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인상의 중요성
열쇠로 요란하게 문을 여는 것도 모자라 당당하게 "Hello!!!"라고 외치며 들어갔지만 일요일 오후 플랫 안은 고요했다.
기사님이 설명해 주신 대로 내 이름 석자가 적혀있는 방을 찾아 들어갔다. 그렇게 크지는 않았지만 작은 발코니가 딸린 방이었다. 방문에는 내 이름과 일본 사람으로 추정되는 이름이 적혀있었으나 다른 사람의 짐이 없는 걸로 봐서는 룸메이트가 아직 도착하지 않은 듯했다.
캐리어를 펼쳐서 실내 슬리퍼를 꺼내 갈아 신고 챙겨간 신발들도 침대 밑에 진열해 뒀다. 담요를 꺼내 침대에 깔고 멀티탭과 코드 변환기를 꺼내 꽂은 후 핸드폰과 노트북을 충전했다. 베개에도 수건 한 장 깔고 수납장 한 칸에 속옷과 수건 등을 넣었다.
이렇게 대충 짐 정리를 하고 보니 플랫에 다른 사람이 없는지 궁금해졌다.
다시 거실로 나가봤다.
우선 주방 바로 옆에 있는 방문에 이름을 읽어봤다. 텍스트로만 봐서는 어느 나라 사람인지 가늠이 안 됐다.
거실 바로 뒤편에 있는 방문에 이름을 읽어봤다. 한 명은 일본 사람으로 추정되는 이름이었고 다른 한 명은 Family name 때문에 남미 쪽일 거라 혼자 결론을 내렸다.
그렇게 혼자서 플랫 안을 탐색하다 보니 거실에 있는 와이파이 공유기 위에 패스워드를 찾을 수 있었다. 핸드폰 와이파이를 연결해서 메시지를 확인해 봤다.
내가 샤를드골 공항에서 올린 SNS 사진 덕에 한바탕 난리가 나있었다.
친구들에게 밀린 답장을 하면서 방에 들어가 노트북 와이파이를 연결하기 위해 패스워드를 치고 기다렸다. 안된다. 핸드폰은 터지는데 노트북이 안되니 점차 열이 올랐다. 핸드폰으로 여러 글을 찾아봐도 마땅한 해결책이 없어서 결국 노트북 브랜드 사이트에 가서 문의 글을 남겼다.
그렇게 방에서 혼자 투닥거리고 있던 찰나, 밖에서 인기척이 들렸다.
나는 너무도 궁금했지만 몸이 무거워서 침대에서 쉽게 일어나질 못했다. 겨우 무거운 몸을 일으켜 방 밖으로 나갔다. 분명 사람 소리가 들렸는데 다들 각자의 방으로 서둘러 들어갔는지 아무도 없었다. 그렇게 다시 방으로 돌아가려는데 화장실에 있는 세탁기가 작동되는 소리가 들렸다. 누군가 화장실에서 세탁기를 만지고 있는 듯해 보였다. 나는 궁금함을 못 참고 반쯤 열려있는 화장실 문을 열었다.
나는 실례하다는 말과 함께 눈을 마주치며 인사를 시도했다.
어두운 금발의 여성이었다. 대충 인사를 하고 그냥 방으로 돌아왔다.
그 친구는 세탁기 조작을 마친 다음 조심히 내 방문을 노크했다. 그러고는 다른 방 친구를 소개해주겠다며 나오라고 했다.
거실에 세 명의 여자가 있다.
나는 버퍼링 걸린 뇌와 입을 겨우 가동해 가며 영어로 자기소개를 했다.
"안녕. 반가워. 나는 한국에서 왔어. 앞으로 2달 동안 몰타에 있을 예정이야."
어두운 금발의 여성이 먼저 나에게 '라라'라고 소개했다. 그리고 옆에 있던 진하고 긴 속눈썹을 가진 여성을 '힐리'라 소개했다. 힐리와 같은 방을 쓰고 있는 '치타'라는 일본인은 외출을 나가긴 했는데 내일이나 돼야 돌아올 거라고 했다.
