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에밀리 Dec 21. 2022

작가들이 매어 놓은 리본

소설은 왜 읽나요 (1) : 들어가는 말

작가들이 매어 놓은 리본


‘문과라 죄송합니다’의 시대. 소설을 읽는다는 것은 어떤 의미가 있을까. 지인 한 명은 소설에는 쉽게 손이 가지 않는다고 한다. 상상력으로 가공된 허구의 이야기에 시간과 돈을 쓰는 것이 아깝다는 생각이 들어서 그렇단다. 차라리 그 시간에 지식과 정보를 주는 책을 읽는 것이 삶에 유용하다는 말도 덧붙인다.


그 말도 맞다. 소설 한 권 읽을 때마다 포인트가 쌓여서 커피 한 잔 무료로 마실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스펙 점수가 올라가서 취업이 유리해지는 것도 아니다. 소설은 읽어도 그만, 안 읽어도 그만이다. 소설 한 권 안 읽었다고 사회적으로 불이익을 받는 일은 없다. 또 읽었다고 해서 ‘마음의 양식이 많이 쌓여 있네요’라고 누가 알아봐 주는 것도 아니다. 소설 한 권을 읽는다는 것은 꽤 많은 에너지와 시간의 소모를 요구하지만,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고독한 일이다. 그런데도 나는 소설을 사고, 밑줄을 긋고 메모를 해가며 책을 읽는다. 두꺼운 벽돌 책, 얇지만 밀도 높은 책들을 읽으며 지력과 체력을 소진한다.


처음의 질문을 되풀이해 본다. 이런데도 소설을 읽는다는 것이 과연 무슨 의미가 있을까. 나는 이 질문에 대한 답을 전경린 작가의 『붉은 리본』 서문에서 발견했다. ‘누군가 해 질 무렵 그 숲을 헤맬 때, 나뭇가지에 묶인 붉은 길 표식 리본을 발견하고, 어떤 모험가가 지나간 길인 것에 안도하고 공감하고 용기를 내기를 바랍니다’.


그렇다. 나에게 소설이란 ‘붉은 길 표식 리본’이다. 무라카미 하루키의 소설 제목 『일인칭 단수』처럼 우리는 각자 ‘일인칭 단수’의 삶을 살아간다. 사랑하지만 사랑의 모습도 다르고, 방황하지만 방황의 모습도 제각기 다르다. 누구도 나의 인생을 대신 살아 줄 수 없고, 처음 살아본다고 잘 못 사는 것에 대해 이해받을 수도 없다. 삶이 다 이런 것일까 허무할 때도 있고, 남들도 나처럼 이런 감정들에 떠밀려 살아가는 것일까 궁금해하기도 한다. 전경린 작가의 표현처럼 ‘해 질 무렵 숲을 헤매는’ 것같이 두렵고 불안한 존재가 우리 ‘일인칭 단수들’이다.


이럴 때 소설은 나에게 손짓하며 자신이 매어 놓은 ‘붉은 리본’을 따라가 보라고 말한다. 어두운 숲에서 길을 잃고 울고 있는 사람이 나 말고도 많다며 위로한다. 처음 사는 생이라 삶이 무엇인지 제대로 알지 못하는 나에게 남의 삶 훔쳐보기, 남은 삶 미리 보기 기회도 제공한다. 소설은 한 마디로 삶의 참고서이자 예습서다.


소설 읽기가 존재의 불안을 해소해준다고는 감히 말하지 못한다. 어두운 숲은 영원히 끝나지 않고, 가도 가도 해는 뜨지 않을 수도 있다. 하지만 군데군데 매어 놓은 리본들을 보면 다음 리본까지 걸어갈 용기가 생길 것이다. 나보다 현명한, 어느 소설가가 매어 놓은 리본의 마법을 믿기 때문이다.


이번에 소개할 두 소설에는 ‘문송합니다’의 시대에도 우리가 여전히 소설을 읽어야 할 이유가 들어 있다. 각자 고군분투하는 고독한 일인칭 단수들의 삶에 관한 이야기들이기 때문이다. 나에게만 있는 줄 알았던 삶의 모난 조각들, 불행한 감정의 편린들이 그들 안에도 있음을 확인하면서 어두운 숲 안에 우리가 함께 있음을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다행히 우리에게는 먼저 숲길을 헤쳐 나가며 뒤따르는 사람들을 위해 붉은 리본을 매어 놓은 소설가들이 있다. 그들의 위로와 예지, 혜안을 믿으며 숲길을 계속 가보련다.


이전 09화 사랑받지 못한 자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