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에밀리 Dec 21. 2022

속죄의 기회

죄인일까요, 악인일까요 (1) : 들어가는 말

속죄의 기회


사람을 불행에 빠뜨리는 것은 사악함과 음모만이 아니었다. 혼동과 오해, 그리고 무엇보다도 다른 사람들 역시 우리 자신과 마찬가지로 살아 있는 똑같은 존재라는 단순한 진리를 이해하지 못하는 것이 불행을 부른다. (『속죄』, 문학동네, p.p. 66~67)     


이언 매큐언의『속죄』에 나오는 말이다. 이 소설에는 거의 육십 년을 죄책감에 시달린 한 소설가가 등장한다. 그의 이름은 브리오니다. 여든이 가까운 이 노작가에게는 남들에게 말하지 못한 비밀이 있다. 어린 시절 그녀의 사소한 착각으로 인해 두 사람의 인생이 망가진 것이다. 한 명은 그녀의 언니 세실리아, 다른 한 명은 그녀의 집에 파출부 일을 하던 터너 부인의 아들 로비다.


세실리아와 로비는 서로 사랑하는 사이였다. 로비를 좋아하던 브리오니의 질투심이 그녀의 눈을 멀게 한 것일까. 사촌 언니 롤라의 성폭행 사건이 발생하자, 브리오니는 로비를 범인으로 지목한다. 앞도 잘 보이지 않는 깜깜한 밤에 숲에서 발생한 일이고, 피해 당사자인 롤라도 확신을 못 하는데, 브리오니는 그녀의 목격에 대한 확신이 있었다. ‘로비였어’, ‘내가 그를 잘못 볼 리가 없어. 태어나면서부터 줄곧 그를 보면서 자랐는걸’.


범인을 정해놓고 증거를 끼워서 맞추는 일, 확증편향이었다. 시간이 조금씩 지나면서 자신이 잘못 본 것은 아니었겠느냐는 의심이 들긴 했지만 이미 때는 늦었다. 사소한 것이라도 이전 진술과 달라질 때 눈을 찌푸리고 태도가 냉랭해지는 경찰 때문이었다. 결국 케임브리지 대학생이던 전도유망한 청년 로비는 감옥에 가고, 보병 입대를 조건으로 조기 석방해준다는 말에 전쟁터로 나간 뒤 패혈증으로 사망한다. 브리오니의 언니 세실리아도 브리오니에 대한 원망과 로비에 대한 그리움으로 힘든 삶을 살다가 전쟁으로 인한 지하철역 폭격으로 죽는다.


죄책감으로 괴로워하던 브리오니는 속죄의 마음으로 그들의 이야기를 소설로 쓰고, 여러 원고를 거쳐 허구의 세상에서라도 로비와 세실리아가 행복하게 만나는 마지막 원고를 책으로 출간하려 한다. 하지만 롤라와 결혼한 진짜 성폭행범 마샬이 돈과 권력의 힘으로 방해하는 바람에 출간은 미뤄진다. 책이 출간되면 그들은 불명예와 수치감에 시달릴 것이기 때문이었다.


‘우리가, 롤라와 마셜과 내가 범죄를 저질렀다’라는 브리오니의 말처럼, 로비와 세실리아의 불행과 비극은 이들 세 사람의 합작품이다. 자신의 거짓된 증언으로 인해 한 젊은이의 인생이 그렇게 망가질 것이라고는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을 브리오니, 자신의 죄를 억울하게 짊어진 한 청년의 비극을 외면한 마샬, 모든 사실을 알면서도 침묵한 롤라, 이 셋 중 죄의 무게는 누가 가장 무거울까.


‘냉혹한 사실주의’를 구현할 수 없어서 소설에서라도 사랑하는 이들을 만나게 해주고 싶었다는 브리오니. 허구의 세계를 통해서라도 자신의 죄책감을 덜어내고 싶었겠지만, 그녀는 이미 알고 있었다. 해피엔딩 소설로는 속죄가 될 수 없다는 것을. 결말을 정하는 절대적인 힘을 가진 소설가가 과연 어떻게 속죄를 할 수 있겠느냐고 그녀도 말한다.


브리오니의 실수는 돌이킬 기회가 몇 번이나 있었다. 잘못된 증언이었다는 말 한마디면 언제라도 상황은 달라질 수 있었다. 하지만 자신의 표현처럼 ‘겁쟁이’ 브리오니는 속죄의 대상들이 다 죽은 후에 허구의 세계로 도망쳐 속죄를 기획했다. 그러므로 그녀는 아직 유죄다.


살다 보면 알고도, 또 모르고도 저지르는 죄들이 있을 것이다. 사악해서, 나쁜 의도가 있어서 그런 게 아니라 할지라도 그로 인해 누군가가 지독히도 불행해진다면 그 불행에 대해서는 책임을 느껴야 한다. 이어질 두 편의 작품은 브리오니처럼 속죄의 기회를 놓친 우리의 죄와 책임에 관한 이야기다. 요, 악인일까요 (1)



이전 18화 부당한 신화 속의 그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