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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emily Jun 03. 2022

외가의 추억

어김없이 돌아온 날

벌써 31해가 지났건만  어김없이 시름 거리는 시기가 돌아왔다.

나의 아버지의 기일.


아빠가 갑자기 떠나신 그 해 에는 참으로 많은 일이 있었다.

아니 그전 해부터...

내가 결혼한 1990년 4월에 나의 아버지는 결혼식 전날 비바람이 몰아친다는 소식에 꼬박 밤을 새우시며 그 바람이 빨리 지나가 주길 기도 하셨었고, ( 당시만 해도 날씨가 나빠도 신부 탓으로 치부하던 시대인지라 , 또한 결혼식 장소가 모교회가 건축 중인 관계로  정동교회의 구건물에서의 혼인예배라 접수처가 문 밖이었기에 등등등 )

신혼여행에서 돌아와 바로 시댁으로 가서 먼 저 남쪽 광양으로의 신혼 이사를 하는 하나뿐인 딸의 친정에서 보내는 모든 물건들을 일일이 체크하시며 꼼꼼히 챙겨주시느라...

결혼 첫 해 겨울에 돌아온 시댁 어르신들의 생신잔치에 딸이 무엇을 할 줄 알까 걱정스러워 노량진 수산시장에서 회를 떠서 시댁 대문 앞에 살그머니 두고 가시기까지...


상견례 자리에선 시조부 손을 꼭 잡으시며 날 부탁하시던 모습 역시 잊을 수 없는 나의 아빠의 모습이다


1991년 음력설엔 광양 신혼집에 오셔서 내가 청소한 화장실도 꼼꼼히 체크하시고 내가 담가 둔 첫 김장을 넣은 옹이들도 신기한 듯 실 피시며 내가 만든 명절 음식을 맛있게 드시며 기뻐하셨던 나의 아빠.


같은 해 초엔 나 대신 (보지도 못하고 떠나신) 첫 외손주의 태몽까지 꾸어 주시고 , 방위 특례 훈련을 들어간 신랑 덕에 서울로 상경하는 날 데리러 오셔서 마포의 맛집까지 데려가시고...


그런 아빠가 돌아가시던 날은 이상하게 예민해졌던 나였다.

(유월 첫 주 , 임신 오 개월의 배로 대구까지 훈련을 마치고 나오는 옆지기 마중을 시어머니와 다녀오고 주일 아침 뭉친 배 때문에 교회를 가지를 못해 아빠가 돌아가시기 전의 마지막 만남을 놓쳐버린 일은 두고두고 내 가슴을 시리게 했었다.)

6월 6일 현충일 연휴 며칠 전, 친정으로 가려던 날 아침 이상하리만치 신경질적이 되는 날 느꼈었지만 , 층층시하의 시조모. 시모 가 게시는 시댁에선 내색도 못한 채 친정으로 향했었고 , 인기척도 없는 텅 빈 친정의 부엌의 도마 위엔 칼이  해파리를 썰다 내버려 둔 듯 자리하고 있었다.

당기는 배에 잠시 누워 있던 나는 한 통의 전화벨과 그 전화를 받고 돌아서는 옆지기에게 차분히 물었었다.

'아빠 돌아가셨어? , 차 사고였어? '

내 질문에 당황하던 옆지기..

그 모습에 나는 한마디 더...

' 엄마 어떡하지?...'

뱃속의 태아 때문이었는지 본능적으로 차분해진 나는 안도의 한숨도 내뱉었었다.. 차사고가 아니라니 그건 천만다행이구나 싶어서 말이다.


그렇게 엄마와 나 , 남동생은 그 누구도 아빠의 임종을 보지도  못한 채...


그 뒤 세월이 흘러서야 엄마가 참 장하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당시 엄마는 한국 나이 58, 아빠는 61...

부부가 삼십 년을 같이 산다는 사실이 결코 쉽지 않다는 사실을 또한 ,,,


세월이 흘러 미국에서 돌아 온난 어쩌다 아빠의 이장을 혼자 하게 되었었고 ( 페북 아이디의 브런치 글에 올려져 있는데...)..

그렇게 아빠는 나와 3번의 작별을 해주셨었다.


엄마가 가신지도 이제  올 늦가을로 만 사 년이 되어가지만 난 여전히 아빠의 기일 전후론 앓곤 한다.

내 또래의 벗들과 아빠의 관계보다 나와 아빠의 관계는 좀 특별했었던 이유일 것이다.


국민학교 시절부터 유난히 아빠와 나의 동반 일정이 많았었고, 그중의 반 이상이 외국분들과의 만남이었다

그 덕분에 난 항상 누군가에게 스스럼없이 먼저 말을 건넬 수 있는 사람으로 성장했다.


초여름의 오늘 , 그 추억 속의 아빠가 너무나 그립다.


마지막으로 유골함에서 꺼낸 뼛가루를 나 홀로 만졌던 그 어렵던 시간까지도 사무치게 그립다


아 참 태몽을 꾸어주신 그 아가 ,나의 첫 아이능 어느 날부터인가 눈과 눈썹이 영락없이 나의 아빠를 꼭 닮아버렷다.

가끔 그 아일 보면 같은 양띠인것까지 똑같은 내 아빠의 모습을 떠올리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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