간단한 소개 끝에 라라는 스위스 사람이고, 힐리는 콜롬비아인이라는 걸 알게 됐다.
안 굴러가는 머리를 겨우 굴려가며 영어단어를 쏟아내고 나니 더 많은 피곤함이 밀려왔다. 내가 대답을 잘 못하고 멍을 때리고 있는 모습을 본 라라는 그만 들어가 쉬라고 말해줬다.
몰타에서의 첫날, 일요일에 뜬 해가 저물어 가고 있었다.
플랫 메이트들은 저녁 먹을 준비를 하기 위해 주방에 들어갔다. 친절한 그들은 나에게 같이 먹을 건지 물어봐줬다. 하지만 신세를 지면 안 된다는 생각에 정중히 거절하고 가까운 슈퍼를 알려달라 했다. 나한테 먹을 거라고는 기내식으로 안 먹고 챙겨 온 미니 사이즈 튜브 고추장과 여러 개의 우엉 티백뿐이었기 때문에 물과 간단한 요깃거리가 필요했다.
플랫 건물 바로 앞 일요일에도 문을 여는 슈퍼마켓이 있었다. 나는 지갑을 들고 가서 바나나를 골랐다. 그리고 생활용품 코너에 가서 헤어 샴푸, 바디워시를 구매했다. 물 한 통을 사야 하나 싶었지만 라라와 힐리가 슈퍼마켓 위치를 말해주면서 내일 Scotts 마트에 가서 제대로 장을 보자고 했다. 그래서 비행기에서 챙겨 온 물로 버텨보기로 했다.
그렇게 숙소로 돌아와 바나나 한 개를 뜯어먹었다.
무슨 맛인지 잘 모를 정도로 피곤한 상태였다. 나는 대충 씻고 침대 위로 뻗었고 그렇게 잠이 들어버렸다.

(+)
한 2주 반 정도 지나고 나서 갭이어 미션을 수행하고자 플랫 친구들에게 '나의 첫인상'에 대해 물어봤다. 영어도 서툴고 본모습을 보이지 않았기 때문에 한국에서의 모습과 전혀 다른 이미지일 거라 생각했다. 그래서 나름의 기대에 찬 눈빛으로 대답을 기다렸다.
...
하지만 다들 '뭐 그딴 걸 물어보냐'는 표정으로 나를 멀뚱히 쳐다봤다.
라라는 나와의 첫 만남을 기억하지 못했다. 라라가 우물쭈물 거리며 대답하지 못하자 옆에 있던 힐리가 한 마디 했다.
예상 밖의 대답에 기분이 오묘해졌다.
근데 옆에서 라라와 치타가 격하게 맞장구를 쳤다.
나 빼고 다들 즐거워 보였다.
내가 질문을 잘못했나?
그렇게 아리송한 표정으로 방으로 돌아가 휴식을 취하고 있는 룸메 푸미에게 다시 물어봤다.
"다른 건 모르겠고 네가 외향형이어서 좋아"
음?
왜 아무도 내 첫인상에 대해서 말해주지 않는 걸까?
어떠한 반응도 하지 못한 채 그냥 침대에 누워버렸다. 그리고 생각했다.
이곳에 오면서 얌전하고 차분한 사람으로 보이기 위해 엄청 노력했고, 다들 그렇게 생각하고 있을 거라 여겼는데 그건 대단한 착각이었다. 철두철미한 계획과 뛰어난 연기력이 있지 않는 이상 기본 성향은 그대로 드러날 수밖에 없는 거라고 결론을 내렸다.
그냥 생긴 대로 사는 것이 인생이구나를 느끼며 학원 숙제를 했다.
C'est la vie!!
※ 친구들의 이름은 본명이 아닌 제가 만든 가명으로 적어두었습니다.