이까지 있는 주말이면 내색은 하지 않아도 스트레스게이지가  한계를 초과했다.



     게다가 남편과 아이 둘다 껌딱지였다. 아이는 어딜 가든 붙어서 나를 놓아주질 않았다. 노는것도 나와 함께 노는 것을 가장 즐거워 했다. 남편은 나와 이야기하는 것을 너무 좋아해서 회사일과 친구일, 집안일 사생활 하다 못해 인터넷에서 읽은 모든것들을 나에게 이야기 했다. 누군가는 화목한 가정 이라고 할지도 모르겠다.  맞는 말이다. 문제는 나였다. 나는 남편이 인정할 만큼  하루 평균 말의 총량이 여자보다 남자에 가까울 만큼 말이 많은 타입이 아니다. 필요하고 분석하고 문제를 해결하는 것에 익숙하고 그런 말을 즐길 뿐이지 아이와 살갑고 즐겁게 떠든다거나 필요 이상의 말을 듣는 것을 즐기지않는 사람인데 두 사람에게서 하루종일 말을 듣다 보면 기가 빨리는 기분이 들었다.



    그렇게 청소와 집안일, 이틀 내리 음식을 하고 두 남자와 주말을 부대끼며 지내는걸 몇 주쯤 하다 보면 숨이 안 쉬어질 정도로 스트레스를 받았다. 남자들은 힘들어지면 자신만의 동굴로 들어간다는데 나는 힘들어지면 호텔로 들어갔다. 비싸지 않아도 상관없었다.


아무도 나를 모르는  곳에서,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되는 곳에서,
누구도 나에게 말 걸지 않는 시간이 필요했다






    아이를 데리고 기차를 탔다.  기차는 덜컹이며 천천히 출발했고 아이는 익숙한 듯이 스쳐 지나가는 차창밖 풍경을 쳐다봤다. 기차 안은 소음으로 가득 찼고 나는 식당칸에 앉아서 아이의 재잘거림을 듣고 있었다.


  아이는 호텔에 가는 걸 좋아했다. 기차도 버스도 탈일이 거의 없던 아이는 호텔에 가기 위에 타는 기차의 덜컹거림도, 타요처럼 생긴 버스를 타는 것도, 집에는 없는 마음껏 볼 수 있는 티브이와, 엄마와 붙어있는 24시간의 시간들까지. 어느 하나 싫은 것 없는 완벽한 시간들을 즐기는 듯했다.



    체크인을 하고 호텔로 들어서서 티브이를 틀자 아이는 티브이에 시선을 빼앗겼다. 나는 짐을 대충 정리하고 의자에 앉아서 왕복 8차로 넓은 대로로 지나가는 차들을 내려다보았다.


꽉 차서 답답했던 가슴은
구멍 뚫린 풍선의 바람이 빠지는 것처럼  
서서히 답답함이 새어나가는 게 느껴졌다.


 새하얀 잘 정리된 침구와 최소한의 물건만 있는 내부. 아무 생각 없이 그렇게 저녁이 될 때까지 나는 창밖을, 아이는 티브이를 보며 한 공간에서 각자의 시간을 보냈다.



  

  호텔에서 딱히 하는 건 없었다. 3살짜리 아이를 데리고 무얼 하겠는가? 그저 창밖을 보며 아이가 치근대지 않는 시간을 즐기고 아이가 잠들면 레스토랑으로 내려가 치킨과 생맥을 포장해 와서 야경을 보며 마시고 잠드는 게 다였다. 그나마 좀 다른 건 잘 차려진 조식을 느긋하게 먹는 정도? 내가 밥 하지 않아도 되는 것 정도뿐이지 집과 크게 다를 바가 없었지만 그 온전한 하루가, 그리고 오가며 보는 낯선 풍경이 내겐 숨 쉴 산소이고 새로움에서 오는 스트레스 해소제였다.




  



     너무 덥거나 추운 계절 빼고는 한 달에 한번 정도 호텔에 갔다. 어린이집에선 주기적으로 결석을 하니  무슨 일이냐고 물었고 아무 생각 없이 호텔에 하루 다녀온다고 있는 그대로 얘기했더니, 어느 순간에 나는 호캉스를 다니는 사치스러운 여자가 되어있었다.   


  

   그렇게 볼 수도 있겠구나 싶기도 했고 굳이 해명하기도 뭣해서 그냥 내버려 두었다. (그런 것까지 신경 쓸 에너지도 없었고.)  남편은 그 얘기를 듣고 크게 웃으며 너는 참 신기한 사람이라고 했다. 남편은 주변얘기에 신경을 많이 쓰는 사람인데, 나는 전혀 그런 것에 개의치 않으니 신기해 보일법도 했다.



   어쨌든  호텔을 다녀오면 생기가 돌았다.


많이 웃고 집안일  힘내서 하게 되고 아이도 조금 멀리 다녀온 탓인지 재미있어했다.  몸은 지쳐도 마음엔 생기가 도니 남편에게도 부드러워지는 게 당연했고 남편도 그런 패턴을 좋아하게 되었다. 그렇게라도 힘든 시기를 보내는 방법을 찾아서 다행이라고 하면서.



    이제는 더 이상 호텔에 가지 않는다.  아이가 좀 더 크고 나니 혼자서 노는 시간이 많아졌고 시골로 이사 온 후엔 답답함을 느끼는 주기가 훨씬 길어졌다. 아이를 키우면서 어느 정도 내려놔야 할부분도 있음을 깨닫고 내려놓은 부분도 있다. 여러모로 스트레스 지수가 한계를 넘기는 일이 거의 없어져서 갈 필요가 없어진 것이다. 감사한 일이다.



    삶이 고달프고 버텨야 하는 순간이 온다. 물속에 있는 것처럼 숨도 못 쉴 것 같을 때. 그럴 땐 수면 위로 올라가 잠시라도 숨 쉴 시간을 만들어줘야 한다. 그 방법을 찾는 걸 미루면   오래 버티지 못한다. 어떤 식으로든 꼭 방법을 찾아서 자신에게 그 시간을 주어야 한다. 나는 나만의 방법으로 그 시간을 버텨  지금까지 올 수 있었다.  남들이 보기에 이상해도 상관없다.  나를 위해서라면 꼭 해야만 하는 일이니까.


   자신에게 숨 쉴 공간과 시간을 마련해 주자.

  그렇게 라도 버티면 언젠가 좋은 날은 반드시 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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